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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스 커밍스 “미 극우파 득세 오래 못가…한국 사드배치 잘못”

by 오직~ 2016. 11. 18.

지난 8일(현지시각) 치러진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제45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됐다. 동아시아와 현대 국제관계를 연구하는 미국의 대표적인 역사학자이자 정치학자인 브루스 커밍스(73) 시카고대 석좌교수로부터 이번 대선과 미국 사회, 한-미 관계, 미-중 관계 등의 미래를 들었다. 커밍스 교수는 <한국전쟁의 기원>(1986)으로 유명하며, 최근 펴낸 <미국 패권의 역사>(2011)에서는 전통적 미국사 서술과 달리 동아시아와 태평양 연안주의 관점에서 미국사를 정리해 주목받았다. 대면 인터뷰는 지난 10월 서울 부암동 여시재 대화당에서 이뤄졌고, 대선 뒤 전자우편을 통해 추가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는 선거 과정에서 이민자·여성 등 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노골적으로 보여줬다. 유럽 극우파처럼 인종주의적 정서를 자극했고, 이를 통해 저학력 백인층의 지지를 얻어 당선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앞으로 미국 사회가 전례없이 극단으로 흐를 것이란 우려가 있다.

“트럼프가 선거운동 과정에서 보여준 인종주의적 언행은 유럽 극우파와 닮았다. 대통령 당선으로 정치적 성공도 이뤄냈다. 하지만 그런 정서가 실제 미국 정치 구도 자체를 바꾸진 못할 것이다. 미국 정치는 유럽과 달리 오랫동안 중도로 수렴되는 경향을 보였다. 극단적 좌파도, 극단적 우파도 득세한 일이 없다. 선거운동 기간 동안의 극우파 득세 분위기는 미국 사회 특성을 고려하면 오래 지속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본다.”


-왜 그렇게 생각하나?

“미국은 근본적으로 유럽과 다른 역사를 갖고 있다. 미국은 봉건제를 경험하지 않았다. 초기 미국인 대다수는 빈 땅에 깃발을 꽂고 경작을 시작한 중산층 농민들이었다. 노예제는 남부에 한정됐다. 봉건영주와 같은 강력한 기득권층이 없었으므로 극우파가 힘을 얻을 가능성이 낮다. 애초 탄탄한 중산층이 존재했으므로 극좌파 세력 역시 존재하기 어렵다. 처음부터 자본주의 사회였던 미국 사회의 갈등은 유럽과는 다르고, 정치지형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저항 없이 정착된 자본주의라 뿌리깊은 자유주의 전통이 있다.”(그의 책 <미국 패권의 역사>를 보면, 1800년에 미국인의 90%는 농사를 지었고 이미 활발하게 농지를 매매하고 있었다. 1863년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은 노예 해방령과 함께 홈스테드 법에 서명해 미국인들이 무상으로 땅을 받아 경작할 수 있게 됐다. 혁명이나 정치적 격변에 따른 토지개혁으로 봉건제가 무너진 다른 나라들과는 큰 차이다.)


-유럽식 극우 정치가 자리잡기는 어렵다 해도, (트럼프 이후) 대외무역정책은 크게 달라질 수 있지 않나?

“무역에 관한 한 트럼프는 보호주의자다. 이미 1980년대부터 무역협정을 비판했고, 중국과 일본에 대해 약탈자적인 무역 관행을 일삼는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은 완전히 사망선고를 받았다. 트럼프는 북미자유무역협정(나프타) 폐기도 공언했다. 하지만 나프타는 1994년 이후 오랜 기간 지켜온 협정이기 때문에 폐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미국은 늘 자유무역을 옹호해왔다.

“전쟁 중이던 1941년 이후에도 자유무역을 지탱하는 정치지형은 강력했다. 그 이후 한 차례도 흔들린 적이 없다. 그런데 그 지형은 지금 명확하게 흔들리고 있다. 미국 경제의 탈산업화 탓이다. ‘러스트 벨트’(쇠락한 공업지대)라는 용어는 이미 30년 전에 나왔다. 미국은 1960~80년대에 일본, 한국, 대만에 일자리를 빼앗겼다. 지난 2000~2010년 통계를 보면, 미국은 이 시기 중국에 250만개의 일자리를 잃었다. 그런 큰 흐름을 트럼프가 처음으로 강력한 정치이슈로 만들어낸 것이다.”


-실리콘밸리의 신산업이 날로 발전하는데 탈산업화가 큰 문제가 되는가?

“저숙련이나 철강, 자동차와 같은 구산업 쇠퇴는 문제가 없다고 보는 정치인들도 있다. 힐러리 클린턴은 대학 교육을 받지 못한 백인 노동자 계층의 지지를 얻기 위한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다. 하지만 세계대전 이후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는 여전히 상당한 인구를 차지한다. 이들 상당수는 중서부 지역 혹은 다른 지역에서 농장이나 자동차공장 같은 곳에서 일했던 사람들이다. 60대 이상인 이들이 트럼프 핵심 지지층이 됐다.”


-미국의 한반도 정책으로 화제를 돌려 보자. 트럼프 정부에서도 미국은 대북 제재를 강화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또 선거 기간 동안 미국 조야에서는 ‘선제공격’에 대한 언급도 했다.

“빌 클린턴 행정부조차 1994년 당시 선제공격을 하려 했다는 점에서 (지금의 ‘선제공격론’에) 많은 우려가 있는 게 사실이다. 다행히 얼마 전 윌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의 말을 듣고 안도했다. 그는 ‘북한 미사일을 막을 수 없기 때문에 선제공격은 실효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선제공격 개념은 이렇다.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을 쏘려 하면, 설치 후 액체연료 주입까지 몇 시간이 걸린다. 미국이 위성을 통해 미리 관찰할 수 있다. 미사일 발사 직전에 미리 공격할 수 있다. 이게 선제공격 개념이다. 하지만 고체연료를 쓰는 무수단 미사일이 개발된 이상 이젠 불가능하다. 고체연료는 액체연료와 달리 항상 미사일에 저장해 놓을 수 있어 언제든 발사 가능하다.”


-북한이 통제 불능이라는 문제가 있지 않나?

“그건 사실이지만, 일종의 전략적 안정성은 더 커지고 있다고 본다. 억지이론(Deterrence theory) 관점에서 보면, 냉전시대에 소련과 미국은 핵무기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양측간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


-북한이 핵 개발을 지속할 것이라고 전망하는가?

“만약 조지 부시 행정부(2001~2009)의 위협이 없었더라면 북한은 핵개발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대통령 취임 후 부시는 북한을 이란, 이라크와 함께 ‘악의 축’으로 규정했다. 2002년 9월 부시는 선제공격 독트린을 천명했고 이는 이라크 침공으로 이어졌다. 이 시기에 나는 북한 언론을 주의깊게 읽었다. 북한은 사담 후세인 대통령이 핵무기를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침공당한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공언한 것이 핵 억지력이다. 실제 핵 억지력을 과시하기 위해 시그프리드 헤커 스탠퍼드대 교수와 같은 전문가를 북한으로 초청하기도 했다. 그리고 2006년 첫 핵실험을 감행한다. 이제 강경파 손에 놓인 북핵은 실재하는 위협이 됐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이른바 ‘전략적 인내’ 정책을 고수해왔다. 평가와 전망은?

“전략적 인내 전략은 실패했다. 대북 제재 일변도로 가는 것을 멈춰야 한다. 대신 쿠바, 미얀마, 이란과 그랬듯이 북한과도 관계정상화에 나서야 한다. 시급한 것은 북한의 핵미사일 프로그램을 중단시키는 것이다. 당장 비핵화 요구는 어렵다. 한반도 안정 없이 통일은 어렵다. 주목할 점은 현재 북한은 미국, 중국, 한국과 각각 게임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일례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문제는 한-중 관계를 멀어지게 했다는 측면에서 매우 잘못된 결정이다. 북쪽에 핵, 미사일 실험을 할 명분까지 제공하게 됐다. 미국은 일본에 또다른 사드를 배치하려 한다. 단기간에 이 지역은 분열 양상을 보이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북한은 자신들이 미국, 중국, 한국을 이처럼 혼란에 빠뜨릴 수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경제적, 군사적 측면에서 미국과 중국의 갈등을 우려하는 시각도 많다.

“물론 중국 문제는 심각하다. 실제로 미국은 중국을 포위하는 중이다. 이미 중국 주변에 상당한 해군력과 공군력을 배치해두고 있다. 세계 권력의 근본 축은 중국과 미국 사이에 놓여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걱정스런 행보다. 하지만 중국과 미국 사이에는 엄청난 경제적 상호의존성이 존재한다는 점도 떠올려야 한다. 남중국해 9단선과 같은 군사 문제를 제외하고는 많은 아이디어를 교류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미·중 양국이 자국 경제에 타격을 줄 위기 수준으로 상황을 몰고 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본다. 다만, 미국은 중국이 지역 맹주로 남기를 원한다. 글로벌 헤게모니로 등장하기를 원치 않는다.”


-중국이 미국을 위협할 정도의 글로벌 헤게모니 국가가 될 것이라고 보는가?

“무엇보다 군사력 측면에서 중국이 20~30년 안에 미국을 따라잡기는 어려울 것이다. 경제적으로 중국은 매우 강력하지만, 그들만의 독보적인 기술은 찾기 어렵다. 핵심적으로 중국은 민주주의를 도입하기 전까지 패권국가가 될 수 없다. 민주화 이후에도 패권국가 위상을 얻는 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사실 중국의 가장 큰 문제는 다른 나라 사람들을 자극할 만한 소프트파워가 없다는 점이다. 현재 중국은 1960년대 마오쩌둥 당시보다 아이디어가 곤궁하다. 중국의 평화로운 부상(화평굴기) 기조를 유지했던 장쩌민, 후진타오 시대를 돌아봐야 한다. 남중국해 문제 등으로 주변국과 갈등을 만들기보다 ‘낮은 자세를 유지하라. 시간을 벌어라’고 강조했던 덩샤오핑의 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여시재 이원재 기획이사, 이숙현 객원연구원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america/77075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