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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들이길

애련한 식민지의 낭만이여~ _ 인천

by 오직~ 2009. 6. 4.

 

http://www.hani.co.kr/arti/SERIES/212/347543.html

 

인천 자유공원과 배다리골목
개항기 자취 서린 인천 차이나타운에서 쫄면 고향 신포동, 배다리 헌책방 골목까지 4.2km

 

» 차이나타운, 화려한 홍등만큼 진한 중국 음식들은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을 유혹하는 요소다.

 

조계지는 외국인 거주지를 뜻한다. 제국주의 시대, 조계지에 사는 외국인들은 스스로 경찰권과 행정권을 행사했다. 아직까지 온존한 조계지의 도로와 건축은 식민지적 낭만을 자극한다. 상하이의 프랑스 조계지, 칭다오의 독일 조계지가 여행자들로 붐비는 이유다. 19세기 후반 인천시 자유공원 일대엔 청나라와 일본 사람들이 거주촌을 형성하며 살았다. 바로 인천 청·일 조계지다. 여기서 워킹투어를 시작했다.

 

» 인천 자유공원과 배다리골목. 지도 그래픽 디자인 멋짓 (※클릭하시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웬만하면 ‘한국 최초’ 타이틀 붙는 건물들

늦은 오전 인천역에 내려 여행정보센터①에서 지도를 챙겼다. 전세계 어디서나 차이나타운의 들머리를 상징하는 ‘패루’②가 인천역 앞에 서 있다. 제1패루를 통과해 차이나타운으로 올라갔다. 이곳은 자장면의 고향이다. 중국에도 없는 ‘한국식 퓨전 요리’가 어떻게 탄생했는지 문화사학자와 호사가들의 논쟁이 되어 왔지만, 20세기 초반 한국 최초의 자장면이 이곳에서 시식됐으리라는 점에는 모두가 동의한다.

 

» 자유공원 광장에서 올려다보이는 맥아더 장군 동상. 한미수교 100주년 기념탑과 함께 응봉산 정상에 자리잡았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인천 최고의 청요릿집인 ‘공화춘’③은 폐허로 남았다. ‘건물 붕괴 위험이 있으므로 주정차를 하지 말라’는 펼침막이 사람을 쫓아낸다. 사람들은 여기서 사진을 찍고 ‘옛 공화춘’의 이름을 딴 새 음식점 공화춘④에 몰려들어가 자장면을 먹는다. 도교와 불교가 혼합된 중국식 절 의선당⑤도 들렀다.

<삼국지> 주요 장면을 벽화로 그린 삼국지거리의 들머리에는 갤러리 쉬필라움⑥(cafe.naver.com/spielraum)이 있다. 단칸방 크기의 소담한 갤러리에서는 인천 작가 박선영의 전시회가 열린다. 쉬필라움 아래로는 청·일 조계지 계단⑦이다. 계단의 서쪽은 청나라 조계지, 동쪽은 일본 조계지였다. 계단을 중심으로 건축 양식이 다르다. 왼쪽은 밋밋한 왜식 건물이고 오른쪽은 처마와 테라스를 지닌 청식 건물이다.

 

계단을 횡단해 일본 땅에 들어갔다. 일본제1은행⑧, 제18은행⑨, 제58은행⑩은 르네상스 양식의 석조 건축물이다. 제18은행은 ‘인천개항장 근대건축 전시관’으로 활용된다. 오늘 여행에서 볼 건축물과 전시물에 대한 설명이 빼곡하다.

 

해발 69미터 응봉산에 자리잡은 자유공원을 향해 올랐다. 중구청으로 쓰이는 옛 인천부청사를 지나 옛 제물포구락부⑪에 닿았다. 1901년 완공된 이 건물은 청·일 조계지와 공동 조계지(청·일 이외의 나라 사람들이 살던 곳)에 사는 사람들의 사교장이었다. 해방 뒤에는 주한미군의 클럽으로 이용됐다. 계단을 마저 오르면 미국의 공간이다. 오른쪽에는 맥아더 동상⑫이 서 있고 왼쪽에는 한미수교 100주년 기념탑⑬이 서 있다. 정상에서는 100년 만에 거대한 산업항구로 변신한 인천 앞바다가 내려다보인다.



» 차이나타운에 있는 중국식 절 의선당.
자유공원은 한국 최초의 서구식 근대 공원이다. 서울 탑골공원보다 9년 빠른 1888년 조성됐다. 자유공원의 원래 이름은 각국공원이었다. 조계지에 청, 일본, 미국, 러시아인 등이 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에 이르러 공원의 이름은 서공원으로 바뀌었고, 해방 뒤 만국공원으로 이름 붙여져 원래 의미가 회복됐다가, 1957년 맥아더 동상 설치를 기념하며 다시 자유공원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맥아더 동상은 조각가 김경승의 작품이다. 맥아더장군 동상 건립위원회는 그해 7월15일 표지석에 이렇게 썼다. “1950년 6월25일 공산도배가 북으로부터 민국을 침입하였을 때 즉시 미국 정부는 한국 구원을 결정하고 맥아더 장군에게 공산 침략 항전에 참가한 모든 군대를 지휘하도록 명령하였다.”

 

자유공원 일대의 공간 배치 과정은 한국과 외세가 맺는 관계성을 역사적으로 보여 준다. 2005년에는 맥아더 동상 철거를 둘러싸고 대립이 일어났다. 통일운동 단체들은 맥아더 동상 철거 시위를 벌였고 보수단체는 가스총을 들고 동상 사수 경비대를 조직했다. 원래 인천시와 인천 시민단체는 자유공원을 만국공원으로 복원하면서 동상을 다른 곳으로 이전하려 했다. 양쪽 진영의 대립이 격화하자 이런 계획은 빛을 잃고 말았다. 당시의 소란은 장소와 경관 해석을 둘러싼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 차이나타운에 서 있는 공자상.
맥아더 장군 밑에는 이런 역사적 대립의 심각성에 어울리지 않게 ‘무릉도원 정자’와 ‘자유공원 새우리’가 있다. 닭과 호로조, 청둥오리, 거위 사이에서 하얀 토끼가 껑충껑충 뛰어다니는 새우리는 정말로 ‘근대적인 새장’이다. 자유공원2길로 내려가면 홍예문⑭이다. 일제강점기 일본 조계지에 뚫은 터널이다. 일본 사람들은 아나몽(穴門)이라고 일렀고, 인천 사람들은 홍예문(무지개문)이라고 일렀다. 내동 성공회성당⑮을 둘러보고 내려가면 신포시장이다. 바로 쫄면의 고향이자 신포우리만두(16)의 본점이 있는 곳이다. 시애틀 파이크플레이스의 스타벅스 본점 못지않을 거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모듬만두와 쫄면을 먹었다. 각각 3500·3800원. 오전에 출발했다면 늦은 점심을 하기 좋은 장소다. 신포시장은 닭강정도 유명하다. 신포닭강정(17)과 신포맛집닭강정(18)이 자웅을 겨룬다. 주말에는 닭강정 먹는 줄이 대로변까지 이어진다.

 

쫄면 인기 이어받은 신포시장 닭강정

신포시장에서 지하도를 건너면 답동성당(19)이다. 1897년 세운 아름다운 성당이지만, 현재는 보수공사를 하고 있다. 개항로를 따라 7~8분 걷다가 경인선 다리를 지나면 배다리다. 개항 직후, 외국인들은 인천항부터 응봉산까지 좋은 터전을 잡아 살았고 한국인들은 내륙인 배다리로 밀려났다. 그 뒤 배다리는 인천 근대 교육과 종교, 교통의 중심지로 기능했다. 배다리에 이르러서는 다국적성은 사라지고 한국적 근대의 풍경이 우세해진다. 대표적인 게 배다리 헌책방 골목이다. 양조장을 개조한 미술공간 스페이스 빔(20)에서도 전시회 말고도 옛 풍경을 마주칠 수 있어 좋다. 사진책 도서관 함께 살기(21)와 시가 있는 작은 책길(22), 근대건축물인 창영초등학교(23), 여선교사기숙사(24)도 볼거리다. 봄날 오후, 창영초등학교에 앉아 꼬마 선수들이 벌이는 리틀야구를 구경했다. 가는 길엔 아벨서점(25)에 들러 헌책 서너 권도 샀다. 동인천역에 도착하니 해가 저문다. 여기까지 4.2㎞를 걸었다.

 

» 거리를 걷다 보면 낡고 빛바랜 간판들을 흔히 만날 수 있다. 옛것의 흔적은 묘한 상념으로 인도한다.

워킹 쪽지

◎ 서울 용산역~동인천역 구간에 한 시간에 3~9회가량 경인선 급행 전철이 운행된다. 일단 동인천역에 간 뒤, 일반 전철로 갈아타고 인천역까지 가는 게 빠르다. 용산역 출발 기준 1400원(카드). 환승 시간을 포함해 한 시간 정도 잡으면 된다.

◎ 인천역 여행정보센터에서 미리 지도를 구해 출발한다. ‘차이나타운 안내도’와 ‘근대건축으로 보는 역사’를 달라고 할 것. 이 밖에도 인천 근대사를 설명한 좋은 팸플릿들이 많다. 인천개항장 근대건축전시관, 제물포구락부 등에서도 관련 자료를 구할 수 있다. 차이나타운에는 자장면 거리, 밴댕이회 거리 등 음식점이 모여 있다. 신포시장에도 순대·만두 등을 파는 분식점이 많다.

20090401  

인천=글·사진 남종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