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의 노래 가사를
지금 2015년에 들어도 감동이다.
아, 이런 삶도 있구나.
무명의 가수, 히트되지 않은 노래를 불렀던 신비로운 가수로 묻혀져 살다가
20년이 지난 후 수퍼스타로 세상에 드러나게 되는 가수.
유명세로 콘서트를 몇 차례 끝내고
다시 서민의 삶으로 돌아온 사람.
노래와 '사람'이 가슴 뭉클하다!
또한 감독이었던"말릭 벤젤룰"의 요절이라니...
Cause (1971)
크리스마스 2주 전
일자리를 잃고
시궁창의 예수에게 말했더니
교황은 그의 알 바 아니라고 하네
비가 샴페인을 머금고
에스토니아의 대천사가
날 취하게 했지
내 생애 가장
달콤한 입맞춤은
내가 맛본 적 없는 것이니
I Wonder (1970)
난 궁금해
넌 얼마나 많이 속아봤는지
난 궁금해
넌 얼마나 많은 계획을 망쳤는지
난 궁금해
넌 얼마나 많이 섹스를 해봤는지
난 궁금해
다음은 누구 차례인지
난 궁금해
정말 궁금해
[ Behind Story ]
1. ‘슈가맨’은 앞을 못 보는 장님이다?
‘슈가맨’은 두 장의 앨범 외에 알려진 사실이 없는 신비로운 가수였기에, 남아공에는 그를 둘러싼 수많은 루머들이 나돌았고 진실인 양 오랜 시간 동안 믿어져 왔다. ‘슈가맨’이 무대 위에서 분신자살 했다는 이야기는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은 뉴스에서 다뤘던 소문이다. 뿐만 아니라 그가 감옥에 있고, 마약에 심취했고, 질투심 많은 애인이 쏴 죽였다는 소문도 있었고, 남아공 어딘가의 정비소에서 일한다는 소문도 나돌았다. 또한 그의 첫 번째 음반 [Cold Fact] 커버에 그가 짙은 선글라스를 끼고 앉아 있는 모습과 “창문을 열고 뉴스를 ‘들었네’’’라는 노래 가사는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를 장님이라고 믿게 만들었다.
2. <서칭 포 슈가맨>은 아이폰으로 촬영했다?
투자를 넉넉하게 받지 못했던 말릭 벤젤룰 감독은 애초에 수퍼 8 카메라로 촬영하다 제작비가 떨어지자 고민에 빠진다. 촬영이 중단될 위기에 놓인 말릭 벤젤룰 감독이 고심 끝에 내놓은 해결책은 아이폰으로 촬영하는 것. 1 달러를 주고 아이폰에서 수퍼 8 앱을 다운받아 말릭 벤젤룰 감독은 영화를 완성시켰다. 아이폰으로 찍은 장면이 어디냐고? 영화 초반 ‘디트로이트 술집에서 노래하는 ‘슈가맨’을 음악 프로듀서가 만나는 장면’이 바로 아이폰으로 촬영된 장면.
3. ‘슈가맨’은 디트로이트가 아닌, 샌프란시스코 출신이다?
‘슈가맨’은 노래 가사에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인 디트로이트를 한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리고 엉뚱하게도 사람들은 그가 샌프란시스코 출신일거라고 확신했다. 그 첫 번째 이유는, ‘슈가맨’의 노래 중 ‘Jane S Piddy’라는 곡에서 샌프란시스코가 언급되었기 때문. 두 번째는 ‘Hate Street Dialogue’라는 곡의 ‘Hate Street’라는 단어가 60년대 후반, 사이키델릭 록으로 유명했던 샌프란시스코의 ‘Haight Street’와 발음이 비슷했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샌프란시스코에 제니스 조플린(Janis Joplin)이라는 유명한 가수가 살고 있었는데 ‘슈가맨’의 노래 중 ‘Like Janis’라는 곡이 있었기 때문이다.
4. 본편에 애니메이션이 삽입된 진짜 이유는?
‘슈가맨’의 놀라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드는 데 있어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는 1998 년, ‘슈가맨’이 56세가 되어, 남아공으로 와 공연을 하기 전까지는 그를 찍은 영상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말릭 벤젤룰 감독은 애니메이션을 활용하기로 결정, 직접 스크립트를 쓰고 영화 속에 삽입될 장면들을 스케치했다. 하지만 턱없이 부족한 예산 탓에 그마저도 완성시키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결국 이 애니메이션 중 일부는 최종 편집본에 삽입된다.
5. 마지막까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Inner City Blues’의 비밀은?
1970년, 디트로이트에서 발매된 ‘슈가맨’의 1집 [Cold Fact] 앨범의 6번째 트랙에 ‘Inner City Blues’ 라는 곡이 삽입돼있다. 1년 뒤인 1971년, 또 다른 앨범이 디트로이트에서 발매되었는데 바로 소울 뮤직의 대표 가수 마빈 게이(Marvin Gaye)의 [What’s Going on]이다. 그의 앨범 9번째 트랙에도 ‘Inner City Blues’라는 동일한 제목의 곡이 있는데, 두 앨범의 베이스 연주자 또한 전설적인 베이시스트, 밥 배빗(Bob Babbitt)으로 동일인이다. 이에 말릭 벤젤룰 감독은 밥 배빗에게 전화를 걸어 혹시 당신이 마빈 게이에게 ‘슈가맨’이 썼던 곡명을 사용할 것을 제안하진 않았냐고 물었다. 밥 배빗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고, 말릭 벤젤룰 감독은 그의 말이 진실이라고 믿는다.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심지어 난 ‘슈가맨’(로드리게즈)이 누군지도 모르겠다.”
Crucify Your Mind (1970)
대가를 치르게 한 건
사냥꾼인가 놀이꾼인가
너의 상실을 팔아
편히 누워 있을까
네가 고통 받았던 건
쾌락에 목말라서였나
넌 호기심 많은 톰
나약한 제임스가 되었어
그래도 넌 네게
뭔가 있다 말하지
너만의 특별함
하지만 난 너의
자기연민을 보았어
눈물이 볼을 타고 흐를 때
감독 : 말릭 벤젤룰 2011作
배우 : 말릭 벤젤룰, 시스토 로드리게즈
20150908 곰플레이어
"1970년대 미국 디트로이트의 부둣가 뒷골목, 담배 연기 가득한 한 술집에서 손님들을 등지고 노래하던 가수가 있었다. 그의 실력을 알아본 프로듀서가 그의 앨범 두개를 냈지만 미국에서는 이렇다 할 반향을 얻지 못하고 그냥 그렇게 시간과 함께 사라진다.
하지만 신기한 일은 여기서부터다. 그의 첫 번째 앨범 ≪콜드 팩트≫(Cold Fact)가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우연히 건너가면서 엄청난 인기를 얻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남아공은 극심한 인종차별정책과 함께 나치 독재의 부활이라고까지 여겨질 만큼 끔찍한 정치적 현실에 놓여 있었다. 사람들은 주변에 스파이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겁에 질려 있었고, 정부 정책을 비판한 사람들은 어김없이 잡혀갔다. 어떠한 외국 공연도 허가되지 않았으며, 유통되는 모든 음반은 일일이 검열되어 폐기되었다. 이때, 앨범 제목처럼 ‘콜드 팩트’, 차가운 현실 앞에 등장한 로드리게즈의 노래들은 남아공에서 저항운동의 시작이자 탈출구로 여겨지게 되었다. 제때에 도착한 노래. 하지만 정작 로드리게즈 자신은 노래와 함께 도착하지 못했다. 그의 앨범은 남아공에서 비틀스의 ≪애비로드≫(Abbey Road) 와 사이먼 앤드 가펑클의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어≫(Bridge Over Troubled Water)만큼 많이 팔렸지만 그에 대해서 알려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가 무대 위에서 분신자살을 했다는 소문이 돌았고, 신문에서는 로드리게즈를 찾아줄 ‘음악평론가 탐정’을 기다리고 있었다. ≪콜드 팩트≫에 실려 있는 노래의 제목을 따서 지은 ‘슈가맨’이라는 애칭의 가수 로드리게즈를 찾아나서는 이 다큐멘터리는 이렇게 긴 배경 설명이 끝난 뒤에서야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말릭 벤젤룰 감독은 스웨덴 텔레비전에서 엘튼 존이나 비욕 같은 팝스타에 대한 프로그램을 만든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장편 데뷔작인, <서칭 포 슈가맨>을 만들어냈다.
‘서칭 포’로 시작되는 다큐멘터리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이 영화는 슈가맨, 로드리게즈의 흔적을 쫓아가지만 결국 영화가 찾아낸 것은 로드리게즈만은 아니다. 오히려 그를 찾아가는 과정에서의 ‘어긋남’이 이 다큐멘터리의 중심에 놓이게 된다. 때문에 사실 질문은 ‘그는 어디에 있는가?’라기보다 ‘우리는 왜 그를 찾지 못했는가?’가 될 것이다. 그는 남아공에서 엄청난 앨범 판매고를 올렸지만 ‘돈의 흐름’ 바깥에 있었고, 유명세와 전혀 무관한 노동자의 삶을 살고 있었다. 드라마틱한 삶의 중심에 서 있었지만 정작 로드리게즈 자신은 그 ‘드라마’에 등장하지 않는다. 이때 다큐멘터리는 기다렸다는 듯 바로 그것이 드라마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로드리게즈를 찾는 과정과 거의 동일한 비중으로 그 삶의 드라마를 담는다. 여기에 그가 발표했던 많지 않은 노래들이 로드리게즈의 40여년 삶의 이야기와 함께 배치된다. 수평 트래킹으로 도시를 걷는 외로운 로드리게즈의 모습을 담은 이 장면들은 이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들을 만들어낸다.
그런데 이 영화가 결정적으로 다른 ‘서칭 포’ 다큐멘터리들과 다른 점은 이 모든 이야기가 다 밝혀지고 난 다음 한참을 다시 거슬러 올라가 이야기를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실제로 로드리게즈를 찾아나선 ‘탐정’들이 3년 만에 그를 찾아낸 것은 1997년이었으며, 그 다음해인 1998년, 로드리게즈는 남아공에서 성대한 ‘커밍 아웃’ 콘서트를 열었다. 말릭 벤젤룰이 아프리카 여행 도중 로드리게즈의 이야기를 처음 접한 것이 그로부터 8년이나 지난 2006년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시차’를 이해할 수 있겠지만, 영화 속 어디쯤, 왜 이 이야기를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 꺼내들었는지가 설명되었더라면 좋았을걸 하며 아쉬운 게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로드리게즈의 또 한번의 때늦은 이 도착은 감동적이라기보다 어쩐지 서글프다."
http://www.cine21.com/movie/info/movie_id/34599
"<서칭 포 슈가맨> 감독 말릭 벤젤룰 사망
새로운 길을 찾아 떠난 것일까. <서칭 포 슈가맨>을 연출한 말릭 벤젤룰이 현지시각으로 5월13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됐다. 향년 36. 그의 형 요아르 벤젤룰은 그가 우울증을 겪고 있었다고 말했다. 현지 경찰은 벤젤룰이 자살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지만, 정확한 사망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벤젤룰은 1977년 스웨덴 이스타드에서 출생했고 린네대학교에서 저널리즘과 미디어 프로덕션을 전공했다. 졸업 뒤엔 스웨덴 공영방송 <SVT>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코브라>에서 프리랜서 저널리스트로 활동했다. 같은 방송사의 아침 프로그램 <구모론 스베리예>의 호스트로도 일했고 이후 독립 영상 프로덕션 <바라쿠다 필름 앤드 TV>에 들어갔다. <서칭 포 슈가맨>을 만들기 전 벤젤룰은 엘튼 존, 로드 스튜어트, 비욕, 크라프트베르크 등의 뮤지션들을 소재로 다수의 TV다큐멘터리를 연출했다.
2006년, “이야깃거리를 찾기 위해” 모든 일을 그만둔 그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방랑하다 미국의 포크록 가수 식토 로드리게즈의 사연을 접한다. 벤젤룰은 그의 이야기를 장편다큐멘터리로 제작하려 했지만 아무도 호응해주지 않았고 그는 결국 혼자 힘으로 <서칭 포 슈가맨>을 만들었다. 다행히 프로듀서 존 뱃섹과의 만남을 계기로 제28회 선댄스영화제에 영화를 출품한 그는 심사위원특별상과 월드다큐멘터리상을 수상했다. 이후 제85회 아카데미 시상식의 장편다큐멘터리상을 비롯해 각종 영화제에서 모두 33개의 상을 받았다.
할리우드는 때이르게 날아든 비보를 접하고 비통함에 빠졌다. 식토 로드리게즈도 “대단히 독창적이고 다정한 사람이었던 말릭”의 죽음에 슬픔을 표했고 <서칭 포 슈가맨>의 프로듀서 사이먼 친도 고통스러운 심경을 드러냈다. “그의 삶은 희망과 긍정, 행복으로 가득 차 있었고 그의 미래도 그러리라 믿었다. 하지만 이상은 힘들어졌다.” 앞으로도 영화인들은 단 한편의 영화만을 남기고 간 젊은 방랑자를 쭉 그리워할 것이다."
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76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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