江雪(강설) 唐 柳宗元 (당 유종원)
千山鳥飛絶
萬徑人滅滅
孤舟蓑笠翁
獨釣寒江雪
산이란 산, 새 날지 않고
길이란 길, 사람 자취 없는데
배 하나에 도롱이 삿갓 쓴 늙은이
홀로 낚시질, 찬 강에 눈 내리고
읊을 때마다 세 번 탄식 _ 손철주
시에 어려운 낱말이 없다. 새기는 대로 문장이다. 첫 구의 새김이 ‘일 천, 뫼, 새, 날다, 끊다’이다. 이어주면 ‘일 천 뫼에 새 날기가 끊겼다’가 된다. 나머지 구도 쉬이 읽힌다. 쉬운 시어로 천고의 절창이 되기가 쉬운가. 절창은 천고를 지나며 거듭나기 마련이라 ‘강설’은 번역이 하고많다. 때마다 태깔이 달라진다. 역자들이 제 깜냥을 뽐낸 사례를 보자. 작고한 시인 이원섭은 이렇게 풀었다. ‘새도 날지 않고 인적마저 끊였는데/ 강에 배를 띄워 도롱이 입고 삿갓 쓰고/ 퍼붓는 함박눈 종일 홀로 낚는 늙은이’. 그는 원시 오언절구를 숫제 삼장시조로 바꾸었다. 수를 부린 덕분에 가락이 살고 멋이 넘실거린다. 신기하기는, 조선족 김택의 번역이다. ‘뭇 산에 날아예던 새마저 사라지고/ 길에는 행인의 발자취도 없어졌는데/ 도롱이에 삿갓 쓰고 쪽배 탄 늙은이/ 눈 내리는 찬 강에서 외홀로 낚시 놓네’. 모름지기 ‘의고’란 이런 솜씨일 테다. 일찍이 설도의 ‘춘망’과 황진이의 ‘상사몽’을 가슴 저릿한 노랫말로 풀어낸 안서 김억의 예스러움이 김택이란 역자에게서 되살아난 듯하다.
번역이랍시고 나도 해봤다. 밝히건대, 노산 이은상의 옛적 번역에 슬며시 몇 자 손댄 것이다. 해본들 마지막 구는 어쩔 도리가 없다. 저 도저한 도치법이 이 시의 알천이니 말이다. 노산은 글자순을 따르는, 이른바 ‘축자역’이 시상과 맞아떨어짐을 알았다. 다른 이와 달리 결구를 도치로 푼 연유가 거기에 있을 법하다. 이 얘기는 뒀다 하고, 작자 유종원의 심회를 잠깐 돌이켜본다. 정치 혁신에 실패하고 당나라 장안에서 쫓겨난 그는 좌천의 낙담을 시로 곱씹었다. 낯설고 물 선 타관, 마음 둘 곳 없으매 외로움이 끝내 죄어쳤다. 오죽하면 ‘이 몸 천억 개로 변할 수 있다면/ 봉우리마다 서서 고향 바라보련만’ 하고 읊었을까. 함에도 ‘강설’을 한가한 서경으로만 읊조리는 짓은 가당찮다. 시의 운인 ‘절’ ‘멸’ ‘설’에서 낌새가 엿보인다. 우리 발음이지만 느낌이 온다. 입 밖으로 소리 내보라. 잇소리 ‘리을’의 뒤끝이 적막강산으로 번지다가 까무룩 사라진다. 버림받은 시인의 하소는 메아리가 없다. 중국 원어는 어떤가. 사성 중에 입성인 ‘줴’ ‘몌’ ‘쉐’가 압운이다. 입성인 까닭에 짧고 급한 소리가 난다. 그 소리마저 곧장 거둬들여 감추는 발음이다. 쫓기고 몰리는 심정이 거기 얹힌다.
어디 시의 운자만 그럴까. 기승전결, 각 구의 앞머리 글자도 기가 막힌다. ‘천’과 ‘만’, ‘고’와 ‘독’을 짝으로 불러들인다. 대우의 뻔한 작법이라 치부하면 그만인가. 천부당이요, 만부당이다. 시 속의 ‘천만’은 천 오름 만 갈래의 산과 길이겠다. 세상의 온갖 것들이기도 하다. ‘고독’은 무엇인가. 외롭고 쓸쓸한 감정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고’는 외톨이고, ‘독’은 혼자다. 단독의 실존이다. 숱한 것들에 둘러싸여 있으되 오로지 홀몸의 위엄이 ‘고독’ 두 글자에 어린다. 절멸하는 시공 속에 절명하지 않는 존재의 삼엄함이 시행이 지날수록 분명해진다. 더 늦기 전에 저 도치법의 참맛을 봐야겠다. ‘홀로 낚시질, 찬 강에 눈 내리고’. 숨구멍이 터진다고 해야 할까. 시를 옥죄던 적막이 마침내 출구를 만난 것 같지 않은가. 말은 다 했으나 뜻은 다함이 없는 시, 한 번 읊을 때마다 세 번 탄식이 나오는 시가 유종원의 ‘강설’이다.
손철주 미술평론가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73126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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