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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애리게 하는 사람들' - 공선옥

by 오직~ 2018. 8. 21.

차가 없는 나는 비누 한장, 우유 하나를 사려 해도 집에서 30분 떨어져 있는 면 소재지로 걸어가야 한다. 배낭을 메고 선글라스, 모자를 쓰고 우산까지 펴 들고 용감하게 뜨거운 태양 아래로 나선다. 날카로운 열기가 시멘트 길에서 올라오고 하늘에서 내려온다. 길은 찜통이고 나는 어디로 피할 곳도 없이 길 위에서 삶아지는 느낌이다.

 

그래도 한발 한발 오직 내 발걸음만 믿고 앞으로 나아간다. 그렇게 무념무상으로 나아가다 보면 반드시 목적지에 닿는다는 것을 굳게 믿으면서. 지난봄에 공공근로자들이 심은 길가 철쭉이 모두 말라 죽었다. 말라 죽은 나무를 보니 속이 콕콕 아프다. 길가 깨밭에서 노인이 깨를 베고 있다. 해나 지면 베시라고 했더니, 모기 없을 때 하는 것이 낫다고 한다. 모기들도 꼬실라질깨비 낮에는 안 나온단께, 즈그들도 살라고. 그렇게 말하며 순하게 웃는다. 그 웃음을 뒤로 느끼며 나는 가슴 한쪽이 왠지 ‘애려온다’. 뙤약볕에서 고구마밭 김을 매다가 내가 사카린 타서 갖다준 물 한모금에 해사하게 웃으시던 그 옛날 나의 어머니가 생각나서.

 

고추밭에서 완전무장한 할머니가 짐승처럼 네발로 기며 고추를 따고 있다. 인사를 했더니, 마스크를 벗고 이잉, 한다. 이잉, 더운디 어디 가? 하늘을 가리키며 순전히 쐬기랑게, 쐬기여. 더운 게 아니라, 쐬기에 쓸린 것만큼이나 마음이 아프다는 뜻일 게다. 자식 같은 고추들이 열기에 익어 손이 닿기도 전에 후드득 떨어진다.

 

이른 아침에 집에서 가까운 산길로 산책을 나갔다. 물이라고 해야 겨우 발목이나 적시는 계곡에 캠핑 천막이 빽빽하다. 이 집 저 집에서 부산하게 아침을 준비한다. 이곳은 식수보호구역이므로 야영 및 취사를 금지합니다, 란 푯말 옆에서 라면을 끓이고 아침부터 고기를 굽는다. 집에서 그러듯 가장이 아침 먹으라고 아이들을 깨우고 계곡 근처 식당 화장실 앞에 아이들이 줄을 서고 조밀한 텐트와 텐트 사이 어간에서 아침부터 언성 높이는 사람들로 인해 캠핑장이 아연 활기를 띤다. 텔레비전 화면에서 언뜻 본 ‘난민촌’과 거의 흡사한 풍경이다.

 

더위라는 폭력을 피해 온 계곡이지만, 이곳 또한 삶의 전쟁터이기는 마찬가지. 조금이라도 물이 더 고여 있는 곳에 식사 테이블을 놓으려는 자와 다 같이 즐겨야 할 물을 혼자 차지하려는 자를 징치하려는 자들로 시끄러운 계곡 위, 혹은 옆 어디쯤에서 왜애앵, 사이렌 소리가 캠핑족들의 다툼 소리를 덮는다. 캠핑족들은 그 정체를 알지 못할 소리는 배나무 과수원에서 농약 치는 소리다.

 

캠핑족이나 뭐나, 한개라도 건질라면 하는 수 없지, 뭐. 농부는 또 다른 삶의 전쟁터에서 사투를 벌인다. 약 치면서 나도 무섭지, 허나 벨 수 있나. 안 치면 한개도 못 건지는데. 약 안 치면 비싸고, 비싼 것은 놔두고라도 먹지를 못하는데. 도시 사람들이 말이여, 약 치면 약 친다, 비싸면 비싸다, 요구사항을 한꺼번에 하지 말고 한가지로 일원화해라, 말하자면 하나만 선택하라는 거여, 내 말으은. 농부의 말끝에 말매미가 왜애앵거린다. 저것이 꼭 내 약 치는 소리허고 경쟁할라고 그러네, 농부가 웃는다. 약 치는 것이 자신도 무서운 농부의 미소가 나는 애리다.

 

그리고 그를 생각한다. 내내 쐬기에 쓸린 듯, 나를 아프게 하는 사람. 그는 첼로를 곧잘 켰다고 한다. 살기 위해 이북에서 내려온 그의 아버지는 노동자였다고 한다. 아무리 노동을 하고 살아도 악기 하나쯤은 다룰 줄 아는 사람이 되라고 한 아버지를 둔 그는 바로 그런 세상, 노동자여도, 농민이어도 악기 하나쯤은 즐기고 살 수 있는 세상 하나 만들고 싶어 외로이, 외로이 고군분투하다 우리 곁을 홀연히 떠났다. 그가 대통령 부인에게 불편한 책이라고 하면서 <밤이 선생이다>를 선물했다고 한다.

 

삶은 고단해도 밤이면 난롯가에 둘러앉아 책을 보던 소비에트 시절 노동자 가정의 ‘가난해도 비천하지 않은’ 풍경에 대해서 말하던 황현산 선생의 글이 생각난다. 가난해도 비천하지 않은 삶을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꾸며 ‘뙤약볕 아래서 한걸음, 한걸음’ 걷듯이 살았던 노회찬도, 가난해도 비천하지 않은 삶에 대해 노상 조곤조곤 줄기차게 말하던 황현산도 이젠 우리 곁에 없다. 그들이 떠난 이 여름, ‘한개라도 건져보려고’ 애를 쓰고 또 쓰는 농부들이 쐬기에 쓸린 듯이 아픈 것처럼, 나 또한 내내 애리고 아프다.

 

 

http://m.hani.co.kr/arti/opinion/column/858265.html#csidx4fc6d03f1a99783bbaf46621b6645b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