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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들이길

부산 산토리니의 비밀

by 오직~ 2009. 6. 4.

 

 

 

부산 태극도마을과 남포동
사진가들 탐내는 사하구 감천2동에서 자갈치 시장까지 반나절 워킹 투어

 

 

 

 

» 부산 태극도마을과 남포동. 지도 그래픽 디자인 멋짓 (※클릭하시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부산 사하구 감천2동 태극도마을은 흔히 ‘그리스의 산토리니’에 비유된다. 레고블록 같은 집들은 모자이크가 되어 다채로운 빛깔을 내고, 절벽에 매달린 집들 사이로 좁은 골목이 이어진다. 최근 들어 키치적 미감에 이끌린 아마추어 사진가들이 많이 찾는데, 이들이 선호하는 포토포인트①는 감천고개 정상 감정초등학교 주변이다.

태극도마을은 옥녀봉과 천마산이 감싼다. 아침에는 옥녀봉 아랫마을에 볕이 들고 저녁에는 천마산 아랫마을로 해가 떨어진다. 옥녀봉 아랫마을의 불규칙한 격자가 만들어내는 곡선이 사진가들이 탐내는 장면이다. 사진을 찍으려면 아침에 올라가는 게 좋다.

 

» 감천2동 감천고개 정상에서 내려다본 태극도마을. 오전에 볕이 드는 옥녀봉 아랫마을은 사진가들이 탐내는 곳이다.

달동네 전망은 모두가 ‘오션 뷰’

주민들이 ‘할배 산소’②라고 부르는 태극도 교주의 무덤에서 솔밭3길 계단으로 진입했다. 이제부터는 계단 골목길이다. 쌈지공원③과 우물이 빽빽한 숲 속의 작은 연못처럼 나타난다. 수건, 추리닝, 누비이불을 매단 빨랫줄이 공원을 가로지른다. 마을에서 나고 자란 조서현(50)씨가 공원을 관리한다.


“불과 3~4년 전까지 우물에서 물을 끌어다 마셨어요.”

“그런데 왜 마을 사람들은 자기 집에 울긋불긋하게 페인트칠을 했죠?”

“나도 몰라요. 그냥 자기 집 예쁘게 꾸민 것이지 않겠어요?”

그리스 산토리니 사람들은 순수하게 관광객 유치 목적으로 하얀 페인트를 칠했다. 하지만 주민들과 사하구청에 물어봐도 ‘부산판 산토리니의 비밀’은 끝내 알 수 없었다.

 

사하구청에서 펴낸 <사하구지>를 찾아보면, 태극도마을은 “태극을 받들며 도를 닦는 신흥종교인 태극도를 믿는 사람들이 4천여명 모여 집단촌을 이룬 곳”이다. 1958년 충북 괴산 등지에서 온 태극교도들이 자리를 잡았고, 1980년대에는 2만명에 이르렀다가, 지금은 1만명으로 줄었다. 종교인들은 대부분 마을을 떠났다.

 

솔밭3길에서 내려오자마자 좌회전하면 폭이 1미터가 채 되지 않는 골목길이다. 이 길은 어린이집과 감천2동사무소④로 연결된다. 지붕과 처마가 위태롭게 맞닿아 있어 골목은 아케이드 같다. 태극1길 입구에는 쉬어 갈 만한 놀이터가 있다. 신발끈을 묶고 태극4길을 통해 태극5길 골목을 헤맸다. 골목 교차로에 동서대 시각디자인학과 학생들이 예쁜 벽화⑤를 칠해 두었다. 태극6길은 숨이 차는 된비알이다. 푸른 파를 심어놓은 화분, 빨랫줄에 걸린 노란 손수건, 지붕에 말려놓은 운동화 등 골목길 풍경이 스친다.

 

할머니들은 양지바른 골목에 의자를 내놓고 감천 앞바다를 바라본다. 그 순간 달동네 비탈길은 할머니의 베란다가 되고 사글셋방은 고급 호텔의 ‘오션 뷰 룸’(ocean view room)이 된다. 옥녀봉길을 따라 마을을 에둘렀다. 전망 좋은 정자⑥에는 주민들이 시계를 걸어뒀다. 아미동 성당⑦의 자판기에서 커피를 마시고 골목 탐험을 끝냈다. 밀크커피 300원. 한 바퀴 도는 데 한 시간이면 족하다.

 

옥천로 갈림길에서 아미골 길을 따라 내려간다. 구불구불한 에스(S)자 아스팔트길로 마을버스가 성난 소리를 내며 기어오른다. 비탈 너머로는 용두산 타워와 부산 앞바다가 펼쳐진다. 임시수도기념관⑧(부산시 기념물 제53호)까지는 20분 걸린다. 임시수도기념관은 1926년 경남도지사 관사로 지어졌다가 한국전쟁 때 이승만 전 대통령의 관저로 사용된 건물이다. 이 전 대통령의 서재와 화장실은 물론 ‘유엔탕’ 한 그릇으로 버텼던 전쟁 시절의 민중의 생활상도 볼 수 있다. 아담한 뒤뜰이 쉬기에 좋다.

 

동아대 부민캠퍼스에선 부산 임시수도 시절 정부청사⑨(등록문화재 41호)가 기다린다. 1925년 지어진 르네상스 양식의 건물은 이달 안에 동아대 박물관으로 재탄생한다. 동아대 박물관은 국보 2점, 보물 11점 등 대학 박물관답지 않은 소장품을 갖췄다. 특히 조선 후기 도화서 화원들이 창덕궁과 창경궁을 그린 16첩 동궐도를 감상하길.

 

» 국내 최대 헌책방 골목인 보수동 헌책방 골목. 새 학기를 제외하고는 매주 1, 3주 일요일은 쉰다.

대청로 삼거리에서 중고 레코드 전문점인 대한레코드⑩에 들렀다. 소장가치 높은 명반에 눈이 뒤집어질 정도다. 값은 3천 원에서 수십만원까지. 대청로를 따라 5분 정도 걸으면 보수동 헌책방 골목⑪이다. 참고서, 문제집을 사고파는 곳이 대부분이지만 고서점, 대우서점 등에서 쏠쏠한 소설이나 인문서, 미술책을 구할 수 있다. 거리 풍경과 빛바랜 책들은 아마추어 사진가들의 오브제로도 활용되는데, 이 국내 최대의 헌책방 골목에 인앤빈⑫이라는 커피집이 생겼다. 아메리카노 2500원.

 

대청로를 따라 직진하면 부산근대역사관⑬(부산시기념물 49호)이다. 일제 강점기에는 동양척식주식회사였고, 해방 뒤에는 미국문화원이었고, 1982년에는 방화사건의 피해자가 됐다. ‘부산미문화원 불, 불순분자가 방화’(1982년 3월19일)와 ‘부산미문화원 역사적 반환’(1999년 4월30일)이 1면 머리기사로 걸린 <부산일보>가 걸렸다. 세월의 변화를 보여주는 전시물이다. 전시물의 주종은 태평양전쟁 말기 발행된 전시채권, 일본에서 발행된 <최신 조선이주 안내> 등 한국과 외세의 관계를 보여주는 물품들이다.

 

» 부산 남포동 국제시장. 한국인과 일본인이 어우러지는 쇼핑 골목이다.

국내 최대의 헌책방 골목 탐방까지

이제 국제시장 골목을 헤맬 시간이다. 깡통골목⑭은 수입 구제품들이, 가방골목은 가방이, 신발골목은 신발이 주인이다. 미술의 거리⑮에는 화랑들이 모여 있다. ‘남포동의 몽마르트르’라고 하기엔 과분할지 모르나 충분히 둘러볼 가치가 있다. 아리랑거리(16)는 부산 사람들이 먹자골목이라고 한다. 당면국수, 비빔국수(이하 2천원), 부산오뎅이 든 충무김밥(3천원)이 주메뉴다. 피프(PIFF) 광장(17)을 지날 때는 바닥을 눈여겨보라. 빔 벤더스, 모흐센 마흐말바프, 허우샤오셴, 장이머우, 기타노 다케시, 제러미 아이언스, 유현목… 사람들은 이름을 읽어보고, 손바닥을 맞춰보고, 기념사진을 찍는다.

워킹투어는 자갈치시장(18)에서 끝냈다. 태극도마을 뒷산으로 해가 저물었다. 여기까지 약 5㎞ 걸었다. 반나절이면 충분하다.

워킹 쪽지

◎ 태극도마을 들머리인 감정초등학교까지는 토성동역에서 2번 서구 마을버스를 탄다. 6~12분마다 다닌다.

남포동 먹자골목 등에서 길거리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는 게 재밌을 것 같다. 18번 완당집(19)(051-245-0018)은 완당(중국식 만두) 면, 완당 우동을 판다. 국물 마시듯 후루룩 완당을 먹는다. 4천원. 피곤해진 몸의 원기를 보충하려면 부산근대역사관 뒤편의 ‘좋은쌀로 밥짓고’(20)(051-248-8500)도 좋다. 돌솥 정식 1만2천원, 한정식 1만7천원.

20090304 한겨레

부산=글 남종영 기자 / ·사진 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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