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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들이길

화가의 나무엔 주홍감 주렁주렁 _ 대구

by 오직~ 2009. 11. 8.

 

http://www.hani.co.kr/arti/specialsection/esc_section/384593.html

 

 

대구 경상감영과 성터 주변 골목
대구 경상감영공원에서 향촌동 지나 계산동성당까지 3㎞

 

대구시 중구 한복판에 옛 대구읍성 터가 있다. 성곽 흔적은 사라졌으나 공원으로 꾸며진 옛 경상감영 자리가 남아 있다. 조선 중기부터 영남지역 행정·문화의 중심지였고, 일제강점기 이후 대구의 최대 번화가이자, 문화·예술의 중심거리로 발전해온 곳이다. 경상감영공원을 출발해 시계 방향으로 걷는다. 성곽 주변의 과거와 현재를 들춰보는 시간여행이다.

 

국내 첫 음악감상실 녹향이 문패 단 골목

 

경상감영공원 지하 주차장에 차를 대고 관광안내소에서 지도와 자료를 챙긴다. 하마비①부터 만난다. ‘절도사 이하 모든 이는 말에서 내려 걸으라’는 표석(節度使以下皆下馬碑)이다. 공원은 멀리서 가까이서 걸어온 남녀 어르신들로 가득하다. 운동하고 쉬고 대화하고 연애하는 공간이다. 경상감영은 1601년 안동에서 옮겨온 이래 일제가 침탈하기까지 300년 남짓 존재했다. 영조 때(1736년) 둘레 2.65㎞에 이르는 석성을 쌓았는데, 1906년 당시 관찰사이던 친일파 박중양이 일인 상권 확보를 위해 허물어버렸다. 감영공원의 선화당②(관찰사 집무실)과 징청각③(관찰사 처소·이상 도유형문화재 1, 2호)은 현재 보수공사 중이다. 선화당 앞뜰엔 1770년 만든 측우기가 있었으나 화강석 받침돌(보물 842호)만 남아 있다. 공원 한쪽에 모아놓은 29개의 선정비 무리를 둘러보고 공원을 나서며 문화유산해설사 김종석(66)씨가 말했다. “측우기는 뭐냐카마 영조 46년에 만든 긴데, 친일파 박중양이가 일본인 인천기상관측소장한테 선물한다꼬 줘삐린 기라.”

 

» 대구 경상감영공원의 하마비.

공원을 나서 향촌동 거리를 걷는다. 향촌동 주변은 1920년대부터 광복 전까지 ‘한강 이남 최대 번화가’였다. 광복 전까지 5만여명의 일인이 거주하며 금융·상권을 장악했다. 광복에 이어 한국전쟁 피란기를 거치는 동안 이곳엔 숱한 예술인들이 찾아와, 밤새 잔질하고 절규하며, 좌절과 희망을 노래했던 곳이다. 이런 분위기는 70~80년대까지 이어지며 대구 문화·예술의 산실 노릇을 했다. 감영 옆 네거리 모퉁이 건물에, 국내 첫 음악감상실 ‘녹향’ 터④임을 알리는 작은 팻말이 보인다. 1946년부터 60~70년대까지 문화예술인들의 아지트 구실을 하던 곳이다. 화가 이중섭, 시인 유치환, 소설가 정비석, 국문학자 양주동 등 당대 지식인들이 들락거렸다. 시인 양명문은 이곳에서 가곡으로 유명해진 ‘명태’를 썼다. 한국전쟁 당시 서울에서 대구로 옮겨온 음악감상실 르네상스⑤도 이 골목 안에 있었다.

 

음악소리 요란한, 어르신들이 드나드는 ‘성인텍’ 골목으로 나선다. 70~80년대까지 “이 골목에 오려면 돈 좀 쥐고 있어야” 했던 고급 음식점 거리였다. 인텔리 쌍과부가 운영하던 백록다방⑥, 제일모직 노동자 출신 마담이 운영했던 호수다방이 이 골목에 있었다. 이중섭·백기만 등이 와서 죽치던 백록다방은 이중섭의 은박지 소 그림들이 제작된 곳이기도 하다. 대구 중심 번화가를 상징하던 이 골목은 이제 주도권을 길 하나 건너 동성로 쪽에 넘겨준 채 낡아가고 있다.

 


옛 북쪽 성곽 자리인 북성로로 나선다. 이 길은 ‘순종 황제 어가길’⑦로도 불린다. 1909년 일제의 권유로 첫 지방 순행에 나선 순종 황제가 부산 오가는 길에 이토 히로부미, 이완용 등과 함께 이곳에 들렀다. 대구역에서 옥교(임금이 타는 가마)를 타고 선화당으로 갈 때 이 길을 지났다. 당시 관찰사 박중양은 길옆 민가를 부수고 길을 넓혔다고 한다. 이후 이 길은 일본인들이 밀집해 살게 되면서 일제강점기 대구 상업 중심지로 떠올랐다. 당시 상권을 주도하던 미나카이백화점 건물이 90년대 초까지 있었으나 철거됐다.

 

중앙로 길 건너 동성로로 접어든다. 거리 분위기는 앞서 향촌동 쪽과 확연하게 구분된다. 향촌동이 ‘중장년의 거리, 국밥집 거리, 옛 정취만이 쓸쓸하게 떠도는 한물간 거리’라면, 동성로 쪽은 청춘의 거리, 패스트푸드의 거리, 최첨단 패션이 난무하는 떠오르는 거리다. 옛 성곽의 동문인 진동문 터 지나 지하도 건너서 한일극장 옆 골목으로 들자 몰려든 젊은 남녀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붐빈다.

 

지하철 중앙로역에서 큰길 건너 진골목(긴골목)⑧으로 든다. 분위기는 다시 확 바뀐다. 식당도 극장도 중앙로를 사이에 두고 흥하고 망해가는 모습이 뚜렷하다. 낡은 집들 즐비한 진골목은 이를테면 서울의 피맛골과 같은 뒷골목이다. 1907년 골목 안에 살던 7명의 부인들이 금붙이 등 패물을 모아 헌납하며 여성 국채보상운동을 시작한 곳이다. 과거엔 달성 서씨들이 모여 살던 부자 동네였다고 한다. 대구지역 첫 양옥집(1930년대)이라는 정소아과의원과 은퇴 지식인들이 즐겨 찾는다는 미도다방⑨을 거쳐, 20년째 육개장으로 성가를 올리는 진골목식당의 70년 된 한옥, 대청마루식당이 된 오래된 한옥(이원만 코오롱 창업자 고택)을 들여다보고 60~70년대 화교 거리였던 종로로 나선다. 약전골목인 남성로와 만나는 네거리 모퉁이에서 옛 남문인 영남제일관 표지석⑩을 볼 수 있다.

 

한약방·약재상 즐비한 남성로를 따라 옛 대구제일교회 쪽으로 걷는 동안 은은한 한약 내음이 온몸을 감싸온다. 약전골목은 본디 옛 대구읍성 객사 마당에서 열리던 약령시가 옮겨와 형성됐다. 350년 역사를 지녔다. 1658년 처음 개설돼 250년간 전국 최대 약령시로 명성을 얻었다. 1907년 성곽과 객사가 헐리면서 남성로가 새로운 약전골목으로 자리잡게 됐다. 골목 안의 옛 대구제일교회⑪ 건물은 1933년 화교 건축업자가 지은 것으로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1990년 교회가 동산 지역으로 옮긴 뒤 지금은 선교관으로 쓰인다.

 

약령전시관 앞 골목으로 드니 구수하고 훈훈한 한약 내음이 한결 짙어진다. 그저 걸어다니기만 해도 “한약 냄새에 초기 감기는 바로 떨어진다”는 골목이다. 제환·제탕 업소가 몰린 곳인데, 청도에서 팔조령 넘어와 이곳을 거쳐 문경·충주 쪽으로 이어지던 옛 영남대로의 한 구간이기도 하다.

 

» 저항시인 이상화의 고택. 시인은 이곳에서 말년(1939~1943)을 보냈다.

이 골목과 계산동 성당 뒤 네거리로 주변은 뽕나무골목으로 불린다. 임진왜란 때 이여송과 함께 원군으로 왔던 명나라 장수 두사충이 귀화 뒤 이곳에 정착해 뽕나무를 심고 살았던 데서 비롯한 이름이다. 우리 근현대사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는 골목이기도 하다.

 

민족시인 이상화가 살던 고택⑫과 그의 형인 독립운동가(미술가) 이상정의 고택⑬, 국채보상운동 주창자 서상돈 고택 등이 이 골목에 몰려 있다. 영남대 전신인 청구대학 설립자 최청해의 고택 터 옆 골목을 나와 계산오거리의 대로를 만나 계산동성당 정문으로 걷는다. 성당 담벽 길에선 1920년대 성당 모습을 아트타일 벽화로 장식하는 작업이 한창이다. 계산동성당⑭ 건물은 1902~1918년에 걸쳐 지어진 대구지역의 첫 고딕 양식 건물(사적 290호)이다. 고 김수환 추기경이 신부 서품을 받은 곳이자, 박정희 전 대통령이 육영수 여사와 결혼식을 올린 곳이기도 하다.

 

 

중앙로를 사이로 흥망사가 공존

 

성당 옆 마당엔 ‘이인성 나무’⑮가 있다. 대구 출신 화가 이인성이 1930년대 그린 ‘계산동 성당’의 배경이 된 감나무다. 성당 뾰족탑과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이인성 감나무’는 주황빛 감들을 주렁주렁 매달고 환하게 서 있다. 여기까지 3㎞, 중구청에서 닦은 골목 탐방길 두 코스의 일부를 이어서 걸었다.

 

 

 
» esc 워킹맵 13. 대구 경상감영과 성터 주변 골목. 지도 그래픽 디자인 멋짓 (※클릭하시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워킹 쪽지

 

◎ 수도권에서 경부고속도로 타고 북대구나들목에서 나가 서변대교 건너 대구 시내로 간다. 대구역에서 한 구역 거리에 경상감영공원이 있다. 공원에 지하 주차장이 있다. 10분에 500원, 4시간 이상~당일 주차 1만원. 대구시 중구청에서 개발하는 4개의 문화유적 탐방 코스가 있다. 단체로 신청하면 문화유산해설사의 안내를 받을 수 있다. 중구청 (053)661-2191.

◎ 해장국 전문 진골목식당 (053)253-3757, 대구 따로국밥 원조 국일따로국밥 (053)253-7623, 동인동 찜갈비 골목에 들러 매운 찜갈비 맛을 보거나, 경북대 후문이나 서부정류장 옆 등의 막창골목에 들러 소막창구이도 즐겨볼 만하다. 경상감영공원(대구광역시 중구 포정동 21) 관광안내소 (053)254-9404. 대구시에서 운영하는 정기코스, 순환코스, 테마투어 등 대구시 주요 볼거리·체험거리를 찾아가는 시티투어버스도 있다. 1인 5000원. 대구관광정보센터 (053)627-8900.

 

 

 

 

대구/글·사진 이병학 기자 한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