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조리한 세상에 '정의'를 행할 것인가
신의 이름으로 '복종과 인내'를 따를 것인가
어느 지점을 선택해도 삶은 가슴을 짙누른다.
"더 헌트" 후로 매즈 미켈슨을 본 두 번째 매혹적인 영화다.
두 영화 모두 감동을 주는데 주인공이 같구나.
뭔가 일맥상통하는 작품들이다.
바람과 숲, 하늘과 삭막한 벌판과 공기, 영화 음악까지
그 어느 것도 넘치지 않아 버릴 게 없다.
결코 풀리지 않을 인간의 고뇌가 깊고 깊게 어두운 화면에 넘실거린다.
얼마만인가.
마치 잃었던 감정을 되찾은 듯 마지막 자막이 오르면서 터져오르는 눈물은..
감독 : 아르노 데 팔리에르 2013作
배우 : 매즈 미켈슨(미하엘 콜하스), 브루노 간츠(사령관), 드니 라방(마틴 루터)
20140315씨네코드선재
덴마크의 국민배우였던 매즈 미켈슨은 <007 카지노 로얄>(2006)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이며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 후, <샤넬과 스트라빈스키>(2009), <삼총사 3D>(2011), <로얄 어페어>(2012)뿐만 아니라 미국 드라마 <한니발> 시즌 1,2에서 희대의 살인마 한니발 렉터역을 맡아 치명적인 매력을 선보이며 팬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오가며 탄탄한 연기력을 선보이고 있는 매즈 미켈슨은 <더 헌트>(2013)에서 한 소녀의 거짓말로 인한 마을 사람들의 불신 속에서 외로운 싸움을 시작한 마커스 역을 맡아 제 65회 칸 영화제 남우 주연상을 수상하며 다시 한번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 시킨다. <미하엘 콜하스의 선택>은 <더 헌트>이후 매즈 미켈슨이 선택한 차기작으로 더욱 관심을 모으고 있는 작품이다. 그는 16세기 독일의 말상인 미하엘 콜하스로 분해 통행료 징수라는 부당한 사건에 휘말리게 되면서 자신의 권리를 끝까지 지키기 위해 죽음도 마다 하지 않는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해 마치 미하엘 콜하스가 빙의된 것 같다는 극찬을 받았다. 특히 이번 작품에서 그는 덴마크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불어로 연기해 더욱 관심을 받았다. 평범한 개인을 넘어서는 미하엘 콜하스라는 캐릭터에 매력을 느낀 매즈 미켈슨은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어렵지만 즐겁게 이 도전을 받아들였다. 낯선 언어로 감정을 이끌어내며 연기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언어의 한계를 뛰어넘어 관객을 압도하는 내면 연기로 다시 한번 그의 연기력을 입증 받으며 대체 불가능한 배우로 자리매김 한다. 이를 증명하듯 프랑스의 아카데미 시상식이라 불리는 제 39회 세자르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르는 쾌거를 이뤄 그의 연기 인생에 최고의 필모그래피를 완성하기에 이른다.
독일의 말 상인이었던 미하엘 콜하스는 16세기 실존 인물로, 독일작가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가 그의 삶을 소설 『미하엘 콜하스』로 출간해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특히 실존주의 작가 프란츠 카프카가 독일 문학에서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 바로 『미하엘 콜하스』임을 언급하며 자신이 글을 쓰고 싶게 만든 작품이라고 말할 만큼 이 소설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드러내 더욱 화제가 되었다. 그리고 25살의 젊은 나이에 이 소설을 읽고 인물의 품위와 눈부신 에너지에 끌렸다고 한 아르노 데 팔리에르 감독은 영화화 과정에서 원작의 배경인 독일이 아닌, 자신의 고국인 프랑스로 과감하게 옮겨와 16세기에 신교와 구교가 평화롭게 공존했던 세벤느 지역을 배경으로 그만의 미하엘 콜하스를 탄생시켰다. 또한 감독은 소설의 줄거리를 그대로 가져가되 미하엘 콜하스의 내면과 깊은 고뇌의 모습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도록 부차적인 에피소드를 지우고 딸과 젊은 신부, 농장의 하인인 제레미, 외팔의 개종자 등 여러 인물들을 새롭게 만들어 냈다. 대사 역시 현대적인 언어로 완전히 다시 탈바꿈했다. 그리하여 <미하엘 콜하스의 선택>은 당당히 제 66회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에 노미네이트되는 쾌거를 이루며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평범한 시민으로 살아가는 한 남자가 부당한 처우에 맞서 반란을 일으키는 16세기 시대극 <미하엘 콜하스의 선택>은 정의에 맞서는 미하엘 콜하스의 감정과 관객의 감정을 밀착시킨다. 여느 시대극처럼 웅장하진 않지만 그 시대를 경험하는 듯한 세밀한 연출은 한시도 지루할 틈이 없다. 또한, 올 야외 로케이션으로 촬영된 이 영화는 희로애락을 더하는 배경음악조차 군더더기로 느껴질 만큼 심플하면서도 생동감 있게 다루고 있다. 바람소리, 풀 숲을 거니는 소리, 물소리 그리고 귓가에 울리는 듯한 파리 소리는 마치 자연의 숨결을 더하는 듯 하다. 여기에, 인공조명 조차 걷어낸 햇살과 어둠은 스크린에 생동감과 윤기를 더하며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한다. 미장센을 돋보이지 않게 하는 것이 <미하엘 콜하스의 선택>의 미덕인 만큼 미술과 의상을 비롯해 감독은 애초에 아무리 미니멀하게 세트에서 재구성한다고 해도 살아있는 자연만큼 리얼하진 않을 것이라 판단했다. 과도한 연출도, 화려한 카메라 기법도 대단한 사운드도 없이 오직 이야기의 힘과 미하엘 콜하스라는 인물에 생명력을 불어넣은 <미하엘 콜하스의 선택>은 세자르 시상식에서 촬영상, 사운드상, 미술상, 의상상 후보에 모두 오르며 감독의 탁월한 선택과 연출력을 입증했다. 인공적인 연출보다 한 인간의 고뇌를 자연으로 재현한 세밀한 연출이 돋보이는 이 작품은 오롯이 미하엘 콜하스가 정의를 향해가는 길을 묵묵히 그려 보는 이로 하여금 눈시울을 붉히게 만든다.
16세기 실제 사건을 독일 최고의 작가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가 소설로 담은 이후 1937년 막스 하우플러 감독, 1969년 폴커 쉘렌도르프 감독의 동명 영화, 같은 해 방영된 TV드라마 <미하엘 콜하스 – 반역자>, 2007년 오에 겐자부로의 <아름다운 애너벨 리 싸늘하게 죽다>, 그리고 <미하엘 콜하스의 선택>까지 ‘미하엘 콜하스’는 총 5번이나 극화될 만큼 남다른 힘을 지닌 고전작품이다.말 상인이었던 미하엘 콜하스는 귀족은 아니었지만 남부럽지 않은 부와 명예를 지닌 인물이었다. 평범한 사람으로서 누릴 수 있는 보장된 행복이 있었다. 그런 그가 생계였던 말과 사랑하는 아내를 잃자, 이 모두를 포기할 각오로 반란을 일으키게 된다. 미하엘 콜하스의 요구는 정당한 과정을 거쳐 재판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 단 하나였다. 그러나 기어이 무력으로 권력을 위협하기 전까지이 당연한 요청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일으킨 반란의 직접적인 피해자는 핵심 권력층이기보다 그와 같은 보통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루터는 농민과 귀족이 평화롭게 공존해야 하는데 이를 무너뜨린 책임을 미하엘 콜하스에게 묻는다. 영화는 이렇게 끊임없이 올바른 방식으로는 결코 부당함을 바로잡을 수도,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도 없는 사회의 딜레마를 극대화시키며 현재의 보통 사람들인 우리들에게까지 공감대를 넓힌다. 감독 역시 <미하엘 콜하스의 선택>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에 대해서도 직관력을 가질 수 있는 이야기”라고 말한다. 또한 극 중 말 때문에, 아니면 엄마 때문에 싸우냐는 딸의 물음에 미하엘 콜하스는 모두 ‘아니다’라고 답했다. 그는 오로지 자신의 정의를 따르기 위한 전쟁을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권력을 자신이 잡을 기회를 얻었음에도 본래 목적을 이룰 수 있게 되자 모든 것을 포기한다. 목숨과도 바꾸지 않았던 그의 신념은 인간의 존엄에 대한 다른 차원의 질문을 건넨다. 16세기 말 상인의 이야기가 시대를 초월해 지금까지도 유효한 까닭이다. 영화는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선택에 대하여 역설하고 비범한 고전의 아우라를 명실공히 입증하며, 묵직한 울림을 전한다.
레오 까락스 감독의 페르소나로 <홀리 모터스>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였던 드니 라방이 이번에는 종교 개혁가 마틴 루터로 변신한다. 마틴 루터는 16세기 로마 카톨릭의 부패에 반기를 들고 전면적인 대립에 나서 오늘날 개신교의 전신이 된 사람이다. 라틴어로 되어있던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여 대중화에 기여했다고 하니 실제 독일인이었던 미하엘 콜하스 역시 루터의 성경을 읽은 독실한 신자였고, 당시의 ‘정의’란 자연스레 종교적인 잣대로 구분될 수밖에 없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그러나 누구보다 더 ‘시대의 정의’를 추구하며 살았던 미하엘 콜하스는 결국 신에게 원수를 용서하지 못하는 자신을 용서치 마시라고 기도를 올리게 된다. 남작이 마땅한 죗값을 치르지 않는 불공정한 상황에서 그는 스스로 심판자가 되어 남작을 벌하고자 한다. 하지만 루터는 이렇게 말한다. “이게 당신이 말하는 정의인가?” 그는 고난을 통해서 하느님이 드러난다는 ‘십자가 신학’을 주장했고, 어떤 불공정한 상황 속에서도 심판할 수 있는 존재는 인간이 아닌 신이기에 이를 받아들여 인내해야 한다 믿었다. 언뜻 미하엘콜하스의 선택이 인간적으로 타당하다는 생각이 우선 들 지 모르나 루터의 말도 일리는 있다.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정의를 행한다는 명목 아래, 끝없는 복수를 낳을 수도 있으므로.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울피아누스 등 세기의 철학자들도 ‘정의’에 대한 개념은 서로 달랐다. 또한 우리나라에서 스테디셀러에 올랐던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에서도 알 수 있듯 정의는 인간의 성향과 상황에 따라 그 기준이 변화하는 성질의 것이다. 그렇기에 지금까지도 미하엘 콜하스의 선택에 대해 의견이 분분한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다만 이 이야기가 끊임없이 재해석되는 이유는 단순히 그가 옳고 그른지를 평가하는 것이 아닌, 말 그대로 정의에 대한 인문학적 사유를 이끌어내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미하엘 콜하스의 선택>은 이러한 원작의 정수를 마지막 장면에서 완벽하게 담아내 더욱 경이롭다. 사형을 앞둔 미하엘 콜하스의 눈빛에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물론, 자신의 선택에 확신하지 못하는 두려움까지도 담겨있었다. 감독의 연출과 배우의 연기가 이루어낸 보기 드문 앙상블은 관객들의 마음에도 조용하지만 오랜 파문을 남긴다.
http://www.cine21.com/movie/info/movie_id/410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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