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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

이름없는, 그들의 이름도 시가 되다 / 고은..

by 오직~ 2007. 12. 2.

 

“살아서 다시 내가 시를 쓸 수 있다면 그것은 우리 민족의 삶을 위한 싸움의 서사시 외에 우리 민족 구성원 하나하나의 삶에 대한 한없는 사랑을 그들의 선악을 막론하고 그려 내겠다는 구상 자체만으로도 황홀한 시간이었다.”

 

“저는 기억의 노예이기도 하고 기록의 노예이기도 하죠. 여러 분야에 걸쳐 있는 인물들을 찾아내야 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자기화시키려다 보니까 시간이 필요하게 됩니다.”

 

<만인보> 대장정의 마무리를 앞두고 있는 고은 시인을 지난 21일 만났다. 서울대 기초교육원 2층 초빙교수실에서였다. 시인은 지난 학기부터 이 학교에서 일주일에 한 번 세 시간씩 ‘고은의 지평선’이라는 제목의 교양 강의를 하고 있다. 수강생은 110명. 이날의 강의 주제는 지중해였다. 강의 초입에 시인은 “상상력은 우리를 구원할 최후의 언어”라고 말했다. 다음주가 종강이다. <만인보> 역시 끝이 보인다. 마지막 네 권의 초고 원고는 이미 출판사에 넘어가 있다.

 

“1980년에 감옥에서 구상했고 80년대 중반부터 내기 시작했으니까 늦어도 90년대까지는 끝냈어야 했는데, 제가 좀 해찰을 부리기도 했죠. 그렇지만 지나고 보니까 이렇게 시간을 가지고 쓰는 게 더 좋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같은 인물과 사건이라도 그때와는 좀 다른 눈으로 보게 되는 이점이 있어요. 문학에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개입하는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저는 10대 천재에게 더는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습니다.”

 

그 역시 ‘조숙한 천재’였던 시절이 있었다. 전쟁의 참상을 지켜보며 공포와 허무에 몸부림치던 시인은 몇 차례의 자살 기도와 출가 및 환속을 거쳤으며 아직 승복을 입고 있던 1958년에 등단했다. 그러니까 내년이면 등단 50주년이 된다. 특별한 계획이 있을까?

 

“제 어릴 적 꿈이 화가였어요. 전쟁 때문에 망가졌죠. 내년에는 다른 것보다 잃었던 화가의 꿈을 되찾아 보고 싶어요. 유화와 글씨 작업을 해서 인사동에서 전람회를 하려고 합니다. 추상의 극한으로 가기에는 너무 늦었고, 구상으로 가자니 그도 마땅찮고, 아마도 반추상 쪽이 되지 않을까요?”

 

그는 또한 <만인보> 이후의 또 다른 대작 시 구상 역시 털어놓았다.

“이번에는 형이상학적 세계를 다루려 합니다. 고대 아시아 사상과 데리다를 비롯한 현대 서구철학을 커다란 냄비에 넣고 같이 끓여 볼까 싶어요. 장시인데, 괴테의 <파우스트> 형이 될지 어떨지 지금으로서는 모르겠어요. 나는 언제나 계획을 배반하게 되니까. 운명으로서의 자동기술을 나는 아주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그가 창립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민족문학작가회의가 다음주말 정기총회에서 명칭 변경을 추진하고 있는 데 대한 생각을 물었다.

“다수의 의견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겠죠. 민족은 물론 100년 뒤에는 없어져야 할 가치입니다. 그러나 그 이전에는 추억으로서라도 가지고 있어야 해요. 그 추억을 문학이 저버리면 안 됩니다. 내 등짝에 찍힌 ‘민족’이라는 화인, 70~80년대에 나를 달군 형벌이자 화인인 민족을 제가 어찌 버리겠습니까? 죽은 민족일지라도 저는 그걸 지게에 지고, 그 위에 진달래꽃 하나 꽂고 산을 내려가고 싶어요. 물론 민족이 근대의 절실성에 의해 조작됐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민족이 우리에게는 숨쉴 공간이었어요. 민족이라는 이 비과학을 과학화해야죠. 선언하건대 나는 민족의 막내아들이자 세계의 고아입니다.”

 

...

“술 먹은 박용래가/ 대전 유성온천 냇둑/ 술 먹은 고은에게 물었다// 은이 자네는/저 냇물이 다 술이기 바라지? 공연스레 호방하지?/ 나는 안 그려/ 나는 저 냇물이 그냥 냇물이기를 바라고/ 술이 그냥 술이기를 바라네”

박용래에게 은근히 ‘한 방 맞은’ 고은은 위악적으로 킬킬 웃어대며 냇물에 돌 하나를 던진다. 그 바람에 냇둑의 새가 놀라서 날아가 버린다. 눈물의 시인은 그런 고은을 보며 울다가는 토하고 토하다가는 꾸짖는다. “은이는 나뻐/ 은이는 나뻐// 박용래가 울었다 고은은 앞서가며 울지 않았다”

...

<세 일초>(25권)라는 작품에서는 “나는 너”이고 “네가 나”인 것을 넘어 아예 “내가 누구면 뭘 하니 누구 아니면 뭘 하니”로 나아감으로써 일체분별을 여의는 깨달음의 경지를 노래하고 있기도 하다.

...

 

20071201한겨레 최재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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