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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중심’, 인간 중심의 아시아 - 김동춘

by 오직~ 2013. 6. 24.

 

http://goo.gl/RyfJm

 

 

 

 

지난 3일 새벽 중국 지린성 공장에서 폭발로 인한 화재사고가 일어났다. 이 사고로 120여명이 사망했고 77명이 중상을 입었다. 사상자 대부분이 농민공이었고 이들 중 90%는 인근 농촌에 거주하는 여성 노동자였다고 한다. 이번에 화재가 발생한 작업장은 하나의 출입구만 있었는데, 이 출구 역시 출근시간 이후에는 잠금 상태이기 때문에 대형 참사로 연결된 것이라 한다. 그런데 이것은 중국 전역에서 매일 발생하고 있는 노동집약 사업장 산업재해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이번 사고의 근본 원인은 사람에 대한 경시, 특히 사회적 약자인 농민공의 생명에 대한 경시에 있다. 출근하면 아예 나갈 생각 하지 말고 사육되는 소처럼 일만 하라는 이야기다. 기업주는 노동자의 밀집도가 대단히 높은 작업장에 소방통로나 긴급조명등과 소방 설비를 준비하지 않았고, 현지 소방부서는 안전검사를 할 때 설비 부족을 보고도 모른 척했을 것이다.

 

 

이런 사고를 접하면 한국 사람들은 1960~70년대의 수많은 탄광 참사를 떠올릴지 모른다. 그러나 중국의 원시적인 노동참사는 우리의 ‘과거’가 아니라 바로 ‘현재’다. 2008년 이천 냉동창고에서 40명의 일용직 노동자가 숨진 사고도 이와 거의 다르지 않고, 최근 당진 현대제철에서 5명의 노동자가 사망한 사고도 노동자의 생명 경시의 결과였다. 이천의 경우 사고 현장에서 유독가스가 발생해도 출구는 하나밖에 없었으며, 준공검사도 엉터리였고, 안전감독도 제대로 실시되지 않았으며, 작업 목표를 맞추기 위한 무리한 작업 강행이 사고의 원인이었다고 한다. 이번 중국 지린성의 사고도 천대받는 농민공이 주 희생자였듯이, 한국의 대부분의 중대재해 역시 직접 고용 상태에 있지 않은 일용직·이주노동자들이 주요 희생자다.

 

 

한국 언론은 ‘안전 불감증’이라는 모호한 용어로 책임을 흐리고 있지만, 돈벌이를 노동자와 인간의 생명보다 중시하는 천민자본주의의 노동 천시 문화, 당국의 묵인, 기업주 솜방망이 처벌 관행이 한국에서 계속되는 안전사고의 원인이 아닌가 생각한다. 최근 1년간 삼성전자·엘지화학·현대제철·지에스건설·대림산업·한라건설에서 모두 36명의 노동자가 사망했지만 산업안전보건법에 의해 처벌받은 기업주는 단 한 명도 없었다고 한다.

 

 

60년대 한국의 가톨릭노동청년회를 이끌었던 카르댕 신부는 “생명 없는 물질은 공장에서 값있는 상품이 되어 나오지만 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인간은 그곳에서 한갓 쓰레기로 변하고 만다. 노동자들이 그런 현실을 극복하고 하느님의 모습을 닮은 존귀한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설파했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이 도시의 아름다운 건물, 그곳에 진열된 멋진 상품, 종업원들의 감동적인 서비스 뒤에는 수많은 노동자의 고통, 우울증과 자살이 있으니 이들이 존중받아야 결국 우리 모두가 존귀한 인간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1년에 10만여명의 노동자가 중대재해로 사망하는 중국이 21세기 새 문명의 선도자가 될 수 없듯이, 1년에 2000여명의 노동자가 일하다가 죽어가는 한국에서 ‘창조경제’와 경제민주화는 언감생심이 아닐 수 없다. 사회의 가장 밑바닥 사람들의 인권 수준이 그 나라 품격의 수준이다. 소수의 특권과 다수의 노예화가 공존하는 세상은 새로운 신분사회다.

 

 

지난 100여년 동아시아를 지배해온 식민지 근대화, 부국강병의 기치는 노동자의 생명을 불쏘시개 취급한 역사였다. 생명의 가치, 노동의 가치를 존중하지 않는다면 ‘아시아의 세기’라는 구호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