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we

파리 시민만 시민인가 - 정문태

by 오직~ 2015. 12. 1.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international_general/719417.html

 

 

 

 

 

폭력에 감춰진 불평등

“우리는 동정심과 단결을 보여야 한다. 테러에 맞선 프랑스는 강하고 국가기관은 굳건해야 한다. 어떻게 군대를 동원하고 어떻게 방어하는지를 아는 국가가 있다. 테러리스트를 쳐부술 것이다.” 프랑스 대통령 프랑수아 올랑드는 결연했지만 별 믿음이 가지 않았다.

“우리들, 당신의 독일 친구들, 우리는 당신들과 아주 가까이 있다. 우리는 당신들과 함께 울고 있다. 당신들과 함께, 우리는 당신들을 공격한 이들에 맞서 함께 싸울 것이다.” 독일 총리 앙겔라 메르켈은 지나치게 감성적이었다.

 

“우리는 당신과 연대해 있다. 우리 모두는 함께다. 우리는 당신과 함께 있다. 단결.” 영국 총리 데이비드 캐머런은 짧고 강력했지만 형식적이었다.

 

“이건 파리와 프랑스 시민만 공격한 게 아니고 모든 인류와 우리가 지닌 보편적 가치에 대한 공격이다. 우리 목표는 그 야만적인 조직(이슬람국가)을 깨뜨리는 것이다.”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는 이미 수도 없이 써먹었던 말만 되풀이했다.

 

“어떤 나라나 도시도 테러의 위협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종교의 이름으로 공격하는 이들은 자신들의 종교에 흠집을 낼 뿐이다.” 유엔 사무총장 반기문도 한마디 거들었지만 본질에서 벗어난 허전함만 남겼다.

 

미군 침공으로 수십만명이 죽었다 

11월13일 파리에서 테러사건이 터지자 내로라하는 정치인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쏟아냈다. 정작 시민을 보호해야 할 의무를 다하지 못한 그자들 말은 늘 똑같았고, 늘 공허했다. 그자들은 이틀 뒤인 15일 터키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희생자를 향해 묵념도 했다. 세상 곳곳에선 추모 행사가 열렸다. 으레 언론은 난리를 쳐댔다. 14년 전 9·11공격사건 때 그랬던 것처럼.

 

파리 희생자는 130명으로 늘었고 부상자만도 400여명에 이른다고 한다. 엄청난 인명 피해를 낸 이 사건을 통해 그동안 폭력에 감춰져온 평등의 문제를 돌아볼 때가 아닌가 싶다. 지금 우리는 모든 철학적 사유와 역사 발전 법칙이 쫓아온 평등이라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가 뿌리째 흔들리는 시대를 살고 있다. 파리 사건 한 달 보름 전인 9월28일로 돌아가 보자. 미국의 지원을 받은 사우디아라비아가 이끄는 9개 아랍다국적군은 예멘 해안도시 모카의 한 예식장을 공습해서 여성 80여명을 포함한 민간인 131명을 살해했다. 그 학살사건은 “공습한 적 없다”는 사우디 정부 발뺌 한마디로 끝났다. 거기엔 수사도 조사도 없었다. 정치인들의 묵념 따위도 없었다. 그 흔해빠진 촛불 하나 밝힌 곳도 없었다. 국제 언론도 데면데면 흘려 넘겼다. 파리 시민 130명 목숨과 모카 시민 131명 목숨은 그렇게 달랐다. 우리는 파리 시민 목숨이 소중하듯이 모카 시민이나 카불 시민이나 서울 시민 목숨 하나하나도 똑같이 소중한 가치를 지녔다고 귀 닳도록 배워왔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달랐다. 인본주의를 꿈꾸었던 21세기 세계시민사회는 소리 없이 무너졌다. 파리 시민 130명 목숨에 온 세상이 발칵 뒤집혔으나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시리아 리비아 예멘 파키스탄 시민 목숨은 아무도 돌아보지 않았다.

  

유엔 보고서에 따르면 테러에 맞선 전쟁을 선포한 미국이 2001년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뒤부터 살해당한 민간인이 1만8000여명에 이른다. 지난 한 해만도 어린이 714명에다 여성 298명을 포함해 시민 3699명이 희생당했고 6849명이 중상을 입었다. 테러와의 전쟁에 휘말린 이웃 파키스탄에서는 같은 기간 시민 2만150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미국과 캐나다와 이라크 보건부 공동조사단에 따르면 2003년 미군의 제2차 이라크 침공 뒤 2015년까지 50만명을 웃도는 시민이 희생당했다. 리비아 보건부는 2011년 미군과 나토군의 리비아 공습 뒤부터 시민 3만여명이 살해당했다고 밝혔다. 시리아인권감시소(SOHR)는 미군과 그 동맹군이 시리아 전쟁에 개입하고부터 올 10월까지 4년 동안 최대 34만여명의 시민이 목숨을 잃었다고 밝혔다. 미국-사우디아라비아 다국적군이 8개월째 소리 없는 학살전을 벌여온 예멘에서는 시민 2700여명이 살해당했다. 이 모든 희생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한 미국이 그 동맹국들과 손잡고 저질러온 21세기 학살극의 결과였다. 그렇게 100만 시민이 학살당하는 동안에도 이 세상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 100만 희생자들이 파리 시민이 아니었던 탓이다. 그 100만 희생자들이 무슬림 시민이었고, 가난한 시민이었던 탓이다. 그 100만 희생자는 미국의 동맹국 시민이 아니었던 탓이다. 그리하여 그 100만 시민 죽음들 앞에선 추모도 묵념도 없었다. 날뛰던 언론도 몸을 사렸다. 이게 정치, 경제, 종교, 인종적 차별로 일그러진 21세기판 평등의 실체였다.

 

“물대포는 필요없다”

파리 사건 하루 뒤인 11월14일, 대한민국의 심장 서울에서도 그 평등의 가치는 싸늘하게 식어갔다. 거리로 쏟아져 나온 10만 노동자는 정부의 교과서 국정화와 노동정책에 반대하고 청년실업, 쌀값 폭락, 빈민 문제 해결책을 요구했다. 이런 시위는 대한민국에서만 벌어지는 무슨 별난 일이 아니었다. 2006~2013년 사이 국제 언론에 등장한 시위만도 87개국 843건에 이른다. 그 가운데 3분의 1도 넘는 304건이 미국과 유럽을 비롯한 고소득 국가에서 벌어졌고 남미와 동아시아, 아프리카, 중동이 그 뒤를 이었다. 시위란 게 전세계적 현상이라는 뜻이다. 21세기 들어 폭발적으로 늘어난 이런 시위는 인류사에서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일이고 그만큼 세계시민사회의 정치, 경제, 사회적 불평등이 깊어졌다는 증거다.

 

그날 대통령 박근혜가 주요 20개국 정상회의에 참석한다며 터키로 날아가고 있던 시간 농민 백남기는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아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이내 대한민국 제1당 대표 김무성은 “도심 폭력 시위는 공권력에 대한 테러다”라고 외쳤다. “이완영 ‘美경찰 총에 시민 죽어도 80~90%는 정당한 것으로 나와’”(<동아일보> 11월16일치), “與 일부 ‘물대포 농민 중태 원인은 한 시위대 폭행 때문’”(<조선일보> 11월19일치)처럼 언론도 달려들었다. 모조리 시민 시위를 파리 테러에 빗대고 싶은 속내를 감추지 않았다.

 

2011년 이른바 영국폭동 때를 보자. 시위대가 인종차별 반대와 경제 불평등 해소를 외치며 런던 같은 대도시를 불태우던 상황 속에서도 내무장관 테레사 메이는 “영국 경찰은 물대포를 안 쓴다. 경찰은 공동체의 동의를 통해 일한다”며 물대포 사용을 요구하는 일부 여론을 끝내 거부했다. 곧장 경찰 대변인은 “혼란을 막을 만한 수단이 경찰한테 널렸다. 물대포는 필요 없다”며 내무장관 뒤를 받쳤다. 대한민국에는 그런 내무장관도 경찰도 없었다. 오직 시민을 진압 대상으로 여기며 국가로 위장한 정부와 그 대통령 하나에 목매단 이들만 날뛰었을 뿐이다.

 

대한민국 현대사를 농단한 독재자의 딸로 태어나 한평생 물대포 한번 맞아본 적 없고 차가운 거리에서 목 놓아 민주주의를 외쳐본 적도 없는 대통령 박근혜는 파리 테러 희생자들을 향해 조전도 쳤고 머리도 숙였다. 그러나 제 나라 시민 목숨 따위에는 관심도 없었다. 박근혜와 그 정부는 대한민국 현대사를 온몸으로 부둥켜안고 한평생 독재 타도와 민주화를 외쳐왔던 농민 백남기, 지금 숨이 넘어가고 있는 그이 앞에 불법 시위 딱지만 붙여 놓았을 뿐이다. 이 쓰라린 대한민국 불평등을 2015년 11월의 역사로 기록한다. 시민사회에 대한 반역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