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강 품은 중원에 가야금 소리 불어오네
‘중원’(中原)은 흔히 지리적으로 한 지역의 중심이 되는 곳을 가리킨다. 중국에선 황허강 중·하류 지역을 중원이라 했고, 우리나라에선 충북 충주 일대 남한강 주변을 중원이라 불렀다. 삼국시대 고구려·백제·신라가 영토 다툼을 치열하게 벌인 요충지가 중원 땅이다. 고구려는 이곳에 ‘중원 고구려비’(충주 고구려비)를 세워 영토 확장을 알렸고, 신라는 삼국통일 뒤 중원경을 설치해 통일신라의 중심 지역임을 나타냈다. 통일신라 석탑 중 최대 규모인 탑평리7층석탑(중앙탑)도 이곳에 있다. 중원이란 지명을 이어오던 중원군은 1995년 충주시에 편입됐고, 최근엔 중앙탑이 속해 있는 가금면이 면 이름을 중앙탑면으로 고치면서 ‘중앙’의 상징성을 이어가고 있다.
숱한 역사유적들과 아름다운 강마을이 줄줄이 이어지는 중원 지역은 완행버스를 타고 천천히 둘러볼 만하다. 충주시 공용버스터미널에서 시내버스로 출발해 탄금대공원·중앙탑·중원고구려비 등을 둘러보며 종점인 봉황산휴양림까지 다녀오는 여정이다.
두물머리 탄금대 가야금 소리 들릴듯
충주공용버스터미널 옆 ‘터미널 승강장’에서 버스 시간표를 ‘폰카’로 찍어둔 뒤, 첫 목적지인 탄금대공원으로 가려고 404번(삼화운수) 버스에 올랐다. 가금 방면, 가금·노원 방면의 400번대 버스를 타면 탄금대와 중앙탑으로 간다. 대체로 20분~1시간30분 간격으로 400번대 버스가 오는데, 배차 시간이 뜸하므로 내릴 때 운전기사에게 반드시 뒤차 도착 시각을 알아두는 게 좋다. 버스삯은 현금 1300원, 카드 1200원이다.
터미널을 출발해 세번째 승강장이 ‘탄금대 입구’, 잠시 걸어오르면 탄금대공원이다. 남한강과 달천이 합류하는 합수머리 대문산(107m)에 자리한, 울창한 숲과 탁 트인 전망을 자랑하는 충주 시민의 휴식공간이다. 솔바람·강바람이 가야금 선율처럼 맑고 투명해, 산책하는 어르신도 소풍 나온 유치원생들도 발걸음이 가볍다.
숲 울창하고 전망 빼어난 이곳엔 얽힌 이야기도 많다. 신라 진흥왕 때 악성 우륵이 제자들에게 가야금 등을 가르치던 곳(그래서 탄금대다)이고, 임진왜란 때 신립 장군이 군사 8000을 이끌고 10만 왜적에 맞서 끝까지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한 곳이다. 숲길 따라 약 30여분, 아동문학가 권태응의 ‘감자꽃 노래비’, 탄금대기비, 탄금정, 전망대 바위인 열두대 등을 돌아보며 산책할 만하다. 산책로 일부는 옆쪽의 세계무술공원과도 이어진다.
탄금대 입구 승강장에서 하남행 412번 버스를 타고 탄금교 건너 강변 따라 잠시 가다 창동리에서 내렸다. 고려시대 유적들인 창동리마애여래상과 창동리오층석탑·약사여래입상을 보기 위해서다. 마애여래입상은 곧 무너져내릴 듯 위태로운 강변 절벽에 선각(선으로 새긴 그림)으로 새긴 불상이다. 가파른 계단길을 내려서야 만날 수 있다. 창동리 마을엔 주변 절터에서 옮겨온 아담한 오층석탑과 약사여래입상이 함께 세워져 있다.
이번엔 413번 버스를 타고 중앙탑공원으로 향한다. 높이 14m가 넘는, 통일신라시대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탑평리7층석탑(국보 제6호)의 우뚝 솟은 자태는 멀리서 바라봐도 아름답기 그지없다. 충주 시민들은 예나 지금이나 이 석탑을 중앙탑으로 부른다. 우리나라 한복판의 탑이란 자부심이 깔려 있다. 석탑 주변엔 충주 지역의 유물들을 전시한 충주박물관, 술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을 알아볼 수 있는 ‘술박물관 리쿼리움’ 등 들러볼 곳이 많다. 산책로와 잔디밭은 연인들 차지요, 2013년 세계조정선수권대회가 열렸던 강변 숲그늘은 낚시꾼들 차지다. 공원엔 캠핑장도 있고, “친절 봉사”를 으뜸으로 내세우는 관광안내소도 있고, 막국수 등을 내는 식당도 즐비하다. 관광안내소에 문의하면 버스 배차 시간 등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여기서 다음 볼거리인 ‘충주 고구려비’로 가려면, 관광안내소 부근에서 가금면소재지로 가는 400번대 버스를 타거나, 10분쯤 물가 숲길과 나무데크 탐방로를 걸어 신촌삼거리(주유소 옆)로 나와 404번 버스를 타면 된다. 중앙탑초등학교 앞에서 내려 입석낚시터 물길 한가운데로 이어진 다리를 건너고, 찻길을 건너면 ‘충주 고구려비 전시관’에 이른다. 도보 10분 거리.
차창 가득 밤꽃 향기 할머니들 시큰둥
충주고구려비(국보 제205호)는 몇년 전 찾았을 땐 도로변 초라한 비각 안에 세워져 있었다. 지금은 새로 지은 커다란 전시공간 안에 풍부한 자료들과 함께 전시돼 있다. 초라함은 면했지만, 본디 서 있던 자리를 잃어버리고 철제 전시관 안에 든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다. 1979년 입석마을에 방치돼 있다 발견된, 국내 유일의 고구려 빗돌이다. 이쯤에서 시내로 돌아가려면, 전시관 앞쪽 도로변 입석경로당 앞에서, 노은 쪽에서 오는 버스를 타면 된다.
404번 버스로 종점인 봉황휴양림까지 가기 위해 낚시터를 다시 건너 중앙탑초등학교 앞으로 걸었다. “맨 붕어지 뭐, 배스도 가끔 나오고.” 평일 한낮인데도 물가와 수상방갈로엔 낚시꾼들 모습이 꽤 눈에 띈다. 낚시질 구경하며 30분을 기다려, 404번 버스를 탔다.
할머니 셋에 할아버지 셋, 어르신 전용 완행버스는 남한강 물줄기 따라 굽이치는 2차선 지방도를 달린다. 활짝 연 차창으로 쏟아져들어오는 강바람에 섭씨 30도 더위쯤은 씻은 듯이 사라진다. 소나무숲을 지나면 솔향기, 밤나무숲을 지나면 밤꽃 향기가 차 안에 가득 찬다. 장미산(薔薇山) 자락을 지나면서 특유의 밤꽃 향기는 점점 더 진해지는데, 그러든지 말든지 할아버지들은 무덤덤, 할머니들은 시큰둥한 표정이다.
“장미산 꼭대기엔 산성도 있고 절도 있어요. 아, 전망도 괜찮지.” 장미산마을에서 내린 김계환(64)씨의 마을 자랑이다. “병원에 약 타러 다녀오는 중”이란다. 장미산은 원래 ‘기다란 산의 지형’에서 비롯한 지명이지만, 나중에 장미꽃을 뜻하는 한자로 바뀌었다고 한다. 장미산성은, 산성쌓기 내기를 한 오누이 전설이 전해오는 삼국시대 석성이다.
몇 가구 안 사는 한적한 장미산마을 찻길 옆으로 웬 핑크빛 가건물이 눈에 확 띈다. ‘다양한 부부용품을 구비’했다는 ‘성인용품점’이다. 뜬금없어 보이지만, 오고 가는 운전자들이 주고객일 터다. 어쨌거나 장미산마을 이름과 핑크빛 성인용품 가게가 어울리는 면이 전혀 없어 보이지는 않는다.
버스는 민속공예품과 수석, 불교 석물 가게 즐비한 가흥리를 지나, 능암마을에서 좌회전해 봉황리 내동마을로 들어선다. 아찔한 풀 냄새, 구수한 거름 냄새 번갈아 흐르는 마을이다. 어린 벼 커가는 무논에 흩어진 왜가리들과 개울에서 고기잡이하는 주민들 모습이 차창 밖 풍경을 한층 짙푸르게 키워준다.
버스 종점은 보훈휴양원 안마당이다. 여기서 잠시 걸어서 물길 건너면 산자락에 충주시에서 운영하는 아담한 봉황자연휴양림이 있다. 주말 숙박 예약은 전달 1일 이미 인터넷 예약이 끝났고, 평일엔 일부 여유가 있다.
버스는 종점에서 15분 머물고 출발한다. 시내로 돌아갈 다음 차편 여유가 있다면 내동마을에서 내려 산기슭에 있는 ‘봉황리 마애불상군’(보물 제1401호)을 탐방해 보는 것도 좋겠다. 내동교에서 안내판 옆 둑방길을 따라 걸어간 뒤 가파른 계단을 잠시 오르면, 이웃한 작은 바위 벽에 돋을새김으로 표현된 여러 개의 작은 마애불상을 볼 수 있다. 삼국시대 유적인데, 일부는 파손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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