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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들이길

해수욕 틈새의 그윽한 산책길 _ 삼척

by 오직~ 2009. 7. 9.

 

http://www.hani.co.kr/arti/specialsection/esc_section/364783.html

 

삼척 오십천과 정라항
강원 삼척 오십천변에서 죽서루 지나 정라항까지 6㎞

 

» 삼척 오십천 절벽 위에 앉은 죽서루의 앞면 모습. 2층에 걸린 죽서루(竹西樓), 관동제일루(關東第一樓) 현판은 숙종 때(1710) 삼척부사 이성조의 글씨다.

강원·경북 동해안은 예나 지금이나 가장 선호되는 피서지다. 차고 맑은 바닷물을 품은 크고 작은 해수욕장들이 줄지어 깔렸다. 바다를 즐기되, 아침저녁으로 도심 골목을 걸으며 역사·문화의 향기를 즐길 수 있는 곳으로 간다. 관동팔경 중 제1경으로 꼽는 죽서루의 고장 삼척이다. 도심과 오십천변을 산책한 뒤 횟집 즐비한 정라항까지 걷는다.

 

관동팔경 제1경 놓치면 아깝지

주차장 널찍한 오십천변 동굴엑스포타운에서 시작한다. 삼척은 세계적인 동굴 도시다. 환선굴·대금굴 등 국내 최대·최고의 석회동굴을 거느렸다. 엑스포타운은 2002년 세계동굴축제가 열린 곳이다. 동굴의 형성 과정, 종류 등을 실감나게 전시한 동굴신비관①(입장료 3000원), 세계 각국의 대표적인 동굴들을 체험할 수 있는 동굴탐험관③(2000원)이 있다.

 

삼척시립박물관②도 옆에 있다. 무료. 특별기획전으로 열고 있는 ‘한국의 민화’전(8월 말까지)이 눈길을 끈다.

 

오십천 건너 벼랑 위에 선 죽서루④(보물 213호)가 아름답다. 죽서교를 건너며 바라보니 죽서루 경관을 키워주는 게 따로 있다. 푸른 물빛과 흰 물새들, 물가의 낚시꾼들이다. 1990년대 초까지 죽서루까지 곧바로 건널 수 있는 출렁다리가 있었다. 새 다리가 놓이며 철거됐다.

 

죽서루는 고려시대 처음 건립돼 조선 태종 때 재건된 2층 누각이다. 조선시대 삼척부의 객사였던 진주관의 부속건물로 쓰였고, 묵객들이 찾아들어 읊고 마시던 곳이기도 하다. 2층 누각이면서도 기둥들의 길이를 조절해, 굴곡이 심한 자연 암반 위에 자연스럽게 올라앉은 모습이다. 내부엔 숙종·정조 어제시를 비롯해 이율곡·이승휴 등의 시를 새긴 현판들이 즐비하다. 죽서루 왼쪽 바위 무리에 소원을 빌며 지나면 이뤄진다는, ‘용문’이라 불리는 작은 바위문이 있다.

 

죽서루를 나와 350년 된 회화나무를 보고 돌담을 따라 왼쪽 언덕길로 오른다. 삼장사⑤를 지나면 성북삼거리다. 길 건너 잠시 완만한 언덕길을 올라 실직군왕릉⑥으로 간다. 실직군왕릉은 신라 경순왕의 손자이자 삼척 김씨의 시조인 김위옹의 묘다. 고려 태조가 경순왕의 복속을 받아들이며 실직군왕이란 칭호를 내렸다. 이곳에서 시내 중심에 솟은 봉황산과 오십천 물줄기의 일부가 내려다보인다.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성내동 성당⑦으로 간다. 아리랑고개라 하는 고갯길 옆이다. 옛날 도계·미로·신기 주민들이 이 고개를 넘어 삼척장을 보러 다녔다. 장식이 별로 없는 성당 건물은, 단조로우면서도 절제된 아름다움을 풍긴다.

 

» 삼척 아리랑고개 골목의 서울상회. 간판과 문 등 40년 전 옛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다.

최근 생긴 절 삼산사 밑 골목에서 녹슬고 빛바랜 옛 간판이 그대로 걸린 옛날식 구멍가게를 만났다. 평상에 앉아 캔커피를 사 마시며 잠시 쉰다. 40여년째 한자리를 지켜온 ‘서울상회’⑧다. 주인할머니는 “옛날 골목에 마주 보고 있던 ‘서울한약방’을 본떠 간판을 해달았다”고 말했다. ‘서울상회’는 간판도 문짝도 벽지도 벽에 걸린 온도계도 모두 낡고 닳았다. 찢어진 벽지 한쪽엔 영화배우 문희의 빛바랜 사진이 붙어 있고, 문에는 작은 종이 녹슨 채 매달려 있다.

 

골목길을 내려가 삼척여인숙을 지나자 풍경이 확 달라진다. 갑자기 긴 머리에 짧은 치마, 바지 차림의 젊은이들이 북적인다. 호프집부터 전문식당까지 빼곡하게 들어선 먹자골목이자 패션골목인 ‘대학로’⑨다.

 

우체국 앞 사거리로 나섰다. 깨끗한 거리 모습이 인상적이다. 전깃줄을 땅에 묻고 전신주를 없앴기 때문이다. 개잎갈나무(히말라야시다) 가로수길을 걸어 중앙시장⑩으로 들어선다. 상설시장인 중앙시장은 삼척장날(2·7일)이면 중앙로 주변 골목들을 메운 좌판들과 이어져 대규모 거리장터를 형성한다.

 

중앙로에서 강 쪽으로 걸어 오십천교를 건넌다. 상류 쪽을 보면 죽서루 앞에서 굽이쳐 온 물길이 산줄기를 관통해 내려오고 있는 모습이다. 본디 물길은 산줄기(남산) 너머에서 시내 쪽으로 한 굽이 돌아 흘렀다고 한다. 수해가 잦자 1962년부터 8년 동안 산을 절단해 물줄기를 곧게 돌리는 공사를 벌여 70년 완공했다. 오십천교 건너 황산 숲길 들머리에 이를 알리는 ‘오십천 수로변경 통수 기념비’⑪가 세워져 있다.

 

황산엔 충혼탑과 작은 정자 봉황정⑫이 있다. 계단길을 벗어나 울창한 숲길을 걸어볼 만하다. 황산에서 내려와 오십천 강변길을 따라 걷는다. 철길 밑을 지나면 벚나무 늘어선 산책로가 이어진다. 강 건너 봉황산은 멀어 보이는데, 뻐꾸기 소리는 손에 잡힐 듯 또렷하게 들려온다. 강변길을 나와 길 건너 사직동 성당 뒤의 실직군왕비릉⑬으로 간다. 실직군왕 김위옹 부인의 묘로, 1838년 실직군왕릉과 함께 발굴·확인작업을 거쳐 1937년 함께 정비했다.

 

동양시멘트를 지나면 삼척역⑭이다. 최근 인기를 끄는 바다열차(삼척~동해~강릉)의 시·종착역이다. 바닷가 철길 58㎞를 하루 세번 왕복운행한다. 삼척역 건너편엔 새벽 4시에 열려 오전 9시면 파장하는 번개시장⑮이 있다. 40여년 역사를 지닌, 수산물 중심의 반짝시장이다.

 

» 정라항(삼척항) 횟집 앞에 내걸린 오징어.

정라항 싱싱한 오징어회에 소주 한잔

정라항 가까이에 올라볼 만한 작은 언덕, 육향산이 있다. 조선시대 선정비·불망비 무리와 삼척포진성터 빗돌, 삼척부사였던 미수 허목이 해일의 피해를 막기 위해 세웠다는 척주동해비(16)와 평수토찬비를 만날 수 있다. 선정비 무리의 비석 머릿돌을 눈여겨볼 만하다. 몸체의 글씨는 반듯하나, 머릿돌에 선각으로 새겨진 무늬는 자유분방하고 해학적이다.

 

내려와 정라항 활어회센터로 드니 상큼하고 비릿한 바다 내음이 식욕을 자극한다. 6㎞를 넘게 걸어 허기가 몰려온다. 요즘 오징어가 많이 잡힌다고 한다. 주문하니 1만원에 싱싱한 오징어 7마리를 썰어주었다.

 

» 삼척 오십천과 정라항 (※클릭하시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워킹 쪽지

수도권에서 영동고속도로 타고 대관령 넘어 강릉 지나 동해에서 나가 7번 국도를 이용해 삼척으로 간다. 3시간~3시간30분. 영동고속도로 원주 방향이 정체를 빚을 경우 여주에서 중부내륙고속도로 타고 충주 쪽으로 가다 감곡나들목에서 나가 38번 국도 따라 제천~영월~태백 거쳐 삼척으로 가도 된다. 삼척시내 택시 기본요금은 2200원, 정라항에서 동굴엑스포타운까지 3300원.

남양동 대학로의 정라횟집(033-573-3670)은 사철 도루묵 전문점. 찜·구이를 낸다. 정라항의 향토식당(033-573-5784)에선 가자미회에 칼국수를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정라항 일대엔 숙취해소 해장국으로 이름난 곰치국을 전문으로 내는 식당들이 즐비하다. 삼척시청 관광정책과 (033)570-3846.

삼척=글·사진 이병학 기자

20090702 한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