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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들이길

옛병사들 윷놀이판에서 놀아볼까 / 충주

by 오직~ 2009. 12. 5.

 

충주 옛도심과 사직산
충주 관아공원에서 향교, ‘젊음의 거리’ 거쳐 사직산까지 4㎞

 

중부 내륙의 중심에 충주(忠州)가 있다. 중원(中原), 예성(蘂城)으로도 불린다. 모두 ‘가운데 중(中)’이나, ‘마음 심(心)’ 자가 들었다. 내륙의 중심이니 마음의 중심이기도 하다. 일찍부터 육로·수로 교통의 요충지였다. 삼국시대 이래 이 지역을 차지하기 위한 다툼이 치열했다. 요충지답게 시대마다 쌓인 선인들의 발자취도 뚜렷하다. 충주읍성 등 옛 도심에도 골목마다 볼거리들이 들어 있다. 충주 관아공원에서 출발해 향교와 서문 밖 ‘젊음의 거리’를 거쳐 사직산까지 걷는다.

 

반기문 총장도 다닌,
유서깊은 교현초등학교

충주 관아공원은 옛 읍성의 관아 건물이 있는 곳이다. 정문인 충청감영문을 들어서면 목사 집무실이던 청령헌①이 보인다. 제법 깔끔해 보이는 건물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주춧돌 형태가 다양하고 기둥 크기도 어울리지 않게 느껴진다. 1869년 충주목사 조병로가 읍성을 쌓으며 지었는데, 화재로 이듬해 다시 지었다. 이때 주변 절 창룡사에서 여러 목재와 석재들을 가져다 썼다고 한다. 예성문화연구회를 이끄는 어경선(58)씨가 건물 밑 주춧돌 하나를 가리켰다. “저 무늬가 새겨진 돌은 절에 있던 게 분명합니다. 관아 건물 주춧돌엔 무늬가 없지요.”

 

청령헌 뒤 담 너머 교육청 자리엔 본디 커다란 연못과 천운정이란 정자가 있었고, 그 옆쪽엔 객사 건물이 있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일본이 성곽을 헐어 길을 만들고, 다른 건물들도 철거했다. 청령헌 옆엔 중앙 관리들 숙소로 쓰던 제금당이 남아 있다. 정문 옆 담 밑의 축성사적비②는 충주성을 쌓고 그 내력을 적은 빗돌이다. 축성사적비 옆에 모아놓은 석재들 중엔 윷판이 새겨진 돌도 있다. 크고 작은 전란과 쟁탈 중심으로 기록되는 세월 한편에서, 웃고 떠들며 윷을 던졌을 옛 병사들의 망중한이 떠올려진다. 이 모든 것을 지켜봤음직한 느티나무(수령 530년) 한 그루가 동헌 서쪽 담 옆에 서 있다.

 

관아공원 정문을 나와 예총회관 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는 지역 문인들의 시화전을 둘러보고 해장국 골목으로 간다. 20~30년째 선지해장국을 끓인다는 식당이 네댓 곳 있다. 일제강점기 번화가인 ‘본정통’과 만나는 모퉁이에 2층 일식가옥(현 가구점)이 남아 있다. 연탄난로가 따뜻한, 충주에서 제일 오래된 다방이라는 자매다방(1981년 개업)을 지나 읍성 남문 터로 간다.

 

» 충주관아의 동헌인 청령헌.

남문(봉아문) 터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남문 터 부근에도 2층 일식가옥③이 있다. 남쪽 성곽 자리는 동촌네거리 쪽으로 이어진 사직대로로 추정된다. 교현천 건너 갱고개(개인고개·갠고개) 쪽으로 걷는다. 교현천의 옛 이름은 염해천이다. 옛날 한 부족국가가 다른 부족의 공격을 받아 떠날 때 비축했던 소금을 연못에 버리고 메웠다고 한다. 주변은 염해뜰로 불린다. 교현천 건너 오른쪽에 보이는 야트막한 언덕이 만리산이다. 전국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이 산을 밟아야 복을 받는다 해서 한번씩 밟고 갔다는 산이다.

 

충주향교 가는 길에 충주화교소학교④를 만난다. 1950년대에 세워진 화교학교다. 30~40년 전까지 충주엔 화교 수백가구가 식당·포목점 등을 운영하며 살았다고 한다. 빛바래가는 학교 건물 벽엔 ‘무망재거’(毋忘在 ) 글자가 또렷하다. 제나라 환공에게 재상 관중이 ‘거 땅으로 쫓겨가 고생했던 일을 잊지 말고 올바른 정치를 하라’고 한 말이다. 화교로 충주에서 태어나 이 학교에서 배웠다는, 화교소학교 교사 주배환(37)씨가 친절하게 설명했다. “한때는 학생 수가 100명이 넘었다고 해요. 지금은 단 2명뿐입니다.”

» 충주관아 동헌 앞의 충주성 축성사적비(1869년 건립). 축성 내력과 성곽의 규모, 도움을 준 이들의 명단 등이 적혀 있다.

조선시대 지방 교육기관 향교⑤로 간다. 충주향교엔 공자와 설총·안향 등 국내 18현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본디 도심 동북쪽 계명산(계족산)에 있었으나 임진왜란 때 화재로 이곳으로 옮겼다. 향교 옆엔 화재 당시 뛰어들어가 위패를 구해낸 인물을 기려 세운 사당 호성사와 명륜학당이 있다. 교현이란 지명은 향교와, 만리산 줄기 끝의 야현(대장간이 있던 고개)에서 한 글자씩 따와 만든 것이다. 향교 왼쪽의 골목길을 지나 교현초등학교 쪽으로 내려선다. 교현초등학교는 113년 역사를 지닌 유서 깊은 학교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이 학교를 다녔다. 학교 옆 성공회 교회 안쪽엔 창고 같은 오래된 건물이 하나 있다. 십자가가 일부 떨어진 채 낡아가는 옛 교회 건물⑥이다.

 

운동장에 인조잔디가 깔린 학교 앞을 지나 천변로를 만난다. 오른쪽 예성교 건너서 자유시장 들머리 바라보며 옛 북문 터로 걷는다. 자유시장은 충의시장과 사천 건너편 무학시장과 이어져 있다. 북문 터⑦는 일제강점기 본정통으로 불린 골목 들머리로 추정된다. 충주전통문화회 김인동(56) 회장은 “지난해 농협 신축공사 중 치과병원과 농협 사이에서 성문에 썼던 것으로 보이는 누조(빗물받이 성벽돌)가 발견됐다”고 말했다.

 

제1로터리 건너 중앙시장 왼쪽 골목으로 든다. 순대·돼지머리국밥으로 이름난 오래된 먹자골목이다. 가구점 거리(옛 본정통)로 나와 서문 밖(성서동) ‘젊음의 거리’로 간다. 패션점·카페·패스트푸드점이 즐비한 번화가다. 40년 전 이곳은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아내는 제사공장이 많았다고 한다. “빠께스 들고 번데기 사러 가면 빠께스 든 사람들이 늘 줄을 서 있었다”고 김인동씨가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 교현초등학교 옆 성공회 충주교회의 옛 교회 건물.

이사 자주 해서 화났나? 인상 쓴 광불

베로 커피점에서 마키아토 한 잔(1000원) 사들고 복개된 사천 공영주차장을 건너 청풍방앗간·쾌남이용원 골목으로 오른다. 대원사에 보물 98호인 고려시대 철불(높이 98㎝)⑧이 있다. 사각형 얼굴에 길게 찢어진 눈, 일그러진 표정을 한 검은색 좌불상이다. 최근 100년 새 이리저리 옮겨 다니길 다섯 차례나 했으니, 표정이 일그러질 만도 하다. 철불 별칭이 ‘미칠 광(狂)’ 자를 쓰는 광불인데, 건물 안에 모시면 화재가 난다는 속설이 전해온다. 1915년 충주공고 근처에서 군청으로, 37년엔 마하사로, 59년엔 대원사로, 94년 충주박물관으로, 97년 다시 대원사로 옮겼다. 충주는 옛날부터 이름난 철 생산지다. 단월동 단호사와 엄정면 백운암에도 고려 때 철불이 있다.

 

사직산 자락 문화동(옛 역전동)의 여성회관 앞으로 간다. 사직산은 조상들이 토지신과 곡식의 신께 제사를 올리던 산이다. 일제강점기까지도 이 산 정상에 사직단이 있었으나, 일제는 이 자리에 자기 나라 신을 받드는 신사를 세웠다. 지금은 ‘상수도 배수지’로, 출입이 통제된다. 올 초 사직산 자락 체육관 시설 공사중에 옛 토성 터가 발견됐다. 어씨는 “주변에 성터지기라는 지명이 있는 것으로 보아, 사직산 성터가 통일신라 때 있었다는 봉황성일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했다. 사직산 여성회관 앞에는 사직단 유래비(문화동 유래비)⑨가 세워져 있다. 배수지 쪽으로 잠시 오르면, 멀리 해 질 녘 풍경이 멋지다는 호암저수지 물길 한자락을 내려다볼 수 있다. 여기까지 약 4㎞를 걸었다.

 

 

» 충주 옛도심과 사직산. 지도 그래픽 디자인 멋짓 (※클릭하시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워킹 쪽지

⊙ 서울 강남터미널과 동서울터미널에서 충주행 고속버스가 아침 6시부터 20~30분 간격으로 운행된다. 1시간30분 걸림. 충주공용버스터미널 (043)853-0114.

수도권에서 영동고속도로 여주분기점에서 중부내륙고속도로로 바꿔 탄 뒤 충주나들목에서 나간다. 충주관아공원은 성내동 충주문화회관 옆에 있다. 문화회관에 무료 주차장이 있다. 주변 골목 공영주차장은 30분에 300원. 사천 복개천 공영주차장은 30분에 500원.

⊙34년 전통의 올뱅이(다슬기)해장국집 운정식당(문화동) (043)847-2820, 26년째 평양냉면을 하는 성서동의 삼정면옥 (043)847-4882, 30년째 백반(국이 없이 비벼 먹는 백반)과 생태찌개를 하는 자매집 (043)847-0490. 문인들이 모이는 시청앞 ‘행복한 우동집’은 12월22일까지 휴무.

예성문화연구회 (043)854-7895, 충주전통문화회 (043)857-7644.

 

충주=글·사진 이병학 기자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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