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과 펄 사이 중도방죽 길 역사만큼 단단해
갈대 ‘지저귀는 소리’, 자줏빛 점묘화가 있는 풍경
소설 <태백산맥>, <무진기행> 배경이 된 고장
전남 보성군 벌교읍과 순천만 습지 여행
지난달 14일 전남 보성군 벌교읍 ‘중도방죽’ 주변 산책길. 방죽 들머리 펄을 가로지르는 나무다리 위에서 바라본 풍경이다. 김선식 기자
소설 <태백산맥>과 <무진기행>의 배경, 전남 보성군 벌교읍과 순천만에 갔다. 낭만적인 기대는 배반당하기 일쑤다. 순천시와 보성군, 고흥군을 잇는 삼거리 구실을 하는 교통 요충지, 자연스럽게 돈과 사람이 흘러들었던 벌교는 예상보다 더 한적했다. 5일장이 선 날이었지만 시장은 북적이지 않았다. 읍내엔 산책하거나 볼일 보러 나온 주민들만 가끔 눈에 띌 뿐이었다. <무진기행> 속 도시 ‘무진’, 그 배경인 순천만은 잘 가꿔놓은 공원 같았다. 순천만 무진교에 서서 생각했다. 소설 속 ‘무진’의 이미지는 오히려 시골 마을 벌교를 닮았다고. ‘개구리 울음소리가 수많은 별처럼 반짝일 것 같은 논이 있고 물이 가득한 천이 흐르고 잔디가 곱게 깔린 방죽 길이 시오리 밖 바닷가까지 뻗어 있는 곳.’ 지난달 14일 벌교시장에서 꼬막 비빔밥으로 허기를 달래고 ‘중도방죽’으로 향했다.
벌교천과 펄이 만나는 곳에 중도방죽이 있다. 벌교역을 지나는 경전선 철로 남쪽으로 700m 정도 거리다. 여행자보단 마을 사람들이 즐겨 찾는다. 어느 인터넷 블로그에서 ‘순천만 갈대밭엔 사람이 붐벼 우린 중도방죽으로 간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말 그대로 인적이 드문 곳이다. 폭 2m가량 반듯한 흙길은 단단하다. 왼쪽은 논이고 오른쪽은 갈대가 숲을 이룬 펄이다. 질펀한 논과 펄 사이에 우뚝 솟아 있어 더 단단하게 느껴진 걸까.
중도방죽 길에서 만난 벌교 주민 김선순(61)씨. 김선식 기자
평범해 보이는 길에도 사연이 있다. 중도방죽은 일제강점기 실존인물 ‘중도’라는 일본인이 지시해 쌓은 둑으로 전해진다. 조선인들을 동원해 바닷물을 막고 농토를 일구려 한 것이다. <태백산맥>(제4권)도 그 역사를 서술한다. 소학교 교사 출신 빨치산 이지숙은 중도방죽을 걸으며 어느 노인의 말을 떠올린다. ‘저 방죽이 바닷물이 밀어대는 심 이겨냄스로 저리 짱짱허니 버티게 헐 기초를 맹그니라고 뻘 속으로 을매나 많은 돌뎅이럴 처박아 도굿대질(절구질) 헌지 알겄소?···그렁께 저 방죽을 지대로 볼라먼 눈에 뵈는 높기만 볼 것이 아니라 눈에 안 뵈는 높기꺼정 합쳐서 봐야 지대로 보는 것이요.’
중도방죽 옆 펄에서 날고 있는 왜가리. 김선식 기자
펄에 푹푹 빠져가며 밤낮으로 쌓아 올렸을 방죽은 단단한 산책로가 됐다. 들머리에서 10분가량 걸으면 갈대가 가득한 펄을 가로지르는 100m 정도 길이 나무다리가 있다. 그 아래 에스(S) 모양 길이 나 있다. 펄 가까이 갈대숲에 안겨 걸을 수 있는 길이다. 바다로 뻗은 방죽을 따라 걸을수록 갈대는 줄고 물은 는다. 자연스레 새들이 모여든다. 지저귀는 새들을 바라보면 늘 아기 새들이다. 어미 왜가리가 검정 깃털을 뽐내며 날아 아기 새에 다가간다. 멀리 남해고속도로 벌교대교에 차들은 무심히 지나친다. 벌교대교 아래 즈음이 방죽길이 끝나는 곳이다. ‘선수’라 부르는 진석마을까지 중도방죽은 총 3.8㎞다.
벌교 철다리. 소설 <태백산맥> 등장인물 염상구가 ‘땅벌’과 결전을 치른 곳. 김선식 기자
벌교에선 <태백산맥> 장면들과 자주 마주친다. 벌교천을 지나는 경전선 철로는 ‘철다리’라 불린 곳이다. 빨치산 부대를 이끈 염상진의 동생이자, 훗날 우익 대동청년당 열성 당원이 된 염상구가 벌교 주먹패 두목 자리를 놓고 일명 ‘땅벌’과 최후의 일전을 치른 장소다. 기차가 순천역에서 벌교역으로 오는 시각, 기차를 피해 먼저 벌교천으로 떨어진 자가 벌교 바닥을 뜨기로 했다. 수영복을 입고 철다리 중앙에서 등대고 선 염상구와 땅벌, 먼저 뛰어내린 건 땅벌이었다. 철다리는 그대로 남아 있다. 기적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철길에선 왠지 으스스한 기분에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된다. 벌교역 앞에서 벌교초등학교 쪽으로 100m가량 걸으면 ‘보성여관’이다. 보성여관은 <태백산맥>에서 ‘남도여관’으로 등장한 곳이다. 함석지붕과 판자벽으로 된 2층 건물은 옛 모습 그대로다. 2004년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길 끝엔 ‘벌교 금융조합’이 있다. 고리대금업을 한 금융조합장 송기묵과 현부자네 집안사람인 남도여관 주인 현준배는 염상진 부대에 죽임을 당했다.
좌익이든 우익이든 무고한 이든 ‘소화다리’에서 처형당했다. ‘중도 민족주의자’ 김범우는 당시 읍내 상황을 문 서방에게 전해 듣는다. ‘소화다리 아래 갯물에고 갯바닥에고 시체가 질펀허니 널렸는디, 아이고메 인자 징혀서 더 못보겄구만이라. 재미가 오진 싸까쓰도 똑겉은 거 두 번씩 보먼 질리는 법인디, 사람 쥑이는 거 날이날마동 보자니께 환장허겄구만요.’ 소화다리 아래 벌교천엔 왜가리와 백로가 무시로 날아든다. 벌교천 따라 북쪽으로 600m 가면 홍교다. 1729년 지은 세 칸짜리 무지개 모양 돌다리는 보물 제304호다. 과거 홍교도 처형장 구실을 했다고 전해진다.
‘소화의 집’은 벌교천 건너 1㎞가량 읍내에서 떨어져 있다. 빨치산 비밀당원 정하섭이 은신처로 삼은 까닭이다. 대나무와 돌로 담을 두른 세 칸짜리 단층집. 부엌, 안방, 신당이 있는 집엔 무당 월녀와 딸 소화가 살았다. 그 바로 옆이 현부자네 집이다. 들머리부터 위압적이다. 네 칸 기와 건물 위에 한 칸짜리 기와집을 얹었다. 중도들판 소작인들을 감시할 목적이었다고 한다. 제석산 자락에 높이 지은 현부자네 집을 떠올리며 소화는 생각한다. ‘현 부자가 왜 굳이 야산 중턱의 높은 지대를 골라 집터를 닦았는지 알 것 같았다. 그 터가 명당이라서 그런 것만은 아니었던 것이다.···그 어느 곳에 서더라도 끝이 아슴하게 펼쳐진 중도들판이 한 눈 안에 들어오도록 되어 있었다.’ ‘태백산맥 문학관’도 ‘소화의 집’ 옆이다. 작가 조정래가 집필 과정에서 쓴 수첩, 달력, 인물 관계도 등을 전시하고 있다. 벽에 인쇄한 <태백산맥> 주요인물 소개가 눈길을 끈다. 단 세 명을 소개하는데, 염상진과 김범우는 없다. 어찌 보면 평범한 사람들, 소작인 아들로 태어나 염상진의 충직한 부하로 활동한 하대치, 그리고 소화, 염상구다.
현부자네 집 안뜰에서 바라본 모습. 김선식 기자
벌교역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순천만습지는 ‘무진교’라는 이름의 다리를 건너면 갈대숲이 펼쳐진다. 지난달 15일 오전 10시, 갈대 사이로 들어서자 멀리서 시끌벅적한 새 울음소리가 들렸다. 갈대숲은 8자 모양 목재 산책길이 나 있다. ‘스윽스윽 솨아솨아’.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 소리가 생경하다. 갈대들이 서로 몸을 비비며 지저귀는 소리 같다. 헐겁게 떨어져 자란 갈대들은 유난히 휘청거리지만 제소리를 내지 못한다. 느긋하게 갈대숲을 걷다가 ‘용산 전망대’까지 오르는 데 한 시간이면 족하다.
지난달 15일 전남 순천만 습지 갈대 산책길. 김선식 기자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습지는 ‘새들의 낙원’이다. ‘생태탐사선’이 지나가자 수백 마리 흑두루미(천연기념물 제228호) 떼가 목을 세워 경계 태세를 취한다. 2006년 국내 연안 습지 최초로 람사르 협약에 등록된 이곳(2800㏊)엔 매해 10월~4월 전 세계 1만 마리가량 남은 흑두루미 중 천 마리 안팎이 날아든다고 한다. 자줏빛 염생식물 칠면초와 황금빛 갈대와 검은 펄과 흑두루미 떼가 신비한 점묘화를 그린다. 습지에 얕게 들어찬 바닷물은 살찐 곡선을 그리며 빈 곳을 채운다.
순천만 습지 ‘용산전망대’에서 본 흑두루미 떼. 김선식 기자
순천만을 배경으로 그린 <무진기행> 속 ‘무진’의 명산물은 안개만이 아니다. ‘햇빛의 신선한 밝음과 살갗에 탄력을 주는 정도의 공기 저온, 그리고 해풍에 섞여 있는 정도의 소금기, 이 세 가지를 합성하여 수면제를 만들 수 있다면···어떠한 약보다도 가장 상쾌한 약이 될 것이고···나는 이 세계에서 가장 돈 잘 버는 제약회사의 전무님이 될 것’이라고 김승옥은 썼다. 여기 두 가지를 보태야 한다. 순천만습지에선 갈대 ‘지저귀는’ 소리와 ‘자줏빛 점묘화’를 빠뜨릴 수 없다.
http://www.hani.co.kr/arti/specialsection/esc_section/91968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