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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직~ 2008. 12. 4.

 

 

'동무'보다 빨리 달리는 '페허'(廢墟)

 

'폐허'(廢墟)를 다시 떠올린다. 수줍게 다가왔을 때에도 나는 무력했고, 거칠게 떠나갈 때에도 나는 무력하다. 내게 열광할 때에도 나는 무력했고, 내게 냉소할 때에도 나는 무력하다.

인생(人生)이 무덤을 막을 수 없듯이, 인간(人間)이 폐허를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은 어쩌면 상식이지만, 나를 되돌아 곱씹는 일이 한치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무력감은 그 어떤 노을보다 슬프다. 인간의 존재방식이 '오염'이라고 했듯이, 인간이라는 관계방식은 여전히 '폐허'다. 그 폐허가 완벽한 계시라는 사실에 다시 무력해지고, 그 계시 이전의 '자연'이 너무나 자연스러웠다는 사실에 더욱 무력해진다.

인문은 한 치 타인을 포섭하지 못한 채 제 그림자 주위를 실없이 돈다. 볼테르의 생각과는 다르게, 지식은 심오한 방식으로 도덕을 불러오지 못하며, 선의와 계몽은 심오한 방식으로 동무를 불러오지 못한다.

'동무'는 무엇보다도 그 '폐허'를 피하는 길이었지만, 적조했던 동무 셋을 만나 맥주를 마시는 오늘, 다시 동무보다 빨리 달리는 폐허의 속도를 무력하게 바라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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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차르트나 김시습같은 조숙(早熟)도 아니고, 양주동이나 러셀같은 박학(博學)도 아니고, 카프카나 키에르케고어같은 음울(陰鬱)도 아니고, 쇼펜하우어나 비트겐쉬타인같은 명료(明瞭)도 아니고, 니체나 싸르트르같은 탕진(蕩盡)도 아니고, 다빈치나 에디슨같은 창발(創發)도 아니고, 볼테르나 연암(燕巖)같은 명랑(明朗)도 아니고, 사드나 디오게네스같은 음벽기사(淫僻奇事)도 아니고, 스피노자나 이황같은 성실(誠實)도 아니고, 칸트나 마리 퀴리같은 우등(優等)도 아니고, 에라스무스나 쇼같은 풍자(諷刺)도 아니고, 파스칼이나 뉴턴같은 기하(幾何)도 아니잖은가?

이태백이나 폴락같은 주정뱅이도 아니고, 아이소포스나 다윈같은 말더듬이도 아니고, 미켈란젤로나 라파엘로같은 왼손잡이도 아니고, 소크라테스나 카알라일같이 몰인상(沒人相)한 것도 아니고, 에픽테토스나 블레이크같은 땅꼬마도 아니고, 하이네나 바이런같이 방랑벽이 있는 것이 아니고, 도스토예프스키나 몰리에르같이 간질(癎疾)을 앓은 것도 아니잖은가?

대체 무엇이 ‘천재’의 화용을 가능케한 것일까? 그 ‘말’들은 그 어떤 어휘, 그 어떤 동선에 기생할 수 있었던 것일까? ‘말’들은 대체 어떻게 전염되어 재생산되었던 것일까? 착각과 혼란은 어떤 식으로 기념(記念)의 모태가 되는 것일까? ‘말’은 어떻게 실재와 사통(私通)하는 것일까? 나를 이루고 있는 ‘말’들에 대체 무슨 깊이가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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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린다. 내겐 첫 눈이다.

글자들은 동결되었고 연전에 건네받은 홍갈색 음반이 저홀로 운다. 신(神)도 아내도 자식도 새로운 연애의 언약도 없이 행복한 자, 일없이 무람없이 죄없이 행복한 자, 차(茶) 내놓아라 술 가져오느라 소리지를 동무 하나 없이 행복한 자, 시속의 흥체(興替) 너머 천방(天放)한 자, 희망을 손으로 만지며 회색의 저녁 하늘을 웃으면서 건너가는 자, 이 오후 가만히 손을 저어 내게로 오라.

눈 내린다. 내겐 여전한 첫 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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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내내 어떤 슬픔 속에 묻혀 지낸다. 이 슬픔은 기원도 내력도, 심지어 표정도 없으니, 어느새 내 존재는 아무도 기억하지 못했던 그 슬픔 속으로 가만히 내려앉는다. 감미롭고도 낭랑(浪浪)하다. 어떤 종교에서도 어떤 학습 속에서도 없었던 슬픔이며, 어떤 음악에서도 어떤 이별 속에서도 없었던 슬픔이며, 어떤 형이상학에서도 어떤 유행 속에서도 보지 못한 슬픔이다.

진부하지 않은 슬픔의 힘이여, 낮게만 흐르는 내 인생의 결, 지는 싸움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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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certain sadness

All afternoon as long as it could be, I remained in a certain sadness. I could not ask of its origin or history; it even does not have any face. I left myself submerging quietly down into this long-forgotten sadness, sweet and gentle. No religion, nor any lessons of whatsoever taught me such a sadness; none such in any music I ever listened to nor in any parting I ever experienced; I have never sensed such a sadness in any metaphysics nor in any of the fashions.

Thou, the strength of uncommon sadness, the wave of my life that always flows low, and the battle of my life that's supposed to be l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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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의 체를 거치며 이기심은 퇴색한다. 훈화(訓話)로도 제도로도 종교로도 지울 수 없었던 이기심, 계절이 선사하는 인연의 역설로써 지운다. 가을 밤과 감을 향했던 은미(隱微)한 욕심도 그 과실의 말라비틀어진 껍질과 더불어 지운다.

감과 밤과 더불어 배운 것이라? '의욕없는 욕심'이 죽어야 '욕심없는 의욕'이 살아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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찔레꽃이 스믈스믈 지는 모습에 그만 아이처럼 슬퍼진다. 소박하며 성글성글하고 아름답고 슬픈 이 서민의 국화(國花)가 없는 세상을 어떻게 견디나? 아아, 찔레꽃이 없는 6월도 봄은 봄인가? 내가 오래 독애(篤愛)하는 천변로를 가로지르면서 마지막 찔레를 눈 속에, 가슴 속에, 추억 속에, 꿈 속에, 그리고 다시 돌아올 미래의 봄 속에 고이 담는다. 찔레여, 찔레여, 내가 죽어 흙먼지로 날릴 때에도 이 슬픈 지상을 달랠 찔레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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