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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의 살점 뜯는 ‘유럽의 샤일록’

by 오직~ 2015. 7. 28.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international_general/701871.html

 

 

 

 

지난 23일 새벽 4시(현지시각), 그리스 의회가 밤샘 토론 끝에 표결에 부친 2개의 개혁법안이 통과됐다. 지난 16일 첫 표결에 이어 두번째다. 유럽연합 등 국제채권단이 850억유로(약 108조원) 규모의 3차 구제금융 조건으로 내건 긴축안을 뒷받침하기 위한 국내법 개정이었다.

그리스 구제금융은 실패작
채권국, 빌려준 돈 92% 회수
그리스는 재정구조 나빠졌을 뿐
근본 원인은 유럽 금융자본주의

기술혁신 대신 임금 깎는 기업들
그리고 그에 바탕 둔 금융자본
세계경제 멋대로 쥐락펴락

자본주의 속성은 벼락경기·금융위기
한번도 공정한 사회 만든 적 없어
20세기 초 한때 고삐잡은 것처럼
초국가적 시장개입 고려해볼만

 

그리스가 구제금융을 받기 위해 세제와 연금 시스템을 고치고 관련법까지 바꿔야 하는 사태는 ‘주권 침해’라는 비판을 낳기에 충분했다. 나아가 전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금융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 성찰과 근본적 회의론도 커지고 있다.

 

■ ‘호모 에코노미쿠스’ 신화의 파산

“이기적 인간의 합리적 선택이 최적의 결과를 만든다.” 공리주의에 뿌리를 둔 현대 주류경제학은 ‘호모 에코노미쿠스’(경제적 인간)를 의심의 여지가 없는 전제로 삼는다. 그러나 인간 본성의 다양한 모습들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걸 보여준다. 경제적 손실을 감수하는 이타성, 조건 없는 기부나 재산의 사회환원 등 얼핏 ‘비합리적 선택’으로 보이는 행위는 현실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전통 경제학에 심리학과 진화생물학을 접목한 행동경제학이 등장한 배경이다.

 

“자본주의는 ‘가장 저급한 인간의 가장 저급한 동기가 어떻게든 가장 좋은 결과를 만들어낸다’고 믿는 깜짝 놀랄 만한 신념이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합리적 인간’ 가설에 바탕한 자유방임형 자본주의를 꼬집으며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그리스를 재정 파탄으로 몰아간 일부 부유층의 행태, 그 이후 국제채권단이 구제금융 조건으로 ‘무조건 긴축’을 고집하면서 터져나온 난맥상은 이런 풍자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일 것이다.

 

마크 블라이스 미국 브라운대 교수는 최근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 어페어스>에 ‘아테네의 고통-왜 그리스가 재정위기로 비난받아선 안 되는가’라는 제목의 글을 실었다. 그는 “그리스 위기의 뿌리는 그리스와는 한참 거리가 멀다. 위기의 근원은 유럽의 금융 구조다”라고 진단했다. “그리스는 단지 구제금융 자금이 흘러 지나가는 도관이었을 뿐”이며 “미디어가 거듭 떠드는 것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는 어떤 식으로도 구제금융 자금의 수혜자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런 주장은 구체적 수치로 확인된다. 세계 부채탕감 운동 조직인 ‘주빌리 부채 캠페인’이 정리한 자료를 보자. 2008년 유럽 금융위기 이후 그리스가 국제채권단의 구제금융을 요청한 2010년 당시의 국가부채는 약 3100억유로였다. 그런데 5년간 구제금융을 받고 난 2014년 말 그리스 국가부채는 3170억유로로 오히려 늘었다. 그리스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비율도 2010년 133%에서 2014년 말 현재 174%로 높아졌다. 유럽 채권단의 주장과 기대와는 달리, 재정구조가 건전화하기는커녕 더 악화된 것이다.

 

그리스 정부에 제공된 구제금융의 92%는 다시 채권단의 주머니로 들어갔다. 유럽의 상업은행 등 민간 채권자들은 그리스에 투자한 돈을 대부분 되찾았다. 지난 5년간 대다수의 그리스 시민들이 비참한 생활을 감내하며 빚을 갚은 결과다. 최근 영국 일간 <가디언>이 사설에서 “그리스는 가입이 허용되지 않았어야 할 단일통화(유로)라는 십자가에 못박혔다”고 지적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블라이스 교수는 앞의 글에서 “우리가 그리스 위기를 있는 그대로 보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스를 제대로 이해한 적도 없었다”고 지적했다.

 

 

■ 정보화·공유경제가 여는 세상

그리스 구제금융 사태와 유로존의 균열 조짐은 2008년 세계 금융위기가 직접적 계기였다. 금융위기 직후 전세계 생산량(GDP)이 13%, 교역량은 20%나 급감했다. 유럽에선 그리스·포르투갈·아일랜드·스페인 등 유로존(유로화 통용 19개국)의 취약 국가들이 전례 없는 빈사 상태로 내몰렸다.

그리스가 3차 구제금융을 받는 대가로 더욱 가혹한 긴축을 받아들인 것에 대해선 비판론과 동정론이 뒤섞인다. 마찬가지로, 구제금융 재개 협상 과정에서 강경론으로 일관했던 독일에 대해서도 원칙주의라는 찬사와 비정한 빚쟁이라는 비난이 한꺼번에 쏟아진다. 그러나 어떤 평가나 비판도 진실의 일부만을 드러낼 뿐이다. 그리스 사태를 계기로, 유럽에선 좌우파를 막론하고 현 자본주의 시스템의 문제점에 대한 진단과 대안 모색이 활발해질 전망이다.

 

영국 준공영방송 <채널 4>의 경제부문 에디터인 폴 메이슨은 지난달 출간한 저서 <포스트 캐피털리즘>에서 현대 자본주의의 구조적 한계를 짚고 대안 모델을 그려 보였다. 우리말로 옮기면 ‘후기 자본주의’ 또는 ‘자본주의 이후’ 정도다. 그가 지난 17일 일간 <가디언>에 이 책을 소개한 장문의 기고에는 ‘자본주의의 종말이 시작됐다’라는 제목이 달렸다.

 

메이슨은 기고에서, 현대 자본주의는 투기자본과 신자유주의가 시장을 장악하면서 자본주의 본연의 역동성을 잃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신자유주의는 최근 200년 새 처음으로 임금을 억제하고 사회적 힘과 노동자 계급의 탄력성을 파괴하면서 번성한 경제모델”이라고 질타했다. 이전에는 노동자들의 조직된 힘 덕분에 기업가들이 임금 삭감이라는 낡은 사업방식을 되풀이하지 않고 혁신을 선택함으로써 새로운 자본주의 형태를 만들어갔는데, 오늘날은 더 이상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메이슨은 ‘포스트 자본주의’의 특성으로 ‘공유경제’와 ‘정보화’에 주목한다. 불과 반세기 전만 해도 지식정보는 사유재산이 아닌 공공재로 인식됐다. 그러나 지금은 생산 과정에서 지식 콘텐츠가 물질적 투입요소보다 더 큰 가치를 갖게 됐다. 문제는 정보의 개방성과 확장성이다. 지식재산권의 울타리에도 불구하고, 정보지식은 무한대로 복제와 유통이 가능한데다 그 비용이 거의 ‘제로’(0)에 가깝다. 근대 경제학의 출발점인 ‘무한한 욕망과 유한한 자원’, 즉 ‘희소성의 원칙’이 흔들리게 된 것이다.

 

메이슨은 이미 19세기에 카를 마르크스(1818~1883)가 “사회적으로 공유된 풍부한 지식정보에 기반한 경제의 역동성”을 내다봤다고 말한다. 마르크스는 사후에 출간된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1939년)에서, 사회적으로 축적되고 공유되는 ‘일반지식’이 지구상의 모든 사람을 연결하는 세상을 상상했다. 그리고 그런 정보경제가 “자본주의를 하늘 높이 날려버릴 것”이라고 썼다. 지금까지만 보면, 정보화 사회가 자본주의 체제를 무너뜨릴 것이란 마르크스의 예견은 빗나갔다. 그러나 현행 자본주의 시스템을 파열시키고 새로운 싹을 틔울 씨앗은 이미 자라고 있다. 메이슨은 유물변증법의 논리를 빌려, “오늘날 자본주의의 모순은 ‘자유롭게 쓸 수 있는 풍부한 상품·정보’와 ‘재화를 사유화, 희소화, 상품화하려는 독점기업·은행·정부’ 사이의 모순”이라고 주장했다.

 

■ ‘돈’에 대한 뿌리 깊은 경계

자유시장경제를 옹호하는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에도 경제 전문가이자 이 신문 논설위원인 존 플렌더가 자신의 신간 <자본주의: 돈, 도덕성, 그리고 시장>을 소개하는 형식으로 오늘날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칼럼이 실렸다. 플렌더는 먼저, 중국 증시가 최근 폭등과 폭락을 거듭하면서 중앙정부의 강력한 개입을 부른 사태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어디가 됐든 거품은 거품이며, 서구와 마찬가지로 중국에서도 ‘자본주의라는 야수’를 길들이는 건 간단치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는 것이다.

 

중국은 1978년 덩샤오핑이 시작한 개혁개방 정책으로 자본주의를 도입한 이래 인민들을 빈곤에서 구제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플렌더가 지적한 중국의 자본주의화 비용은, 산업화 초기 단계의 폭압적 비인간화, 극심한 경기변동, 불평등의 심화에 그치지 않는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경제성장을 이끄는 돈의 유인, 한마디로 ‘탐욕’에 관한 것이라고 플렌더는 말한다.

 

영화 ‘베니스의 상인’ 스틸컷.
영화 ‘베니스의 상인’ 스틸컷.

서구에서 돈에 대한 ‘도덕성 담론’은 짧게 잡아도 고대 그리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기원전 4세기 플라톤은 <대화편> 중 ‘법률’에서, “비즈니스는 부정하고 교활한 방식으로 인간의 영혼에 피를 흘리게 한다”고 비난한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장사를 품위 없고 시민적 책무를 갉아먹는 것으로 여겼다. 예수도 부자들을 멸시했으며, 성 바오로는 “돈을 좋아하는 건 만악의 근원”이라고 설파했다. 고대에서부터 오늘날까지 문학작품에서도 졸부들과 수전노의 속물성과 허식은 통렬한 풍자의 대상이다.

 

유럽의 경우 13세기까지 절정을 이룬 봉건시대에 부와 권력의 원천은 토지였다. 플렌더는 “검소함과 개척정신 같은 부르주아지의 미덕은 무시됐다”고 말한다. 이런 사정은 아시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기원전 5세기 중국의 유가는 사-농-공-상의 순서로 직업의 서열을 매겼다. 일본에서도 1868년 메이지유신 직전까지 사회계급은 무사-농민-기능공-상인 차례였다.

 

플렌더는 역사적으로 오래된 ‘비즈니스 혐오 정서’의 이유를 생산력의 한계로 설명한다. 근대적 자본주의가 태동하기 전까지 수백년 동안 일인당 실질소득은 거의 제자리걸음이었다. 그런 상태에서 장사, 즉 상행위는 어느 일방의 이익이 다른 쪽에는 손실을 낳는 제로섬 게임이나 마찬가지였으며, 도덕적 근거가 모호할 수밖에 없었다는 거다.

 

■ 자본주의는 지속가능할까

상업에 대한 편견이 깨지기 시작한 건 7세기 아라비아반도에서였다. 이슬람교의 창시자인 무함마드는 천사의 계시를 받기 전까지 대상무역으로 부를 쌓은 상인이었다. 중국에서도 10~17세기 송나라와 명나라를 거치면서 직업의 위계가 느슨해졌고, 부유한 상인들이 지주 계급으로 흡수됐다.

 

유럽에선 13세기 이후 봉건제가 몰락하면서 상인들과 은행가의 지위가 급상승했다. 이들은 화폐 기반 경제의 선구자이자 최초의 자본가들이었다. 14세기 이탈리아 작가 보카치오는 <데카메론>에서 “상인들은 깔끔하고 세련된 사람들”이라고 묘사했다. 세르반테스는 소설 <돈키호테>(1605년)에서 중세 귀족의 상징이던 기사를 우스꽝스럽게 풍자했다. 17~18세기 들어선 계몽주의 사상이 모든 분야를 휩쓸었다. 중세는 흔적까지 사라졌다.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1776년)을 썼고, 산업혁명이 본격화했다. ‘근대’와 함께 자본주의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러나 초기 산업자본주의의 최전선은 피를 뚝뚝 흘리는 착취의 경연장이나 다름없었다. 국가의 개입을 금기시하는 야경국가론이 자본의 활보를 뒷받침했다. 마르크스는 그 지독한 현장을 목격하면서 쓴 <자본론>의 첫 권을 1867년에 출간헀다. 자본주의의 냉혹한 성격은 20세기 들어 경제 선진국들에서 국가의 적극적 시장개입과 경제정책이 동원된 뒤에야 제동이 걸렸다.

 

플렌더는 <파이낸셜 타임스> 칼럼에서 이런 경고를 빠뜨리지 않았다.

 

“자본주의에는 영원한 진리가 있다. 하나는, 자본주의가 공정한 사회의 정치·경제를 창출한 적은 한번도 없으며 앞으로도 없을 것이란 점이다. 다른 한가지는, 벼락경기와 심각한 금융위기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영원한 속성이라는 것이다. 2008년 유럽 금융위기 때처럼, 이번 중국 증시의 거품도 이런 기본적 진실을 일깨워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