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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 타임과 메르스 사태 - 김우재

by 오직~ 2015. 6. 15.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694974.html

 

 

 

 

드라마 <골든타임>의 주인공은 응급의학자다. 최인혁의 소원 중 하나는 헬기로 골든타임 안에 응급환자를 수송하는 것이다. 이 제안은 “병원에 주차될 외제차가 고장날 수 있기 때문”에 기각된다. 병원장은 병원의 영리를, 최인혁은 환자의 권리를 대변한다. 병원이 망하면 헬기도 없다. 하지만 환자의 생존을 차선으로 여기는 병원도 무의미하다. 의료란 환자를 두고 벌어지는 이윤과 공익의 거친 싸움이다.

 

헌법 34조 6항에 따라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 재해는 재난과 같은 개념으로, 자연적/인위적 원인에 의해 지역사회가 동원할 수 있는 자원의 범위를 초과해 갑작스레 발생하는 사건을 뜻한다. 현대사회에서 재난은 대형화, 복합화 및 탈지역화되고 있다. 그중 전염병은 국제화되고 있다는 특징 때문에 잠재적으로 가장 위험한 재난으로 분류될 수 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재난의료는 공공의료의 영역에 속한다.

 

세계보건기구의 헌장은 건강을 ‘다만 질병이 없거나 허약하지 않은 상태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신체적, 정신적 및 사회적으로도 완전하게 안녕한 상태에 있는 것’으로 정의한다. 건강의 사회적 안녕상태를 다루는 분야가 공공의료다. 한국의 공공의료는 처참하다. 우석균에 따르면 메르스 사태는 한국 공중보건의료체계의 파산을 보여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80%를 웃도는 공립병원, 미국과 일본조차 30%가 넘는 그것이 한국에선 6%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거리에 보이는 병원 20곳 중 하나만이 공립병원인 나라에 살고 있다. 비상상황에 대비한 공공보건의료체계는 특성상 평상시 운영비용이 과다할 수밖에 없다. 영리 목적이 강한 민간영역은 이를 감당할 수 없다. 따라서 공공의료엔 국가의 철학과 사회적 합의가 녹아들게 되어 있다. 한국은 질병의 치료가 예방보다 중요한 국가다.

 

한국은 공공의료의 기형적인 축소 외에도, 예방의학을 비롯한 기초의학 분야가 임상의학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특징을 지닌다. 압구정동에 늘어선 성형외과를 보라. 놀랍게도 한국의 임상의료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한국은 인구당 컴퓨터단층촬영(CT) 장비와 자기공명영상(MRI) 장비 보유율이 최상위에 속하며, 제왕절개율도 최상위에 속하는, 치료/영리 중심 의료에서는 최상위 국가다. 하지만 응급의학이나 산업의학 등 예방의학에 속하는 분야들은 세계 최하위권이다. 의료 분야에도 양극화가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예방의학회장을 지낸 신영수는 이런 비정상적인 상황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예방의학을 전공한다는 사실로 인해 의과대학 동료들로부터 특별한 대접을 받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그 대접이라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긍정적인 것도 있지만, 그보다는 의사 같지 않은 일을 하는 사람, 또는 별 내용도 없이 말만 앞서는 사람으로 치부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한 국가의 의학 수준은 과연 의학이 국민의 건강을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데 얼마나 기여하는가로 평가되어야 한다. 메르스 사태는 한국 사회의 의료체계가 얼마나 기형적이고 무책임하게 국민의 건강을 무시해왔는지를 보여준다. 박근혜 정부의 수준은 의료관광과 영리병원을 창조경제라 주장하는 데서 알 수 있다. 기초의학을 전공하려는 의사의 수는 급속히 줄고 있다. 한국의 공공의료는 정부와 의사 모두에게 곧 버림받을 예정이다. 국가가 국민의 건강을 버린 이 시점에, 국민들은 스스로 살길을 찾아 나섰다. 메르스 확산지도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국가를 대체하고 있는 사건이다. 우석균의 말처럼, “시민들이 국가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지금 퍼지고 있는 것은 괴소문이 아니다. 새로운 국가의 모습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