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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들이길

촉석루 올라 시 한 수 읊어볼까

by 오직~ 2009. 6. 5.

 

http://www.hani.co.kr/arti/SERIES/212/352482.html

 

진주 남강과 진주성
경남 진주성에서 서부시장·진주여고 거쳐 남강 대나무숲까지 7㎞

 

» 진주 남강 남쪽 시민공원에서 바라본 진주성 촉석루. 논개제 때 촉석루 밑 의암에서 논개 순절 재현행사가 진행된다.

진주는 충절의 고장으로 불린다. 충절의 주무대는 남강변 진주성이다. 임진왜란 때 참혹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다. 전투의 한복판에 김시민·김천일·최경회·고종후 등이 있고, 의기 논개가 있었다. 성안에 촉석루가 있고, 물가엔 논개가 적장을 껴안고 강물로 뛰어든 바위(의암)가 있다. 진주 역사문화의 핵심 진주성의 촉석문 앞에서 도심 걷기를 시작한다.  

 

 

 

진주에도 인사동 골동품 거리가

성안으로 들기 전 먼저 볼 게 있다. 바로 옆 장어골목 앞에 세워진 형평운동기념탑①이다. 1923년 이 지역 백정 등 하층민들이 교육 차별에 반발해 ‘형평사’를 조직하고 평등운동을 전개했던 것을 기리는 탑이다. 이후 형평운동은 각 단체와 연계해 전국으로 번지며 10여년간 이어졌다.

 

탑 뒤 진주문화원 건물로 들어간다. 1층엔 실크 전시판매장이, 2층엔 향토민속관②이 자리잡고 있다. 진주는 비단의 고장이다. 상평공단 110여개의 실크 생산공장에서 국내 실크의 70%를 공급한다. 민속관의 주인공은 장석(전통 목가구·한옥 등에 쓰인 이음쇠나 장식물)들이다. 다양한 무늬가 새겨진 경첩·들쇠(손잡이)·자물통·열쇠를 비롯해 온갖 동식물들을 본뜬 꾸밈장석들을 살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모두 옛 가구나 건물에 직접 쓰였던 것들이다. 무료(월·목요일 휴관).

 

 

» 진주성 촉석문 앞 진주문화원 2층엔 장석들을 모아 전시한 향토민속관이 있다.

촉석문③을 통해 진주성(1천원)으로 들어선다. 백제 때 처음 쌓은 이래 고려 때 대대적인 수축을 거쳐 왜구의 침입에 대비한 성이다. 현재의 성곽은 내성(둘레 1.7㎞)이다. 본디 둘레 4㎞에 이르는 외성이 있었다고 하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문화유산해설사 장일영(68)씨는 “일제 때까지 외성의 흔적이 있었다”며 “특히 성밖에 대사지라 불리는 자연해자가 있었으나, 일제가 다 메워 버렸다”고 말했다.

일제는 성곽까지 레일을 깔고 실어온 돌을 연못에 쏟아부어 메우고 그 자리에 관공서 건물을 지었다.


촉석루④는 평양 부벽루, 밀양 영남루와 함께 국내 ‘3대 명루’로 꼽히는 대형 누각이다. 고려말에 지어져 임진왜란 때 지휘소로 사용됐다. 굽이쳐 흐르는 남강 물줄기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이 누각을 찾아와 숱한 묵객들이 읊고 또 읊었다. “퇴계도 읊고 다산도 읊고 좌우간 이 땅 역대 글쟁이 중 촉석루에 와 시 한 수 읊지 않은 이가 없을 정도”라고 장씨는 말했다.

 

시인 묵객들이 이토록 진주 땅에 몰려든 건 경치도 경치거니와 그 유명한 진주 기생 때문이기도 했겠다. 북에 평양 기생이 있고 남에 진주 기생이 있었다. 미색을 갖추고 학문·예술에도 조예 깊은 이들이었다. 이들 중에 논개도 있고 산홍도 있다. 산홍은 구한말 기생이다. 산홍은 을사오적 중 하나인 이지용이 천금을 약속하며 자신을 첩으로 삼으려 하자, ‘내가 아무리 미천한 몸이어도 사람 구실은 하는데, 어찌 역적의 첩이 될 수 있겠는가’ 하며 면전에서 거절했다. 매국노 이지용은 격노해 산홍에게 마구 주먹을 휘둘렀다고 한다. 이 이야기가 황현의 <매천야록>에 전한다. 산홍이 잠자리를 거절한 뒤 자결했다는 설도 있다.

 

 

 의기 산홍은 앞서 선배 의기인 논개의 사당 의기사에 참배한 뒤 시 한편을 남겼다. 이 시를 새긴 현판이 논개 사당 왼쪽 처마 밑에 걸려 있다. 오른쪽엔 매천의 시를 걸었다.

 

 

» 진주 남강과 진주성. 지도 그래픽 디자인 멋짓

3800명의 군사로 2만 왜적을 물리친(진주대첩) 김시민 장군 전공비를 보고, 옛 도청사 정문인 영남포정사를 지나 국립 진주박물관⑤으로 걷는다. 걸으며 장씨가 말했다. “우리가 걷는 이 흙길은 임란 때 숨진 7만여 백성·군사들의 유해인 셈이지요.” 진주성은 진주대첩 이듬해 재침입한 3만7천여 왜군에게 함락돼 거의 전 시민이 학살됐다. 박물관에선 임진왜란의 실상과 역사를 보여준다. 조선시대 천자총통·비격진천뢰, 이순신의 친필 등과 다양한 유물들이 전시돼 있다. 무료(월요일 휴관).

 

진주성 2차 싸움에서 순절한 분들의 신위를 모신 창렬사⑥와 승병들의 넋을 기리는 절 호국사⑦를 보고 서장대⑧에 오른다. 남강 상류쪽 전망이 시원하다. 서문을 나서면 인사동 골동품거리⑨다. 20여년 전 흩어져 있던 골동품 가게들이 하나둘씩 모여 생긴 거리다. 상점이 대형화하고 거리가 정비되며 예스런 맛은 사라졌지만 지금도 20여집이 남아 길가에 돌절구·맷돌·불상 등 갖가지 석물들을 늘어놓고 있다.

 

진주냉면이 기다리는 서부시장⑩까지는 다소 지루한 길. 2일·7일장인 서부시장 안의 진주냉면 집은 60여년째 진주식 냉면을 파는 식당이다. 집 이름이 부산냉면 집이었으나 3년 전 진주냉면으로 바꿨다. 면발보다는 해물육수와 듬뿍 올려주는 쇠고기전 고명이 매력이다.

 

» 진주의 진산 비봉산 자락 의곡사 입구에 선 한글과 한자를 함께 새긴 비석.
진주여고 네거리를 지나 진주여고로 걷는다. 진주여고는 80여년 전 성금을 거둬 세운 민족자본 학교다. 고 박경리 선생이 이 학교에서 배웠다. 학교 안 효주기념관⑪에 이 학교의 옛 모습과 기록들을 살펴볼 수 있다. 푸른재능어린이집 삼거리에서 왼쪽 골목으로 들어 빌라 주차장 앞 비좁은 골목을 따라 잠시 오르면 일제 때 지은 누각 비봉루⑫에 이른다. 포은 정몽주가 머물렀던 곳에 그 후손이 지은 것이라는데, 문이 굳게 닫혀 있다. 옆엔 한식·왜식 혼합식 건물이 있다. 다시 내려와 법혜사 골목으로 오르면 비봉루를 위에서 내려다볼 수 있다.

 

비봉산은 진주의 진산이다. 산세가 봉황이 나는 모습이라 한다. 산밑으로 이어진 차도를 따라 내려가 왼쪽으로 5분 걸으면 의곡사⑬에 닿는다. 임란 때 민·관군은 이곳에서도 왜군에 맞서 치열한 싸움을 벌였다. 절 이름도 여기에서 나왔다. ‘비봉산 의곡사’란 편액은 민족대표 33인 중 하나인 오세창이 쓴 것이다. 절 앞 오른쪽 산밑엔 한자와 한글(부묘생쳔목연경)이 함께 새겨진 작은 비석⑭이 정겹다. 내려와 삼거리 정자나무 밑에 앉으니 나무에 걸린 시계가 삐딱하다. 시계를 보던 어르신이 말했다. “45년 됐으니 아직 어린 느티나무지.”

 

 

옛 진주객사는 지금의 롯데주상복합아파트 자리에 있었다. 한 옆에 마련된 옛 건물 주춧돌 자리가 객사 터⑮임을 알려준다. 길 건너 골목으로 내려가면 중앙시장(16)이 시작된다. “중 상투와 처녀 불× 빼곤 다 있다”는 서부경남 최대 상설시장이며 “자식 시집·장가 보낼라 카모 여기 안 오곤 몬 보낸다”는 곳이다.

 

 

 

남강변에서 따뜻한 커피 한잔

중앙시장 옆 도심 뒷골목들은 ‘차 없는 거리’(17)다. 진주 패션 1번지다. 차 없는 거리에선 청소년들의 노래공연이 벌어지기도 한다. 경찰서 쪽으로 가면 길이 다소 비탈지며 우묵한 지역이 나타난다. 옛 외성 밖에 있던 연못 대사지를 메운 지역이다. 청소년수련관 골목으로 간다. 수련관은 옛 진주시청 자리에 있다. 옛 관공서 자리답게 주변 골목엔 밥집·찻집들이 즐비하다. 전통찻집 죽향에선 다양한 세계 명차들과 전통 떡을 맛볼 수 있다. 큰길 건너 현장아트홀(18)은 진주시내 유일의 상설공연 무대다. 5월 주말엔 환경아동극 ‘쿵쾅쿵쾅 고물놀이터’를 올린다. 1만원.

 

촉석루를 바라보며 진주교(19)를 건너 강변 대나무숲 산책로(20)를 걷는다. 바람도 햇살도 초록빛이다. 옛날 남강변엔 대나무가 지천이었다고 한다. 봉황이 머무는 곳(비봉산)이니 그 먹이가 되는 대나무가 많은 건 당연한 이치다. 분수대 앞 길 건너의 카페 커피포트(21)에서 걷기를 마무리한다. 약 7㎞. 직접 볶은 커피를 뽑아주고 직접 만든 빵도 준다. 에스프레소 3천원, 인도식 홍차 짜이 4천원. 무선 인터넷 가능.

 

워킹 쪽지

대전~통영 고속도로를 타고 서진주나들목에서 나가 진주 시내로 간다. 진주성 팻말이 곳곳에 붙어 있다. 인사광장(로터리) 앞 공북문이나 촉석문 앞에 주차장이 있다. 30분 500원. 관광안내소는 공북문 앞에 있다.

진주냉면(이하 지역번호 055) 741-0525, 장어전문 풍국 743-1509, 초밥·매운탕·오뎅탕을 잘하는 중앙집 741-5496, 30년 된 진미추어탕 741-4633, 50년 넘은 중국집 북경장 741-2757, 약 50년 된 해장국·비빔밥집 제일식당 741-5591, 80년 된 비빔밥집 천황식당 741-2646. 진주성 관광안내소 749-2485. 5월1~3일 진주성에선 진주의 전통문화와 역사를 살필 수 있는 제8회 논개제가 펼쳐진다.

 

한겨레

 

 

진주=글·사진 이병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