公無渡河歌 (공무도하가)
그대 강을 건너지 마오 公竟渡河(공경도하)
그대 끝내 강을 건넜구려 墮河而死(타하이사)
물에 빠져 돌아가셨으니 當奈公何(당내공하)
그대여 어찌해야 하리오
작자 미상 公無渡河(공무도하)
그대 강을 건너지 마오 公竟渡河(공경도하)
그대 끝내 강을 건넜구려 墮河而死(타하이사)
물에 빠져 돌아가셨으니 當奈公何(당내공하)
그대여 어찌해야 하리오
2주에 한 번씩 시 이야기를 할 것이어서 정직하게 ‘격주시화’라 했다. 옛날 시와 최근 시, 외국 시와 한국 시를 체계 없이 오가게 될 것이다. 작품 선택의 주제를 묻는다면 그저 ‘인생’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인생, 이 고루한 말만이 나를 언제나 숙연하게 한다. 인간은 이상하고 인생은 더 이상하다. 이 진실에 충분히 섬세한 작품을 선호한다. 그런 작품들로 인생을 공부해 왔으나 아직도 무지하고 미숙하여 나는 다급하다. 인생에 대해 별말을 해주지 않는 작품까지 읽을 여유가 없다. 첫 회를 ‘공무도하가’로 시작하는 것은 이것이 우리 최고(最古)의 노래여서만은 아니다. 가장 오래된 인생과 그 고통이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배경 설화는 잘 알려져 있다. 조동일의 <한국문학통사> 1권의 해당 부분을 옮긴다. “조선에 곽리자고라는 뱃사공이 있었다. 어느 날 새벽에 배를 손질하고 있노라니, 머리가 새하얀 미치광이 사나이가 머리를 풀어헤친 채 술병을 끼고 비틀거리면서 강물을 건너는 것이었다. 아내가 따라오면서 말려도 듣지 않고, 마침내 물에 빠져 죽었다. 그 아내는 ‘공무도하’(公無渡河)라는 사연의 노래를 지어 불렀는데, 그 소리가 아주 슬펐다. 노래를 다 부르자, 아내도 빠져 죽었다. 사공은 돌아와 자기 아내 여옥(麗玉)에게 그 이야기를 하고, 여옥이 그 노래를 다시 불렀다.”
고조선 시대의 일로 추정되는 이 사건은 우리보다 먼저 중국에서 진(晉)나라 때 최표(崔豹)에 의해 <고금주>(古今注)에 기록됐고, 이후 실학자 한치윤의 <해동역사>(海東繹史)에 설화와 가사가 함께 옮겨져 우리 문학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노랫말은 다양하게 번역돼 왔는데, 대체로 죽음을 말리는 애원이거나 죽음 앞에서의 절망이다. “그대여, 저 물 건너지 마오. 그대 기어이 저 물 건너다가 물에 빠져서 죽고 말면 나는 어찌하라고, 그대여.”(김대행) 이것은 사건 이전의 애원이다. “님더러 물 건너지 말래도, 님은 건너고 말았네. 물에 빠져 죽었으니, 님이여 어찌하리오.”(조동일) 이것은 사건 이후의 절망이다.
배경 설화에서 흥미로운 점은 이 짧은 노래의 탄생 및 전파에 연루된 사람이 최소 넷이나 된다는 것이다. 강으로 뛰어든 사내가 있다. (범상치 않은 행색과 광태에 가까운 행위를 증거 삼아 몰락한 샤먼이라 주장하는 견해가 있고, 술병을 지참했다는 점에 주목하여 디오니소스에 준하는 주신(酒神)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그리고 그를 말리다가 실패하고 뒤따라 죽은 여자가 있다. 여기에 더해, 목격한 바를 아내에게 말해 소재를 제공한 남자가 있고, 그것을 곡조로 재현한 예술가가 있다. 이 노래가 품고 있는 인생의 비밀들을 놓치지 않으려면 네 사람 모두의 내면을 다 살펴야 하리라.
그러기 전에 첫 두 구절에 주목하려 한다. “공무도하”(公無渡河)와 “공경도하”(公竟渡河)가 이루는 대구(對句)에는 긴장이 있다. 두 구절에서 다른 것은 한 글자뿐이니까, 긴장은 결국 ‘무’(無)와 ‘경’(竟)의 대립에서 나온다. ‘무’는 여기서는 ‘없음’이 아니라 ‘없어야 함’이다. 어떤 일을 행하지 말아달라는 간곡한 요청이 이 글자에 담겨 있다. ‘경’은 ‘마침내’ 혹은 ‘드디어’를 뜻하니, 이는 어떤 일이 결국 벌어지고 말았다는 사실을 지시한다. 요컨대 이 노래는 간절한 ‘무’를 냉혹한 ‘경’이 무너뜨리는 구조로 돼 있다. 인생에는 막으려는 힘과 일어나려는 힘이 있다는 것. 아무리 막아도, 일어날 어떤 일은 일어난다는 것.
먼저 백수광부에게 그렇다. 물에 뛰어든 백수광부를 무당이나 주신으로 보는 연구들에는 합당한 논거가 있겠으나, 그렇게 보면 이 작품은 문헌이 될지언정 시가 되지는 않는다. ‘광부’(狂夫), 즉 미친 사람이라 했으니, 그렇게 보는 편이 좋을 것이다. 나는 그를 상상한다. 삶이 힘들어 자주 강가에 서 있고는 했을 것이다. 극단적인 선택을 생각하다가도 이내 고개를 저었을 것이다. 미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으므로 미쳐서라도 견뎠을 것이다. 더는 견딜 수 없게 된 날, 그가 술기운을 빌려 투신하던 그 순간에도, 그는 자기를 말려달라고 속으로 외쳤을지 모른다. 내가 내 뜻대로 되지 않았을 것이다.
백수광부의 처는 어땠을까. 나는 그녀를 상상한다. 남편이 취할 때마다 그를 좇아 강가로 달려 나간 적이 여러 번이었을 것이다. 그녀의 간절한 만류로 막아온 죽음이었으나 그날의 그를 말릴 수는 없었다. 일어날 일은 일어나는 것이었다. 그때 웬 노래였을까. 그가 물속으로 막 들어갔을 때만 해도 돌아오라는 절규였을 말들이 그가 물속에 잠기는 순간 인사불성의 노래로 바뀌기 시작했으리라. 에우리디케를 잃은 오르페우스 같았을 것이다. 네가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었다. 여기서 너란 남편이기도 하지만 삶 그 자체이기도 할 것이었다. 이제 그녀 앞에는, 뜻대로 안 되는 삶 대신, 뜻대로 되는 죽음만이 남아 있었다.
그들 곁에 또 한 사람이 있었다. 나는 계속 상상한다. 두 사람이 잇달아 강물에 휩쓸려 죽는 장면을 옆에서 지켜보는 일이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곽리자고는 거대한 무력감과 허무함 속에서 귀가했을 것이다. 그날 밤 그는 자신이 낮에 목격한 두 건의 죽음을 아내에게 설명하면서, 뒤따라 죽은 여인의 마지막 노래를 들었노라 말한다. 남편이 어설프게 복원했을 노래를 여옥은 온전하게 되살려냈다. 그녀가 백수광부 처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뜻대로 되지 않는 인생에 대해 노래했으리라. 남 일 같지 않은 어느 부부의 죽음을 생각하느라 그들은 늦게까지 잠들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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