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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움을 찾아서

시리어스맨 (A Serious Man) _ 조엘코엔, 에단코엔

by 오직~ 2010. 4. 6.

 

평범한 미국인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상의 일들이 불협화음처럼 나열되다.

아내는 바람이 나고, 직장생활은 불안하고, 뜻대로 되지 않는 가족과 자식 문제, 중년의 건강, 미래...!

살아가는 매순간이 위기인 것을

어쩌면 순간의 망각으로 살고, '희망'이라는 단어에 의지해 살고...

 

영화의 마지막은? 거대한 '토네이도'가 밀려온다.

절망인가, 그 절망에서 빠져나와 희망으로 갈 것인가

이순간이 지나면 어찌 될 것인가?!

 

 

 

"이 영화의 내러티브는 아이러니로 가득하다. 우선, 래리 본인이 강의 도중 설명을 돕기 위해 이야기한 '죽은 고양이' 우화와 랍비한테서 들은 '고이의 이빨' 이야기에 대한 래리의 태도가 그렇다. '죽은 고양이'를 이해했는데 성적이 왜 에프냐는 학생에게 왜 숲을 보지 못하냐고 따졌으면서, 래리 본인은 '고이의 이빨' 이야기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이빨에 담긴 메시지에 집착한다. 먼저 바람을 피웠으면서 남편더러 집을 나가라는 래리의 아내, 남의 아내랑 바람을 피워 놓고는 모든게 잘 될거라고 다독여주는(?) 싸이 애이블먼, 아빠 돈을 훔쳐놓고는 동생에게 자신의 돈을 훔쳐갔다고 대니를 구박하는 래리의 딸, 엄연히 남의 집 영역을 침범해 놓고 뭐 어쩌라는 식의 이웃집 부자(父子) 등의 존재들. 후반에 성인식을 치르고 비로소 밀린 돈을 갚으려는 대니 앞에 펼쳐진 광경은 또 어떤가.

텍스트 뿐 아니라 관객이 영화를 보는 상황까지 아이러니다. 영화를 보노라면, 갑작스레 이혼 위기, 재직 위기, 가치관 위기를 한꺼번에 겪는 래리에게 동정이 생기다가도, 그 놈의 있지도 않은 답을 구하려고 (아니면 이미 답이 없다는 것을 내심 알면서도 자신의 신념을 부정하지 않으려고) 애쓰고 좌절하는 래리의 모습이 너무나 우스운 것이다. 마이클 스툴바그의 진짜 답답해서 돌아가시겠다는 표정을 보고 있자니 안쓰러우면서도 그렇게 웃길 수가 없다. 비상식과 부조리로 점철된 수난을 겪는 주인공의 아등바등을 지켜보며 웃는 관객이라니. (그런데 지금을 사는 우리도 말도 안 되는 일들을 경험하고 있지 않은가?라고 스스로에게 물으면, 래리의 모습을 보고 웃는 자신의 모습도 우스워 질지도 모른다.)

코엔 형제는 <시리어스 맨>을 통해 언제나 그렇듯 운명론 따위를 논하면서 그들이 얼마나 영화를 꼼꼼히 만드는지 다시금 보여준다. 단 한 장면도 우발적이지 않고, 이야기 진행이나 영화상 효과를 위해 스토리보드에 계획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니 래리가 지각하는 세상이 말도 안 된다는 설정 자체가 하나의 커다란 아이러니다. 이를테면, 개별적이었던 장면들이 갈수록 한 장면에 더해지고 반복되는 패턴이 있다. 영화 초반에는 래리와 래리의 가해자(?)가 일 대 일로 마주하다가, 갈수록 두 명 이상의 주변 인물들이 한 장면에 동시에 등장해 래리를 괴롭힌다. 어떤 장면에서는 래리의 아내, 딸, 아들이 동시에 이 불쌍한 현대판 욥을 에워싸 한 마디씩 번갈아 던진다. 그래서 앞서 말했듯,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심각해지는 래리의 비극을 관객은 웃으면서 보는 아이러니를 빚는데 일조하는 것이다."

씨네21_네티즌의 글 中


 

 

 

감독 : 조엘코엔, 에단코엔 2009作

배우 : 마이클 스털버그(래리 고프닉), 리차드 카인드(아서 고프닉), 프레드 멜라메드(싸이 앨버멘), 새리 레닉(주디스 고프닉)

20100405씨네큐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