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 상류 따라 산길·강길 봄 산책
섬진강 상류 경치 중 첫손에 꼽히는 ‘장군목‘ 유원지. 요강바위를 비롯해 물살에 파이고 닳은 기묘한 바위들이 이색적이다.
변덕스러운 봄 날씨는 올해도 어김없다. 이른 봄꽃 소식에 들떠 있던 때에 강원 산간에서 눈 소식이 들리더니 전국적으로 세찬 비바람이 연 사흘 몰아쳤다. 비가 그치고 잠시 정신을 차리고 보니 온 세상이 벚꽃 천지다. 물오른 봄날의 풍경을 만나기 위해 섬진강으로 달렸다. 섬진강 상류인 순창이다. 상류는 구례에서 시작해 하동으로 이어지는 섬진강 하류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계곡이라기엔 넓고 강이라고 하기엔 폭이 좁은 물줄기다. 주로 암반으로 이루어져 백사장은 찾아보기 힘들다. 섬진강 상류 주변의 마을도 주로 산비탈에 형성돼 있다.
전북 순창군 동계면 구미리. 강을 사이에 두고 걷기 길인 ‘섬진강 문화생태 탐방로’와 자전거길인 ‘섬진강 자전거길’이 지나간다. ‘섬진강 문화생태 탐방로’는 임실군에서 구례군까지 총 88㎞로 그중 26㎞가 순창 구간이다. 주로 섬진강변 농로나 제방 길을 지나는 코스로 최소 5박6일 일정은 잡아야 완주할 수 있다. ‘섬진강 자전거길’ 역시 임실에서 광양까지 총 거리 148㎞의 장거리다. 1박2일 일정으로 여행하는 자전거족이 많다.
섬진강댐에서 광양까지 이어지는 ‘섬진강 자전거길’ 중 순창 코스는 가장 인기 있는 자전거길이다.
하루 일정으로 알맞은 걷기 코스로는 ‘예향천리 마실길’이 있다. 섬진강 상류 경치 중 최고로 꼽는 장군목 유원지 주변을 거치는 코스다. 마을과 마을을 돌고 나며 산길·물길을 걷는 네 개의 구간으로 나뉘어 있다. 한나절 걸으며 봄 풍경 누리기 좋은 야생차밭과 예향천리 마실길 2, 3코스를 찾아간다. 구미리 구미교 근처의 강경마을 입구가 출발점이다.
강경마을 뒷산의 오래된 야생차밭
강경마을은 벌동산(461m)과 생이봉, 두류봉(545.4m), 불암산이 활처럼 둥글게 휜 모양의 산중턱에 자리한 산촌마을이다. 강변에서 직선거리로 약 800m 떨어진 곳이다. 하지만 벌동산이 앞을 적당히 가려주는데다, 남향이라 하루 종일 볕이 들어 아늑하고 포근하다. 강경마을에서 19년째 차(茶)와 사랑에 빠진 자칭 ‘야생차 숲 관리인’ 박시도(52)씨를 만났다. 박씨는 강경마을 뒷산의, 약 3만3000㎡(1만평)에 이르는 대규모 야생차 숲을 돌보고 있다.
박씨는 “이 차밭을 언제부터 누가 심고 가꾸어 왔는지에 대한 기록은 없다”며 “강경마을 주위에 백제시대 사찰 6개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고, 두 군데 절터가 남아 있어 당시 사찰에서 관리했던 차밭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가지런히 정비된 보성이나 하동의 차밭과는 달리, 아무렇게나 흐트러져 자라고 형성된 야생차 숲이 궁금해져 마을 서쪽 언덕 너머에 숨어 있는 박씨의 차 숲으로 향했다. 논두렁·밭두렁을 지나 야트막한 고개를 넘는다. 사람의 발자국을 먹고 산 지 오래되어 보이는, 활엽수 잎 켜켜이 쌓인 푹신한 길이다. 강경마을 사람들이 산 너머 입석마을, 도왕마을을 오가거나 농사를 짓기 위해 다녔던 길이라고 한다. 고개를 내려서자 산자락으로 차나무가 보이기 시작했다. 모르고 왔다면 그저 잡목 숲으로 여겼을 것이다.
차나무 숲 오솔길 산책도 즐겨볼 만
숲은 활엽수가 주종이다. 주로 밤나무가 많고, 굴참나무, 때죽나무도 보인다. 그 사이사이에 성인 가슴 높이 정도 되는 차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 차나무는 반그늘을 가장 좋아한다. 그래서 수목이 다양할수록 차나무는 건강하다. 키 큰 활엽수는 차나무에게 적당한 그늘을 만들어 주고, 낙엽은 천연비료인 부엽토가 되어 준다. 그 속에서 차나무는 자연 도태되기도 하고, 씨앗이 떨어지면 자연 발아가 되기도 한다. 그렇게 사라지고 태어나기를 반복하며 오랜 세월 동안 인위적인 손길 없이도 차 숲은 이어져오고 있다.
숨어있던 3만3000㎡ 야생차밭
옛 사찰에서 관리한 차밭 추정
발 담그며 쉬기 좋은 드무소골
장군목에선 기묘한 바위형상 볼만
옛 사찰에서 관리한 차밭 추정
발 담그며 쉬기 좋은 드무소골
장군목에선 기묘한 바위형상 볼만
야생차 숲에는 밤나무·굴참나무·때죽나무와 어른 가슴 높이의 차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
이 숲의 특이한 점은 집채만 한 바위가 산 전체에 고루 분포되어 있다는 것이다. 박씨는 “자연스럽게 자리잡은 바위가 이 숲을 살리는 구실을 한다”고 했다. “바위 밑을 자세히 보면 실낱같은 물줄기가 보입니다. 옛날 어른들은 이걸 보고 바위가 오줌을 싼다고 했대요. 저 바위를 통해 숲의 습도와 온도가 조절되는 거죠.”
17년 전 이 차 숲을 만난 이래 박씨는 덩굴식물 정도만 제거하는 등 최소한의 관리만 하고 있다. 찻잎은 4월 말부터 5월20일께까지 서너 차례 딴다.
이른 봄날, 이런 초록 숲을 거닐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차나무 우거진 숲속 오솔길을 따라 걷는다. 구불구불한 산비탈 숲길을 따라 햇살 받은 찻잎들도 쉼없이 반짝인다. 길이라 부르기엔 좀 허술하지만 그렇다고 걷기에 불편하지도 않다. 차나무 숲길만을 걷는 데엔 느린 걸음으로 1시간쯤 걸린다. 숲을 벗어나 강경마을 주민들이 경작하는 논과 밭이 있는 은적골과 밤나무밭을 지나 다시 강경마을까지 가는 데는 총 1시간30분 정도가 소요된다.
강마을 따라 걷는 예향천리 마실길
강경마을을 뒤로하고 ‘예향천리 마실길’ 2코스로 향한다. 마을 주차장에서부터 표지판이 잘 세워져 있어 찾아가기 쉽다. 먼저 마을 뒤 정자를 보고 걷는다. 시작부터 오르막길이 이어진다. 200m쯤 오르면 첫번째 고갯마루에 올라선다. 그늘을 드리운 소나무가 우거진 숲길을 형성하고 있다. 쉬어갈 수 있는 나무 의자도 곳곳에 놓여 있다. 2코스에는 갈림길이 딱 한 군데 있다. 송림이 끝나는 곳에 1코스와 연결되는 도왕마을 가는 길로 2코스 표지판을 보고 직진하면 된다. 두 번째 오르막길은 새목재로 이어진다. 고개를 넘어서면 드무소골이다. 시원한 계곡물소리와 함께하는 산길이다. 드무소골 물길엔 자리잡고 앉아 쉬며 탁족하기 좋은 곳이 수두룩하다.
강경마을 뒤 ‘예향천리 마실길’ 2코스 숲길.
고개를 다 내려서면 2코스 종점인 사방댐이다. 이제부터는 섬진강과 나란히 걷는 3코스가 시작된다. 섬진강 상류 풍경 중 첫번째로 꼽는 장군목 유원지와 전망대 역할을 하는 현수교를 지난다. 이곳은 섬진강 자전거길이 겹치는 구간이다. 2코스가 숲길 위주였다면, 3코스는 강변길이다. 탁 트인 시야와 함께 시원스럽게 펼쳐지는 섬진강 줄기를 따라간다.
장군목에서는 오랜 세월 물길이 다듬어낸 기묘한 바위 형상들을 만나게 된다. 요강바위를 비롯해, 물살에 파이고 닳아 이뤄진 오목한 구덩이들이 강줄기를 따라 3㎞가량 펼쳐진다. ‘섬진강 자전거길’ 장군목 인증센터를 지난다. 강경마을 입구에서 강경마을과 새목재를 지나 사방댐까지 2코스는 4.5㎞, 사방댐에서 현수교와 섬진강 자전거길 인증센터를 지나 강경마을 입구까지의 3코스는 3.8㎞로 넉넉잡아 총 세 시간가량 소요된다. 강경마을 야생차 숲을 둘러보고 간다면 한 시간 반 정도 추가하면 된다.
글·사진 눌산/여행작가
순창 여행정보
‘농부의 부엌’의 산야초비빔밥. 사진 눌산 제공
금산여관 대문. 사진 눌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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