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6일 캐나다에서 열릴 한-미 정상회담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이 이뤄낸 2012년 4월17일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 합의를 깨고 2015년으로 미룰 것이 거의 확실해 보인다. 이 대통령이 그토록 집착하던 ‘ABR’(Anything But Roh)의 화룡점정이다. 노 대통령의 ‘국방개혁 2020’을 폐기한 것은 오래전 일이고, 이제 한국의 국방체계는 노태우 대통령 시절 수립돼 한국의 자주적 국방대계의 기초가 됐던 1988년 ‘8·18계획’ 정신조차 쓰리기통에 버리고 만 형국이다. 전두환 시대 국방정책으로 돌아가게 돼 있다. 천안함 침몰이라는 안보위기를 겪더니 아예 전작권 연기를 통한 안보포기를 공식화하고 있다.
동인은 정치다. 천안함 사건으로 이 대통령의 안보수행 능력에 불만을 품은 군과 보수세력의 요구를 더이상 외면할 순 없기 때문이란다. 정치에서 중요한 것은 역시 ‘집토끼’라는 판단에서 대통령의 중대한 결단으로 이번 전작권 연기를 포장하고 싶어한단다.
미국은 왜 이 요구를 수용하는가? 손해는 없고 이득은 크다는 타산이다. 한국군에 대한 전작권을 2만5000여명의 현지 주군둔 사령관이 갖는다는 건 한반도의 장래에 대한 결정권을 워싱턴이 법률적으로 쥐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남북한의 정치·군사관계만이 아니라 한국의 대외관계 전반과 국방발전 방향, 나아가 현재와 미래 세대의 가치관 형성에까지 막대한 영향을 준다. 그만큼 우리는 한반도 장래에 대한 구상을 그려보는 것조차 새로운 질곡에 가두게 될 것이다.
워싱턴이 쥐고 흔들 청구서도 간단하지 않다. 작게는 매년 우리 세금으로 지원되는 주한미군 유지비용이 크게 늘어날 것이다. 천안함 침몰 직전인 3월 초와 5월 초 현 정부의 국방정책에 영향력이 있는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은 워싱턴을 방문해 전작권 전환만 연기해준다면 오바마 정부가 주한미군 일부를 언제든 아프가니스탄에 빼 갈 수 있지 않겠느냐고 부추겼다.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미사일방어(MD)체제에 분명하게 참여해 줄 것과 아프가니스탄에 전투병을 보내 피를 흘려줄 것을 요구했다. 실제 정부간 협의에서도 관련 협조 여부에 대한 타진은 이미 진행됐다. 지난 4월12일 핵안보정상회의 때 워싱턴에서 청와대와 백악관은 이미 기본방향을 정했고, 이제 합의문 서명만 남겨둔 상태에서 거래 목록에 대한 미국 쪽의 관심은 커질 것이다. 천안함 침몰사건이 촉매구실을 했다. 천안함 사태를 보며 스스로 모자라고 부족한 부분을 메울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 아예 통째로 더 맡아주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드러누운 꼴이다.
오바마 정권이 전작권 전환 연기에 합의해 주는 배후에는 이명박 정부가 안보를 다루는 태도자체를 신뢰할 수 없다는 점도 한몫했을 것이다. 이명박 정권의 안보당국자들의 입은 하나같이 거칠고 직설적이며, 행동은 늘 무책임하다. 2008년 당시 합참의장 내정자 김태영 장군은 북한의 핵기지를 먼저 공격할 수 있다고 말했다. 2009년 초 이상희 국방장관도 적의 해안포와 장사정포는 공군력을 동원해 궤멸시킬 수 있다는 보고를 두 차례나 청와대에 가서 했을 뿐만 아니라 언론에 유출시켰다. 막상 상황이 벌어지면 속수무책이거나 과도한 대응의 반복이다. 천안함 사태는 속수무책과 과도한 반응, 안보의 정치도구화 등 수많은 문제점을 노출시켰다. 도대체 이명박 정권 때문에 편할 날이 없는 게 한국 국민들만은 아닌 것 같다. 워싱턴은 신경이 더 날카로워졌다. 차라리 전작권을 계속 행사하며 통째로 한반도 안보상황을 관리해주는 게 더 낫겠다는 결론에 도달하지 않았겠는가? 참 비극적이다.
그래서 묻는다. 한나라당의 대선 선두주자 박근혜 전 대표는 전작권 전환 연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단 한번도 그에 대한 입장 표명을 보지 못한 탓이다. 초대 여성 대통령을 꿈꾸는 박 대표는 미래의 대한민국 군의 최고사령관이라는 부담스러운 임무 앞에 전작권 연기 움직임을 이명박 대통령의 여러 정책 가운데 도움되는 딱 한 가지라며 미소 짓는 건 아닌가 걱정된다. 그래서 천안함 침몰 진상규명에 대해서도 묵언으로 일관하는 거라면 지나친 걸까?
박선원 브루킹스연구소 초빙연구원
20100624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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