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즐거움을 찾아서

신세계 _ 박훈정

by 오직~ 2013. 3. 12.

'신세계'는 없다!

선과 악도 없고 우군 적군도 없다.

피비린내 나는 삶의 바닥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건

영화 속 대사처럼 처절한 '독기'

 

빛나는 황정민의 연기와

이정재의 멋진 스타일..

 

 

영화 ‘신세계’ 박훈정 감독

‘악마를 보았다’ ‘부당거래’ 작가
잔혹한 누아르 영화 만드는 건
밝지만은 않은 세상 담아내고파

‘신세계’는 3부작 염두에 두고 써
흥행하면 속편 제작 가능성 있어
가편집서 1시간 들어내 아쉬웠다

일반 관객에겐 낯선 이름일 수 있지만, 박훈정(39) 감독은 영화계에선 이미 유명한 글쟁이였다. 데뷔작이 2010년 김지운 감독이 연출한 <악마를 보았다>라지만, 그 8년 전인 2002년 한 공모전에 당선된 뒤 시나리오 작가 일을 전업으로 했으니 햇수로만 10년이 넘었다.

그가 2011년 <혈투>에 이어 두번째로 각본과 연출을 겸한 영화 <신세계>는 지난달 21일 개봉해 300만 관객을 넘기며 흥행중이다. <신세계>의 박훈정 감독을 7일 서울 동교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신세계>는 매끄럽게 전개되는 이야기에 이정재·최민식·황정민 같은 스타 배우들이 나오지만, 어두운 분위기의 누아르 장르인데다 잔혹한 표현이 들어 있는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다. 흥행을 장담하기 어려웠다.

“우리나라 관객들이 누아르를 잘 안 봐요. 한국에서 누아르는 힘든 장르예요. 1년에 한 편 만들어질까 말까이고, 만들어져도 성공 사례가 흔치 않죠. <신세계>는 한국에서 오랜만의 누아르물이죠. ‘센’ 배우들을 붙였고 이야기도 나름대로 쉽게 풀었다고 생각해요. 이 정도면 대단히 대중적이란 거죠.”

그가 시나리오를 쓴 <악마를 보았다>와 <부당거래>, 연출을 겸한 <혈투>와 <신세계>까지 박 감독의 작품들은 ‘어둡고 잔혹하다’는 공통된 톤이 있다. 스릴러건, 하드보일드 잔혹극이건, 누아르건 이른바 ‘박훈정 스타일’이 있다.

“저는 세상의 어두운 면을 보는 편이에요. 성향과 취향이 그런 쪽인 것 같아요. 염세주의자까진 아니지만, 밝은 게 있으면 어두운 게 있고, 마냥 밝지만은 않은 세상이니까요.”

눈물과 웃음을 짜내는 드라마가 인기를 끄는 요즘 국내 영화계에서 ‘어둡고 잔혹한’ 누아르 영화를 만든 이유를 그는 “내가 좋아하고, 내가 보고 싶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한국의 누아르를 많이 보고 싶은데 안 만들어지니까 내가 만드는 거예요. 휴먼 코미디라든지 우리나라 주류 장르들은 많이 만들어지잖아요.”

그는 자신이 써온 작품들이 “어떤 시스템 속에서 사람들이 소모되는 이야기”라고 했다. “제 작품에서 <악마를 보았다>의 ‘장경철’을 빼면, 나머지 인물들은 나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고 생각해요. 보통 사람들이고. 상황이 사람을 그렇게 만든 거니까. 누구든 그런 선택을 할 수도 있어요. 선한 사람 악한 사람을 저는 구분하진 않아요. 상황이 사람을 극단으로 몰아가는 거죠. 그 인물이 속한 시스템이나 세력에 대한 이야기들이니까.”

<신세계>는 3부작을 염두에 두고 쓴 작품이다. 기업 규모로 성장한 범죄조직 ‘골드문’에 잠입한 경찰 ‘이자성’(이정재)과 그와 끈끈한 우애를 나누는 조직폭력배 ‘정청’(황정민), 골드문을 와해시키기 위해 이자성을 잠입시킨 ‘신세계’ 계획의 설계자인 경찰 ‘강 과장’(최민식)의 얽히고설킨 이야기가 주요 줄거리다.

그가 구상해둔 전체 3부작 줄거리 중 <신세계>는 2부에 해당한다. <신세계>의 흥행 성공으로 이 영화 속 시간의 ‘이전’과 ‘이후’를 다루는 영화가 제작될 가능성도 높아 보인다. 영화 마지막에 삽입된, 이자성과 정청의 과거를 보여주는 에필로그는 <신세계> 속편의 예고편이 될 수 있다.

“원래 에필로그가 두 개였어요. 지금 것과, 류승범·마동석씨가 나온 판본이었죠. 류승범·마동석씨 판본은 지금 이야기의 다음 이야기였죠. 지금 버전이 들어갔으니까 다음 편은 그 이전 이야기가 될 수 있죠.”

박 감독은 가편집본이 3시간8분이었는데 2시간14분으로 1시간가량 분량을 편집할 수밖에 없었던 데 대해 아쉬움을 표했다. “외국의 누아르 영화들은 2시간은 기본으로 넘고 3시간도 꽤 있어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는 4시간이잖아요.”

그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 <지하철>이라는 제목의, 블록버스터 장편영화의 시나리오를 썼다고 했다. 그 뒤 “남들이 공부할 때 글 쓰고, 남들이 공부 안 할 때도 글 쓰고, 군대에서도 글을 썼다”고 한다. 대학은 1년 다니다 그만두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글을 써 몇 작품이 공모전에 당선됐지만 영화화로 이어지진 않더라고 했다. “공모전에 당선되면 잘되는 게 아니라, 그냥 거기서 끝이더라고요.”

그는 17살 때부터 지금껏 20년 넘게 써온, “구상 단계의 이야기부터 완성 단계의 시나리오까지 갖고 있는 작품이 수백 편이 된다”고 했다. 그렇기에 “소재가 고갈될 걱정은 없다”고도 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싶다”며 그는 <부당거래>를 함께 만든 류승완 감독과의 조우 가능성도 언제든 열려 있다고 말했다.

20130310 한겨레 박보미 기자

 

감독 : 박훈정 2012作

배우 : 이정재, 황정민, 최민식

20120309서울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