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부모 돌봄이 주 내용인 오남매와 배우자들의 단톡방에 막내 동생의 톡이 떴다. 요약하자면, 아버지(90살)가 거듭 전화하시며 엄마(86살)가 많이 좋아지셨다고 아주 반가워하시더라는 거다. 대뜸 떠올라온 ‘오래가시겠네’라는 내 생각을 들여다보느라, ‘다행 다행!!’을 늦게 달았다. 오십대 중반의 한 여성은, 요즘 자기가 젤로 부러운 사람은 양가 부모님들이 다 돌아가신 사람이란다. 이제 좀 돌아가실 만하면 병원이 또 살려내고 살려내고 한다는 말도 나왔다. 노인 상태가 급격히 나빠져 병원으로 모실지 자식들에게 연락을 하면, ‘병원으로는 안 모셨으면 한다’는 정중한 답이 늘고 있다는 요양원 직원의 말까지. 가족은 빼고 속이 통하는 또래들끼리라야 가능한, 여든 넘은 부모를 둔 5060세대의 서늘한 ‘솔까말’들이다.
첫 사례의 지출도 솔까말 해보자. 우여곡절을 거쳐 2012년 2월 중상 정도의 실버타운에 부모님이 입주했다. 당시 두 분의 개인 공간 보증금은 1억7800만원. 물론 이후 계속 올랐고, 기존 입주자들 보증금은 올리지 않는 게 감사할 뿐이다. 2018년 5월 납입금은 월 650만원 정도. 그 외 의료비, 별도 간병비, 소모품비, 용돈, 외식비 등 약 100만원을 합하면 월 750만원이다. 역산하면 6년3개월 동안 5억6천만원이 들었다. 두 분의 신체적 건강은 양호한 편이어서, 얼마나 ‘오래갈’지 모를 일이다. 부모님 재산도 좀 있고 오남매 중 셋이 중상층이며 무엇보다 가족 간 우애가 돈독해 다행이지만, 이미 상당한 무리다. 원가족은 대체로 중상층이지만 삶의 현장은 가난한 사람들 속인 나로서는, 돈 한 푼 못 내는 주제에도 돈의 쓰임새에 관한 윤리적 고민이 없을 수 없다. 그런 나를 붙잡고 엄마가 “나 정말 죽고 싶다”고 말할 때, 대꾸할 말을 찾지 못했다. 평균적으로 ‘팔자 좋은 노인’이라거나, 마음 하나만 뒤집으면 여기가 얼마나 좋은 곳이냐는 말은, 그녀의 울화만 부채질할 뿐이다. 인지장애로 인한 억지 주장이야 기가 차지만, 그녀의 분노와 우울과 의심은 나름 일관성이 또렷하다. 도대체 무슨 이런 놈의 세상이 있느냐 말이다.
최근 나온 통계는 다른 쪽을 보여준다. 지난달 30일 통계청이 발표한 가계 동향 조사를 보면, 소득 하위 20%인 1분위 가구주의 평균 연령이 1990년 38살에서 올해 63살로 높아졌다. 가구주의 나이가 70살을 넘긴 1분위 가구는 2015년 1분기 29.1%에서 올해는 43.2%로 급증했다. 빈곤과 고령이 겹친 늪지대가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팔십을 넘으면 요양원 입주가 급증할 테니 가계 동향 통계에도 잡히지 않을 거다. 실버타운이든 요양원이든 장애인이든 노인이든, 시설은 엄마 말대로라면 감옥이다. 신자유주의 사회에서는 효율 없는 존재들을 시설로 밀어 넣을 수밖에 없고, 다음 차례로 자신들이 밀려 들어갈 것이다. 모든 노인이 집과 동네에서 죽고 싶지만, 모든 자식들은 노인을 집과 동네에 둘 수 없다. 노인을 비효율이자 돈벌이 대상으로 만들어버린 이 아수라장에, 모두가 가해와 피해로 연루된다.
핵심은 무책임하게 발달한 의료와 과잉된 생명윤리와 복지의 사영화로 누가 이익을 챙기고 누가 고통을 감수하는가이다. 나를 포함해 직장에 건강진단서 낼 일이 없는 주변 육칠십 근처 사람들 중, 건강검진을 받지 않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스스로 죽지는 못할망정, 오는 죽음을 마다하지 않겠다는 거다. 죽음의 경로를 결단해야 할 시대다.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47503.html#csidx8fc9309f88645829aae61562357f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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