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사랑, 시차가 아닌 공차(空差)

by 오직~ 2016. 10. 10.

사랑, 시차가 아닌 공차(空差)

 

이사를 하고 나면, 인간은 자신의 본성이 식물성임을 알게 된다. 살던 곳에서 가볍게 뽑혀 몇 시간 만에 다른 땅에 이식(移植)된 인간-식물은 훼손과 박탈의 느낌에 어리둥절해한다. 잔뿌리들이 잘린 채 낯선 땅의 생흙에 억지로 몸을 맞추노라면 저녁 어스름이 내린다. 이사의 첫날 밤은 이식의 후유증으로 뒤척이기 십상이다. 집에서 집으로 옮겼을 뿐인데, 한낱 짐이 되어 실려 온 살림살이들은 너절하고 궁색할 뿐이어서 ‘나’의 삶이 온통 길바닥에 전시된 듯한 참담함을 안겨 준다. 어떤 아름답고 귀한 추억의 물품도, 초라한 이삿짐이 되는 순간 ‘노출’과 ‘전락’을 피할 수는 없다.

 

이윤학은 내손동으로 들어오는 이삿짐에서 ‘내성적인 사랑’의 운명을 본다. 내손동은 ‘내성’과 유사한 어감을 지녔거니와, 내성적인 인간들의 거주지 혹은 안으로만 다독여진 내면 공간을 상징한다. “저녁 어스름을 꼬챙이로 꿰매 들고/ 소통 불가능한 말을 흘”리는 “약수터 어귀 미루나무”와 “무당의 무음”에 기대는 “풍 맞은 남자”는, 자신의 내부에 갇혀 출구를 잃은 내성(적인 인간)의 극적인 이미지이다. 내손동은 경기도 의왕시라는 실제 장소와 별개로, 가장 고독하고 후미진 내성의 처소를 뜻한다.

 

이삿짐 중 선물받은 시집에 쓰인 “내성적인 사랑은 하지 마라”는 말은, ‘내손동’의 슬로건이자 금기어의 역할을 한다. 내성(적인 사랑)은 타인에게 노출되는 순간, 미미하고 값없는 것으로 전락하기 쉽다. 길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이삿짐처럼. ‘나’로부터 ‘당신’에게로 옮겨가기 위해 ‘당신’ 앞에 노출되는 마음이, 초라한 이삿짐을 불사하는 귀하디귀한 ‘사랑’임을 아는 자가 얼마나 될까. ‘나’ 또한 “그 시절의 당신”에게 그러하였음을, 17년이 지나서야 깨닫노라고 이윤학은 말한다.

 

그렇다면 사랑은 시차(흔히 말하는 타이밍)의 문제가 아니라, 공차(空差)의 문제겠다. ‘시차’라는 말은 있되 ‘공차’라는 말이 없는 것은 이상한 일인데, 이윤학은 내성적인 사랑을 “휘파람”으로 표현하면서 ‘나’와 ‘당신’의 공차가 사라지는 순간을 꿈꾼다. “언젠가는 당신이 호흡한 공기를 내가 호흡하게 되리라는 것만으로도 희망적이다”. 함께-있음은 시차를 문제 삼지 않는다.

 

김수이 문학평론가‧경희대 교수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76362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