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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들이길

경북 의성

by 오직~ 2009. 11. 8.

 

수백년 화마 이긴 기와의 바다

명문가 고래등 한옥 가득한 경북 의성…늦가을 꿀사과 맛도 놓치면 후회

  

 

경북 의성은 사과와 마늘로 이름난 고장. ‘마을이란 마을은 모두 사과밭 안에 들어 있다’고 할 정도로 사과밭이 널렸다. 막바지 사과 수확이 한창인 마을 중에 점곡면 사촌마을도 있다. 안동 김씨, 풍산 류씨 들이 세거하는 유서 깊은 선비 마을이다. 조선 중기의 문신 서애 류성룡이 태어난 마을이기도 하다. 사촌(四寸)이 아니라 ‘사촌(沙村)마을’이다.
 

류성룡이 태어난 가로숲

» 사촌마을 주민이 탐스럽게 익은 사과를 따고 있다.

이 마을의 가을이 빛나는 건 600여년 내력을 지닌 아름다운 마을숲과 30채에 이르는 옛 한옥들이 있어서다. 마을에 들면 좌우로 사과나무밭이 즐비한데, 마을 서쪽으로 깊은 그늘을 드리운 울울창창한 숲이 펼쳐져 있다. 천연기념물(405호)로 지정된 ‘사촌리 가로숲’이다. 사촌마을 주산인 매봉산 자락에서 흘러 내려온 대곡천 물길을 따라 거닐고 싶은 숲이 기천 쪽으로 이어진다. 마을을 가로질러 조성된 숲이라 해서 가로숲이다. 고려말 안동 김씨 김자첨이 안동에서 이곳에 이주해오면서 조성한 숲이라고 전해온다.

 

물길을 따라 양쪽으로, 수령 200~300년의 350여그루에 이르는 참나무·느티나무·팽나무·갈매나무들이 너비 40m, 길이 1㎞에 걸쳐 우거져 있다. 풍수지리상 마을 동쪽엔 좌청룡(자하산)이 있으나 서쪽의 우백호가 없어, 허한 것을 보강하기 위해 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마을에서 부르는 이름도 ‘서림’이다. 숲은 서쪽에서 들어오는 나쁜 기운을 막고 마을의 기운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하는 구실을 한다.

 

숲 안으로 들어가 서면 햇살을 품은 키다리 고목들이 저마다 바람을 불러들여 가을빛으로 물든 나뭇잎들을 우수수 떨궈준다. 찻길 옆 숲 한쪽엔 서림마을 내력을 적어 세운 각종 기념비들이 또다른 숲을 이루고 있다. 숲 안엔 썩어가는 커다란 나무 그루터기들이 흩어져 있다. 마을 문화관광해설사 류근하(70)씨가 말했다. “2차대전 무렵에 일제가 군함 맨든다꼬 음청나게 마이 비 갔어요.”

 

이 숲에는 서애 류성룡의 탄생과 관련한 이야기가 전해온다. 사촌마을은 풍수지리적으로 3명의 정승이 태어날 형세라고 한다. 신라 때 이미 정승 한 명이 나왔고, 풍수상 두 번째 정승이 나올 것으로 점쳐지는 해에 류성룡이 이 마을에서 태어났다. 출가한 모친 안동 김씨가 친정 사촌마을에 와 머물다가 산기를 보였다고 한다. 안동 김씨 가문에선 정승을 외손(류성룡)에게 빼앗길 것을 우려해 부인을 시집으로 내쫓았는데, 쫓겨가다 가로숲에서 류성룡을 출산했다고 한다. 서애는 선조 때 영의정에 올라 마을의 두 번째 정승을 차지했다. 주민들은 앞으로 또 한 명의 정승이 날 것으로 믿고 있다.


마을 골목에선 콩 타작 도리깨질이 한창이고, 사과밭에선 사과 따기 작업이 바쁘게 벌어지고 있다. 마을 안내 간판을 보고 골목으로 들자 기와를 얹은 낮고 곧은 흙담이 이어지고, 담 안쪽엔 고래등 같은 한옥들이 가득 차 있다. 90가구 240여명의 주민이 사는 사촌마을엔 만취당, 안동 김씨 종택, 류신하 가옥, 류근하 가옥, 후송재 등 한옥이 30여채에 이른다. 한옥들은 저마다 흙벽담에 둘러싸여 이어지며 길고 긴 토담길을 만들어 보여준다.

 

» 의성 만취당 안에 걸린 현판. 한석봉 글씨다.

도 유형문화재인 만취당은 매우 아름다운 대형 별당이다. 퇴계의 제자 김사원이 선조 때 3년에 걸쳐 지은 목조건물인데, 임진왜란 전에 건축돼 남아 있는 흔치 않은 건물이다. 널따란 대청마루와 온돌방을 갖춘 대형 건물로, 마루에도 문을 해 단 모습이 특이하다. 김사원의 호를 딴 만취당의 현판 글씨는 명필 한석봉이 썼다. 마을에선 해마다 추분이면, 김사원의 위패를 모신 후산정사(서원)에 유림들이 모여 향사를 지낸다.

 

조선 말기엔 온 마을에 기와집이 들어차, ‘와해’(기와의 바다)라 일렀다고 한다. 해설사 류씨는 “민비 시해 이듬해인 병신년(1896년) 의병 때 일제가 이 마을의 거의 모든 기와집들을 불태워버렸다”고 말했다.

 

당시 이 사촌마을에선 의병장 김상종 등이 의병을 일으켜 금성면 산운동, 옥산면 황산 등에서 혈전을 벌였다. 황산에서 패한 뒤 일제는 의병의 근거지인 사촌마을에 불을 질러 즐비한 기와집들을 모두 태워버렸다. 한국전쟁 때도 화마가 스쳐갔다. 인민군이 후퇴하면서 이 지역에서 미국 군인이 몇 명 죽자, 미군은 인민군을 찾는다며 화염방사기를 차에 싣고 다니며 쏘아 또 한 번 많은 기와·초가들이 불타 사라졌다.

 

만취당 뒷골목 한쪽엔 500년 됐다는 커다란 향나무(일명 만년송·도 기념물) 한 그루가 온갖 화마를 이겨내고 서 있다. 조선 중기의 시인 송은 김광수가 심었다고 한다.

마을 앞 기천 점곡2교를 건너면 왼쪽 언덕에 그림처럼 앉은 정자 영귀정(경북 문화재자료)이 있어 둘러볼 만하다. 마을에서 볼 때 정면 문필봉의 서쪽 끝자락이다. 1500년께 송은 김광수가 건립한 정자다. 마을 앞을 흐르는 물줄기 기천의 물은 말랐지만, 물가 언덕 정자의 아름다움은 여전하다. 20여년 전 상류 쪽에 저수지를 만들면서 하천 물이 바닥을 드러냈다고 한다.

 

사촌리는 점곡면 소재지인 서변리와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접해 있다. 오래전엔 사촌리가 서변1·2리와 사촌1·2·3리를 합친 큰 마을이었으나, 행정구역이 개편되면서 분리돼 지금의 사촌마을이 됐다. 서변리에서 914번 지방도를 따라 윤암삼거리 지나 차로 2~3분 거리의 윤암리엔 남씨 가문 고택이 세 채 있다. 서계당과 이계당 그리고 소계당인데, 서계당과 소계당은 지금도 주민이 거주하는 대형 한옥이고, 이계당은 별당형 정자다.

 

» 의성 만취당 내부. 임진왜란 전에 건립된 드문 목조건물이다.

머물고 싶은 물가 언덕 정자

1800년께 지은 한옥 소계당 앞 물가엔 엄청나게 큰 왕버들 한 그루가 굽이치며 내뻗은 나뭇가지를 겨우 추스르고 서 있다. 소계당 안주인 ‘함안 조씨’ 할머니(79)는 “이 나무하고 이 집 나이가 같다”고 했다. 할머니는 “내가 열일곱 살에 시집올 때도 저렇게 컸다”며 “그네 매서 타고 놀던 큰 나뭇가지 하나가 지난해 부러져버렸다”고 아쉬워했다.

사촌마을 한가운데에 마을의 유래와 볼거리, 특징, 전해오는 유물들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사촌마을자료관이 있다. 해설사가 상주한다. 사촌마을과 주변에선 11월 초까지 사과 수확 마무리작업이 이어진다. 수확 현장에서 따 먹는 사과는 값싸고도 덤이 많은데 맛은 더 꿀맛이다.

 

» 의성 사촌마을 거리. 점곡면 소재지인 서변리와 붙어 있다.

의성 여행쪽지

마늘 먹인 한우 맛보세요

◎ 수도권에서 영동고속도로~원주 만종분기점~중앙고속도로 타고 간다. 남안동나들목에서 나가 5번 국도 타고 의성읍 쪽으로 가다 단촌에서 좌회전해 병방리 거쳐 79번 지방도 만나 점곡면 소재지 앞 사촌마을로 간다. 주변에 둘러볼 만한 곳으로 단촌면 구계리의 신라 때 고찰 고운사, 단촌면 관덕리의 신라 때 탑인 관덕동 삼층석탑(보물 188호)과 석조보살좌상, 금봉산 자연휴양림 등이 있다. 봉양면 소재지의 탑산온천(054-833-5001)은 게르마늄 온천수를 쓴다는 온천 겸 모텔(숙박객 온천 1회 무료)이다.

◎ 봉양엔 의성마늘을 먹여 키운 한우식당들이 즐비하다. 정육점에서 쇠고기를 사서 번호가 붙은 식당으로 가져가면 기본 반찬비를 내고 고기를 구워 먹을 수 있다. 의성읍내엔 한우숯불구이집 남선옥(054-834-2455)이 있다. 이 집이 이름난 이유는 장날(2·7일) 아침에만 가마솥에 장작불로 끓여 내는 소머리곰탕(4000원) 때문이다. 사촌마을자료관 (054)832-8772, 의성군청 관광진흥담당 (054)830-6355.

의성=글·사진 이병학 기자 한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