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지금 종교와 과학을 논의하는가?
종교와 과학은 인류가 오랜 역사 과정에서 환경에 적응하면서 생존율을 높이기 위해 만들어 낸 '메커니즘'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인류의 생존력 강화에 봉사해야 할 과학이라는 메커니즘이 이제는 핵무기나 환경 파괴 등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상황에 이르자, 과학을 제어하기 위한 다른 메커니즘이 필요해지고, 그 역할이 종교에 맡겨진 게 아닌가 싶습니다.
기독교와 과학은 서구 역사 속에서 지식의 주도권을 두고 싸움을 벌여 왔습니다. 누가 지식을 판단하는 최종적인 권위를 갖는가?
어떤 지식이 더 참된 지식인가?
지동설이 기독교가 마주친 제1의 파도였다면, 진화론은 제2의 파도, 정신 분석학은 제3의 파도였고, 인지 과학과 뇌과학은 이제 기독교가 마주치는 제4의 파도가 될 것입니다.
창조 과학이나 지적 설계 운동이 본직적으로 과학 운동이 아닙니다. 종교 운동일 뿐입니다.
종교와 과학은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닙니다. 진화론을 선택하는 순간 신앙이 배제된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기독교 신앙과 진화론을 동일한 영역이나 동일한 수준의 논의로 보는 오류에 빠지는 겁니다.
진화론적 유신론은 진화론을 수용한다는 점에서 유물론적 진화론과 일치하며, 생명의 과정을 설명하는 데 신을 도입한다는 점에서 창조론과 관점을 공유합니다.
진화론적 유신론은 창조 과학을 '종교적 환원주의'로, 유물론적 진화론을 '과학적 환원주의'로 비판합니다.
오늘날 한국 신학계는 '현대 이후(post-modern)'의 신학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한국 교회 대부분은 여전히 '근대 이전(pre-mordern)'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 신재식
종교란 절대 진리의 문제라기보다는 그저 삶의 필요를 채워 주는 일상의 일부가 아닐까 합니다.
과학이 무엇을 밝혀내든 과학적 설명에 소진되지 않는 의미의 영역은 언제나 계속 남아 있을 수 밖에 없을 테니까요.
창조 과학이 무용지물이 되자, 그 대안이 바로 지적 설계론이죠.
- 김윤성
왜 사람들은 그 인과적 효력이 입증되지 않았는데도 그렇게 열심히 기도를 드리는 걸까요. 저는 인간이 뭔가 '이유'를 찾는 동물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봅니다.
과학이 이해하는 종교란?
종교를 인간 마음의 '적응(adaptation)'으로 보는 견해
종교가 다른 인지 적응들의 '부산물(byproduct)' 이라는 견해
종교 현상을 '밈'의 역학으로 보는 견해
종교가 종교인, 신학자, 종교학자만이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초월적 뭔가가 아니라, 과학자의 시선을 필요로 하는 '자연 현상'임을 강조했던 것 같습니다.
과학의 본질은 '내용'이 아니라 '절차' 또는 '방법'
과학에 대한 그 어떤 기준을 들이대도 창조 과학은 과학의 문턱을 넘을 수 없습니다.
핵심을 문제 삼게 되면 태도의 문제로 넘어갈 수밖에 없는 권위주의적 메커니즘이 종교에는 있는 것 같아요.
인간이 만든 인공물이 자율성을 획득하고 통제 불가능한 방향으로 제멋대로 움직이는 것을 역사, 정치, 경제, 가치에 상관없이 종교 밈 자신의 복제를 위한 행동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겁니다. 종교 밈은 인간에는 관심도 없어요. 평화, 사랑, 자비 같은 것에도 관심없죠.
죽음에 대한 태도가 종교의 기원을 판단하는 데 중요한 이유가 영원성 또는 초월성에 대한 인식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어서 아닙니까? 내가 아닌 다른 존재, 지금이 아닌 언젠가, 여기가 아닌 어딘가를 생각할 수 있는 거죠.
왜 우리가 메타포를 갖고 살 수 밖에 없는 존재인가
우리가 어디서 와서,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갈 것인가, 그리고 죽음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들이 왜 종교만의 물음이냐 이거죠.
종교가 지성의 본질은 아니기 때문이죠.
-장대익
☆ 종교전쟁
- 장대익, 신재식, 김윤성 -
싸이언스북스
'기도'와 '기적'을 믿지 않으면서 기도를 하는 까닭은?
세 저자 중 '장대익'교수의 글이 가장 흥미로운 까닭은?
종교와 과학은 아무리 어려운 문구로 풀어 놓아도 영원한 평행선의 관계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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