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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동의 ‘절 아닌 절’ 비사란야

by 오직~ 2011. 12. 19.

김훈 절친 김성동 “기자출신이라 다르네”

승과 속 경계에 엎드려 쓰는 육필…“난 책상 없네”

 

» 소설가 김성동씨가 지난 10일 오후 경기도 양평군 청운면 가현리 자신의 작업실 비사란야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오른편 벽난로 뒤 창가에 불상이 모셔져 있다.

 

년전 양평 산골 들어와 살아
지난 8월 뇌경색 뒤 새 각오로
‘필생 화두’ 아버지 얘기 쓰기로

 

 

비사란야에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다. 주인이 한껏 웃음 띤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 손님들을 맞는다. ‘절 아닌 절’이라는 뜻을 지닌 비사란야(非寺蘭若)의 주인은 소설가 김성동. 손님은 또래 소설가 김훈과 후배 작가인 천운영이다.

 

비사란야는 경기도 양평군 청운면 가현리에 있는 김성동의 거처 이름이다. 양평읍에서 차로 30분 이상 걸리고 가까운 동네도 시오리는 나가야 있는 이곳에 그가 들어온 것은 2004년. 등단하기 전 10년 남짓 승려 생활을 했고 <만다라>를 비롯해 몇 편의 ‘불교 소설’을 쓴 바 있는 작가가 승과 속의 경계에 자신을 놓는다는 뜻을 그 이름에 담았다. 비사란야는 거실과 주방, 그리고 크고 작은 방 셋으로 이루어졌는데, 작가는 방 하나에 미륵불을 모신 법당을 가리키는 ‘용화전’(龍華殿)이라는 당호를 붙이고 청동 불두(佛頭)와 미륵 석불을 모셔 두었다. 아침저녁으로 예불을 드리고 초파일에는 연등도 단다.

 

손님이 찾아온 날은 맑은 햇빛 속에 초겨울의 싸한 냉기가 감도는 토요일이었다. 입구의 우편함에는 몇 권의 책과 금요일치 <한겨레>가 들어 있다. 우편으로 오기 때문에 토요일치 신문은 월요일에나 배달된다고. 입구에서 앞마당에 이르는 오르막길에는 얼음이 덮여 승용차 바퀴를 자꾸만 헛구르게 했다. 비사란야 지붕 처마에는 고드름이 달렸고, 작가의 어머니가 기거하는 아래채 지붕은 눈을 이고 있다. 손님이 오면 거실 벽난로에 장작을 피울 요량이었는데 마당의 장작이 얼어붙는 통에 떼어내질 못했노라며 주인은 미안해했다. 바닥에는 미미한 온기가 흘렀지만 거실은 서늘한 편이었다. 주인은 서둘러 물을 끓여서 녹차 한 잔씩을 손들에게 대접했다.

 

김성동과 김훈은 어깨동갑 사이. 1947년생인 김성동이 한 살 위지만 친구처럼 지낸다. 특히 90년대 초중반 불광동에서 골목 하나 사이로 이웃해 살 무렵에는 식구들끼리도 내왕이 잦았다. 무엇보다, 지겨울 정도로 술을 마셨다. 1995년 김성동이 불광동을 떠나면서 자주 볼 일이 없었다. 이날 만남은 4년인가 5년 전쯤 봉평의 이효석문학제에서 마주친 뒤 처음이라 했다.

 

오랜만에 마주 앉은 두 사람은 서로의 안부부터 챙겼다. 객은 지난 8월 뇌경색 초기 증세로 병원에 입원했던 주인의 건강 상태를 궁금해했다.

 

» 김성동씨의 작업실 비사란야 한편에 모셔져 있는 불상. 그 앞에 김씨가 직접 손으로 쓴 세로쓰기 원고가 놓여 있다.

 

“꽤 오래 진행된 모양인데, 스스로는 증상을 몰랐어. 말이 어눌해지고 걸음걸이도 흔들리고 균형이 안 잡히는 걸 보고 글 쓰는 후배가 병원에 가 보자고 재촉하더라고. 처음엔 거부하다가 마지못해 따라갔는데, 병원에 가니 곧바로 응급실에 입원시키데.”

 

병원엔 열흘 정도 있었다. 지금은 통원 치료를 받으며, 처방전에 따라 약을 먹고 있다. 문학에 입문한 뒤 둘도 없는 벗처럼 가까이했던 술과 담배는 미련 없이 끊었다. 대신 점심 먹은 뒤 한두 시간씩은 꼭 산길을 걷는다. 하루 세끼를 꼬박꼬박 챙겨 먹는다. 한창 술을 마실 때엔 밥은 물론 안주도 손에 대지 않았다. 유일한 안주가 조미 김에 붙은 소금이었을 정도. 퇴원 뒤 몸을 챙긴 덕에 10㎏ 정도 체중이 늘었다. 머리는 하얗게 셌지만, 살이 오른 얼굴은 한결 보기 좋았다.

 

“그동안 몸을 너무 학대했지. 문학 핑계 대고 술담배를 너무 했잖여. 먹는 데엔 전혀 신경 안 쓰고 말여. 아파 보니까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데. 문학을 생각하니 더 초조해지고. 이렇게 살아난 건, 이제부터 제대로 된 ‘진짜’ 글을 쓰라는 섭리라 생각혀.”

 

작가는 문학을 처음 시작할 때의 떨림이 다시 왔노라고 했다. 아울러, 그의 필생의 화두와도 같은 아버지 이야기에 이제는 정면으로 달려들고 싶노라고 밝혔다. 좌익 독립운동가였던 그의 부친 김봉한은 1948년 예비검속으로 대전교도소에 수감됐고 전쟁이 터진 직후 처형당했다. 유난히 말이 늦되었던 그가 네 살 나던 해 7월 초에 처음으로 입을 떼어 대전 쪽 하늘을 올려다보며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부르짖었을 시각, 부친은 총하지혼(銃下之魂)이 되었을 것으로 그는 믿는다. 그가 지난해 말 내놓은 좌익 독립운동가 열전 <현대사 아리랑>은 아버지의 이야기로 들어가기 위한 몸풀기라 할 수 있다. “내 삶이 요 모양 요 꼴로 떠다박질려지게 된 까닭을 줄밑걷어 가보자는 것이었으니, 아버지!”(<현대사 아리랑> 머리말)

 

“호 ‘전중’은 승려이력 담은 것”
아직도 원고지 세로쓰기 고집
“원고 철해 묶을 때 가장 행복”

 

» 소설가 김성동(왼쪽)씨가 10일 오후 양평 가현리 자신의 작업실 비사란야를 찾아온 소설가 김훈씨와 인사하고 있다.

 

“내 나이가 벌써 돌아가셨을 때 아버지 나이의 두 배가 넘네. 이제 와서 새삼 무슨 겁을 내겠는가. 내 삶이 이렇게 오그라든 근본 원인은 역시 분단 문제고, 그에 대한 답을 얻으려면 아버지의 얘기를 해야겠다 싶어.”

 

그는 얼마 전 오랜만에 단편 <민들레꽃 반지>를 탈고했다. 이따금씩 아들을 죽은 남편으로 착각하는가 하면 인공 시절 여맹 위원장을 하며 불렀던 “장백산 줄기줄기~” 노래를 흥얼거리는 어머니를 주인공 삼은 소설이라 했다.

 

김성동은 지금도 원고지를 고집한다. “다 쓴 원고를 철해서 끈으로 묶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그는 말했다. 김훈 역시 원고지를 쓰는 작가다. 어쩐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작가는 원고지에 육필을 고집한다는 공통점으로 한데 묶인다. 차이점도 있다. 김훈이 연필로 가로쓰기를 하는 데 반해 김성동은 만년필을 들고 세로로 쓴다. 게다가 김성동은 붓글씨를 쓸 때처럼 여전히 원고지를 바닥에 놓고 등을 구부려서 글을 쓴다. 그 말을 들은 김훈이 “희한하다! 책상이 없으면 밥상이라도 가져다 놓고 쓰잖고”라며 타박(?)하자 김성동이 진지하게 말을 받는다. “거긴 책상 있나?” “아, 책상 없는 놈이 세상에 어딨어?” “나보다 낫네. 기자 출신과 중 출신이 확실히 다르네.” 김훈이 졌다는 듯 껄껄 웃고 만다. 두 사람은 한때 ‘대퇴’와 ‘토퇴’를 놓고도 일합을 겨룬 일이 있었다. 대퇴란 김훈의 대학 중퇴를 이르는 말이요, ‘토굴 중퇴’를 줄여 부른 토퇴란 승려 생활 10여 년 만에 환속한 김성동의 이력을 가리킨 표현이다.

 

승려 시절 ‘정각’(正覺)이라는 법명을 지녔던 김성동은 <현대사 아리랑>의 머리말에서 ‘전중거사’(前中居士)라는 자호를 처음으로 쓴 바 있다. 비사란야 거실 바닥에 놓인 ‘홍진장취’(紅塵長醉)라는 글씨 액자에도 이름 앞에 ‘전중’이 표기되어 있다.

 

“왜 내 이력에 ‘전직 승려’가 자꾸 따라다니잖여? 그러다 보니 호를 짓는다면 ‘전중’으로 하면 좋겠다 싶었지. ‘전’은 앞으로 올 시간, 그러니께 새로운 세상을 가리키는 시간 개념이고, ‘중’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는 게 아니라 둥그런 원을 만들자, 살육 없는 세상을 만들자 하는 비원을 담은 거지.”

 

산골의 해는 짧아서 손들이 서울로 돌아갈 시간은 다가오는데, 주인의 말은 하염없이 길어진다. 말이 끊기면 이들이 당장이라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까 두려워하는 듯. 세속이 싫어 들어온 산속이라지만, 이따금씩 오는 손님 말고는 말을 섞을 이웃 하나 없는 처지가 그로서도 견디기 쉽지는 않을 게다. 아쉬운 얼굴로 환송하는 작가를 남겨 둔 채 비사란야를 떠나오는 길. 시 형식으로 쓴 그의 글 <눈 오는 밤>이 머릿속에 맴돈다.

 

“나는 왜 또 이 산 속으로 왔나/(…)/ 한번도 정식으로 살아보지 못한 세상이 그립다 사람들이 보고 싶다/ 배고픈 것보다 무서운 건 외로움이고 외로움보다 더 무서운 건 그리움이다/ 염불처럼 서러워서 나는 또 하늘을 본다 눈이 내린다”


 

 

 

20111217한겨레 최재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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