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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평론(2011년1-2월)_116

by 오직~ 2011. 3. 14.

모든 개인의 삶은 하나의 예술작품일 수 있지 않은가. 회화나 건축이 미술품인데, 어째서 우리의 삶이 그렇지 않아야 하는가.

- 미셸 푸코

 

보편적인 인간가치에 충성하는 사람 _ 지식인

 

지식인이 진실을 정직하게, 용기있게 말한다는 것은 그 지식인 개인의 삶을 위엄있게 할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자신이 속한 사회를 희망의 공동체로 변화시키는 데 무엇보다 큰 기여를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진실'을 말하는 행위는 지식인이 자기의 이웃들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인지도 모른다.

 

 

항공모함에는 모든 것이 있다. 바닷물을 식수로 만드는 기술이 있고, 법정과 형무소가 있으며, 병원과 발전소가 있다. 그러나 살아있는 자연이라고는 바깥에서 실어온 식료품과 인간뿐이다. 자연이 완벽하게 거세된 인공의 낙원, 그러나 실제로는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고 오직 소비만 있을 뿐이다. 그(더글러스 러미스)는 거기서 '경제발전과 개발이 추구하는 궁극정 이미지'를 얻었다.

 

 

Anima Mundi ( Soul of the World, 세계영혼)

지구라는 거대한 유기체가 살아있는 하나의 생명체라면 거기에는 반드시 영혼이 있을 터이고 우리는 그 안에서 노니는 작은 영혼들이라는 것이다.

 

고대인들이 살아 움직이는 이 세상과 그 안에서 하나의 생명체로서 의미롭게 사는 근거의 중심에 '아니마'를 상정한 것은 참으로 탁월한 발견이다. 그리고 각 생명체의 아니마와 그것들의 복잡하고 변화무쌍한 관계들의 총체로서 '아니마문디'를 생각해낸 것은 가히 천재적 발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자신을 온전히 지켜내고 주위와 평화롭게 지내는 길은 모든 자연의 정령들과 친구가 되고, 그 배후에 있는 위대한 혼 앞에서 겸손한 것뿐이다.

 

헌대적 조건에서 아니마문디를 회복할 수 있는 길은 하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물질 추구의 포기, 즉 가난해지는 것이다.

(애니미즘의 부활 - 황대권)

 

 

 

 

미국이 중동에 공을 들이는 이유도 명확해 보인다. 남아있는 석유매장의 60퍼센트 이상이 중동에 묻혀있고, 미국은 현재 남은 매장량의 3퍼센트를 보유하고 있으면서 생산량의 25퍼센트를 소비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세계 석유매장량의 약 25퍼센트를 보유(중동 전체 매장량은 세계의 60퍼세트 이상으로 추정)

 

많은 사우디인들은 석유를 재앙으로 여긴다. 그들은 반세기 남짓 석유 노다지의 시대를 살았다. 그것은 그들의 삶을 철저히 다른 것으로 바꾸어놓았고, 그들의 전통문화를 파괴해버렸다. 지금시대에 만들어진 사우디 속담 중에 이런 게 있다. "내 아버지는 낙타를 탔고, 나는 롤스로이스를 타고, 내 아들은 제트기를 타고, 아들의 아들은 낙타를 탈 것이다."

 

어떠한 대체물도 석유의 고갈을 메워주지는 못할 것이라는 입장인데, 대체 에너지원은 모두 화석연료경제에 어느 정도 의존하고 있다는, 상식적이고 기초적인 사실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이를테면 풍력발전기의 금속 터빈은 풍력에너지 기술로 만들어낼 수 없고,  태양광발전시스템에 필요한 납축전지는 기존의 태양광발전시스템으로 만들어낼 수 없다.

 

수소는 부시 대통령이 2003년 국정연설에서 수소자동차를 중심으로 한 '수소경제' 운운하며 떠오른 대체 연료인데 한마디로 '공상'이라는 게 저자의 입장이다. 수소는 항상 다른 원소와 결합한 화합물의 형태로 존재하기 때문에 분리해내려면 에너지가 들고, 밀도가 매우 낮아서 저장, 수송을 위해서는 압축해야 하는데 그 비용도 엄청나기 때문이다.

 

20세기 말 이른바 녹색혁명으로 세계곡물생산량은 250퍼센트 증가했는데, 이것은 전적으로 화석연료의 공로였다. 천연가스로 만든 비료, 석유로 만든 농약, 역시 화석연료를 동력으로 한 관개 덕분이었다. 이것은 토양 황폐화와 질병의 확산을 초래했다.

 

지금의 산업농 시스템하에서는 곡물 1칼로리를 생산하는 데 16칼로리가 '투입'되어야 하며, 육류 1칼로리를 생산하자면 70칼로리를 투입해야 한다.

(세상은 다시 넓어진다 - 이한중)

 

 

 

 

-왜 도시들이 자신의 능력으로 감당할 수 없는 대형사업에 몰두할까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어느 나라나 사정은 비숫합니다. 덴마크사람으로 옥스퍼드대학교에 재직하고 있는 벤트 플뤼브예르그 교수는 <사기에 의한 디자인>이란 흥미로운 논문을 발표했어요. 이 글에서 그는 '마키아벨리주의 공식''역전된 다위니즘'이라는 개념을 제시합니다.

 

마키아벨리주의란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죠. 프로젝트 제안자들이 사업의 비용과 환경에 대한 영향은 과소평가하고, 이익과 지역개발 효과는 과대평가하여 환상의 세계를 디자인해내는 하나의 공식이 있다는 말입니다. 대부분의 대형사업이 그렇게 해서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다위니즘이란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면 멸종하고 마지막에는 적자(適者)만 살아남는다는 주장 아닌가요. '역전된 다위니즘'이란 반대로 아주 문제가 많은 종-사업만 살아남는 현실을 빗댄 것입니다. 플뤼브예르그 교수는 지하철, 경전철 따위 도시철도사업, 터널, 항만, 공항, 도로와 오페라하우스 같은 대형사업을 그런 예로 들고 있습니다.

(꾸리찌바, 그 후 10년 - 박용남)

 

 

 

 

☆ 녹색평론(2011년1-2월)_116

      녹색평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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