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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굴해도 어쩌겠나, 날이 저무는데 - 곽병찬

by 오직~ 2012. 3. 15.

 

 

비굴해도 어쩌겠나, 날이 저무는데

 

 

 

 

 

나그네가 광야를 헤맨다. 돌연 들불이 일고 코끼리가 맹렬히 달려온다. 나그네는 도망치다 우물 속으로 뻗은 등나무 뿌리에 매달린다. 안도하며 아래를 보니 독룡이 입을 벌리고 있다. 사방엔 독사들이 혀를 날름거린다. 위에선 흰쥐 검은쥐가 뿌리를 갉는다. 들불은 등나무를 태우고, 나무가 흔들릴 때마다 벌들이 내려와 쏜다. 문득 헤~ 벌린 입속으로 꿀 다섯 방울이 떨어진다. 그는 달콤함에 절명의 상황을 잊는다.

불가에 전하는 우물가 등나무(井藤) 이야기다. 코끼리는 생로병사라는 삶의 이치, 우물은 생사의 경계, 나무뿌리는 생, 독룡은 사, 4마리 독사는 죽어 돌아가는 흙 물 불 바람(4대), 흰쥐와 검은쥐는 낮과 밤(세월), 들불은 늙음과 병, 벌은 온갖 미망, 꿀 다섯 방울은 권력욕 식욕 성욕 재물욕 수면욕을 뜻한다. 인간의 어리석음을 경계하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