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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굿떼란? 반생명의 실체 까발리고 때려부수는 것이야” - 백기완

by 오직~ 2015. 12. 16.

 

 

 

http://www.hani.co.kr/arti/culture/music/719968.html

 

 

 

 

 

“이미 다 썩었어. 썩은 나무도 발로 차야 넘어져. ‘패대’를 해야 하는 거야. 그런데 그러는 놈이 없어. 왜 없느냐? 그걸 알려면 민중사상의 뿌리를 알아야 해. 그 핵심이 꼴굿떼야.” 이 ‘꼴굿떼’ 이야기를 앞세우고, 백기완(82)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이 민중사상 제2차 특강 ‘언땅을 지고 어영차 일어서는 새싹, 나네처럼’을 펼친다. 오는 11일 저녁 7시부터 서울 동숭동 학전블루소극장에서 열릴 특강은 지난해 ‘버선발’ 이야기 등을 중심으로 펼쳤던 특강에 이은 두번째다.

 

“꼴굿떼란 ‘꼴리는 놈들이 굿하는 떼거리’라는 말이야. 꼴린다는 게 뭐냐? 목숨 아닌 부패와 타락, 억압과 착취, 독점과 독재, 나아가 그것을 눈 가리고자 하는 거짓과 깡매(위선), 사람이 사람으로 살 수가 없는 세상인 ‘얄곳’, 생명이 아닌 깽목숨(반생명) 따위를 갈라쳐 패대를 하는 것, 다시 말해 썩은 나무를 패듯 낱낱이 까밝히고자 하는 거야. 한마디로 반생명의 실체를 까발리고 때려 부수는 거지. 그걸 혼자서 하는 게 아니고 여럿이 함께 한다는 거야. 그게 굿이야. 원래 굿이란 모여서 놀이하고 의사를 결정하고 그것을 일구는 것(실현)을 이르는 말이야.”

 

민중의 꼴굿떼 정신 앞세워
대학로 학전 소극장서 11일
“민중 스스로 버선발 나서야”

“민중사상 제대로 푸는 이는 나뿐
나 죽으면 말림도 없으니 보러와”
전인권·노동자합창단도 함께

 

지난 여름의 고관절(엉덩이뼈) 골절로 “아직도 달 반은 더 가야 제대로 앉고 설 수 있을 거라더라”고 할 정도로 불편한 몸인데도 백 소장은 시민운동 현장에 거의 빠지지 않는다. 서울 동숭동 연구소의 1층 안방 아랫목 탁자 앞에 앉아서 그는 말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도 썩물들의 짓거리야.” ‘썩물’이란 “사람 몸에 들어오면 살과 피를 먹고 살다가 온몸을 썩게 만든 뒤 그 사람뿐만 아니라 옆사람과 이웃, 나아가 세상과 우주 모두를 구렁으로 몰아가 멸망시키는 거짓과 위선, 억압과 착취의 깽목숨들”이다. “유신잔당과 신자유주의 아류 썩물들의 짓거리지. 봉건주의와 제국주의 침략에 맞서 싸워온 아름답고 거룩한 민중의 발자취들을 없애버리고 썩물들의 정권 유지에 필요한 것만 남기겠다는 거야.”

 

썩물들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백 소장은 <춘향전>얘기를 꺼냈다. 춘향전에서 걸러낸 생각은 꼴굿떼 얘기와 더불어 ‘백기완 민중사상’의 제1특징이요, 핵심적 구성요소다.

 

어릴 때 할머니, 어머니와 함께 한 밥상머리에서 들은 얘기다. “춘향이 너무 예뻐서 벼슬아치가 잡아갔어. 춘향을 좋아한 사람이 나중에 춘향을 구출해. 몽둥이를 들고 가서 구출한 게 아냐. 벼슬아치가 나라가 내려준 자리를 배경으로 그렇게 한 거지. 이거 거짓말이야. 벼슬아치가 힘없는 백성을 구해준 적이 없어. ‘춘향전’은 글줄이나 아는 놈들이 자기네 맘대로 만들어낸 얘기야.” 그는 그걸 지배계급이 자신들 입맛에 맞게 “양식화한 것”이라고 했다. 그런 식의 ‘춘향 구출’은 또 다른 억압과 착취로 이어질 뿐이라는 얘기다. 봉건 계급질서의 실행장치인 나라가 선발해서 특권을 보장해준 양반 이몽룡의 구출은 나라와 계급질서에 대한 개인의 투항이자 몸을 파는 행위이지 해방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춘향이 속한 민중의 속박을 영구화하는 봉건계급체제의 공고화로 귀결될 뿐이다.

 

백 소장이 지난 특강에서 얘기한 ‘버선발’ 얘기도 같은 맥락이다. 땅에 한 맺힌 가난뱅이 집 아이가 자라면서 버선발로 밟는 것마다 모조리 땅으로 변하는 신통력을 갖게 된다. 그는 자신이 밟아 만든 땅에 사람들이 마음대로 작대기만 꽂으면 다 가져도 좋다고 했다. 나중에 보니 여자아이 셋을 데리고 사는 할머니는 힘센 자들에게 밀려 땅 한뙈기도 못 가졌고, 힘있고 잘 달리는 납쇠(세금 걷는 자)·쫄망쇠(땅장사 하는 자)·뼉쇠(여자장사 하는 자)들이 땅을 다 차지했고 그들이 또 세상을 지배하더라는 얘기다. 그러니까 “버선발 기다리지 말고 민중 자신이 버선발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백기완 민중사상’의 핵심은 꼴굿떼를 통해 썩물들의 놀음을 패대기쳐 깨부수고, 참목숨 일구는 ‘살티’(티는 씨앗이란 뜻)를 완수하는 것이다. 그냥 비판이 아니라 “반생명과 싸우는 참생명의 아우성, 그들의 꿈·희망(하재)을 실현하는 것”이다. “너도 일하고 나도 일하고, 너 잘 살고 나도 잘 살되, 착하고 올바르게 잘 사는 세상”, 그게 바로 그가 말하는 ‘노나메기’다.

 

“사람들은 민중은 글자도 모르고 기록도 할 수 없으니까, 민중사상은 있지도 않고 있을 수도 없다고 생각해. 민중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도록 세뇌됐어. 지배계급은 민중사상을 못돼먹은 것, ‘뜨저구니’(심술, 질투)라고 했지.”

 

백 소장은 특강에서 그게 잘못된 생각이라는 걸 보여주려 한다. “활자 쓰는 이들이 내 얘기를 제대로 다뤄준 적이 없어. 가진 것 없고 학벌 없어 하염없이 눈물 흘린 적이 많아. 걸핏하면 빨갱이라고 두들겨 패고 저희들끼리 놀았어. 홀로 자연이란 백지에다 민중사상 긁다 보니 어느덧 80이 넘었더라.” 통일문제연구소(1984년)를 시작한 지 30년이 넘었고, 그 전신인 백범사상연구소(1967년) 시절부터 치면 50년이 다 됐다. “그 세월 동안 1년 예산 짤 돈이 한 번도 없었어.”

 

그는 “이 민중사상을 제대로 이야기할 줄 아는 이는 세상에 이 백기완이밖에 없다”고 자부한다. 그 얘기를 풀어가는 강력한 장치가 백기완만이 제대로 할 수 있다는 ‘말림’이다. “판소리에 ‘발림’(내용에 맞춰 손발·온몸을 움직여 소리나 이야기의 감정을 표현하는 몸짓)이 있듯이, 내 특강엔 말림이 있어. 활자나 글이 아니라 소리와 몸동작으로 풀어가는 것이지.” 그는 팔순 노구를 율동에 맞춰 흔들며 연극 무대에서 다진 듯한 특유의 목청으로 우렁차게 노래를 불렀다. “이거 나 혼자 연구한 거니까, 나 죽으면 말림도 없어지는 거야. 그러니 보러 와. 마지막일지도 몰라.” 특강엔 전인권, 노동자합창단이 노래손님으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