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상하는 꽃길 따라 - 문인들의 봄편지
남도(南島)의 봄소식을 전해야 하는데, 냉탕에 들어앉아 온탕에 대해 설명해야 하는 것만큼이나 곤혹스러웠습니다.
겨울 마지막 날인 지난 2월 말일, 저는 겨울 다 끝난 줄 알았습니다. 수면은 유리알처럼 맑았고 날은 포근하기 그지없었죠. ‘그래, 이런 세상이 있었지. 이제 북서계절풍의 독한 추위는 아홉 달 뒤에나 만나게 되겠어.’ 혼자 중얼거리기도 했는데 그러나 웬걸. 기다리는 것은 더디 오는 법이라죠. 일단 왔다가도 뭔가 잊었다는 투로 되돌아서기도 한다죠?
다시 슬슬 추워지더니 며칠 전부터는 제기랄, 초속 25미터의 강풍이 불어 닥쳤습니다. 허공을 찢으며 미친바람이 불었습니다. 올 겨울 처음 눈보라를 본 날이니 말 다했죠. 해장죽 잔뜩 허리 휘고 동백꽃 우수수 떨어졌으며 구실잣밤나무 가지는 뚝뚝 분질러지고 내가 사는 거처의 지붕도 다 벗겨져버렸지 뭡니까. 동박새나 고양이나 갯바위에 기대 살고 있는 게고동처럼 저도 몸 잔뜩 낮춰 바람 지나가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섬의 겨울은 혹독합니다.
육지에서 불어오는 북서풍은 차갑기 그지없어, 바다는 하얗게 보푸라기가 일고 사람들의 눈은 가늘어져 주름 더욱 깊어집니다. 새는 입 다물고 사람들 마음까지 얼어붙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몇몇 사람이 섬 떠나 육지로 갔습니다. 차가운 바람 불어오는 곳으로 이동을 할 만큼 이곳은, 쓸쓸하고 거친 곳입니다.
섬에서 겨울을 나보면 바다는 인간의 편의를 봐주지 않는 거대한 정복자 같습니다. 사람은 참나무 침대 옹이에 붙어먹고 사는 벌레 같은 존재가 되어버립니다. 눈치 살피며 조금씩 움직이다가 여차하면 구멍에 박혀 시간을 보내는 그런 존재 말입니다.
그러다가 오늘 마침내 기분 풀어진 주인처럼 날은 인자스러워졌습니다. 드디어 봄입니다. 저는, 비록 흰머리 늘고 신발은 더 닳았으나 또 한 번의 겨울을 견뎌낸 것입니다. 다들 안녕, 안녕. 제가 뿜어낸 흰 입김이 잘 도착했는지 모르겠습니다.
한바탕 몸살을 견뎌낸 이에게만 봄은 찾아온다는 말이 맞기는 하겠습니다. 광포하게 머리카락 휘날리던 바다도 잠잠해지고 몇 뼘 섬의 영토는 햇살을 받아 빛납니다. 그러니까 하루아침에 봄입니다. 봄은 엄습하는 버릇이 있다죠?
이곳의 봄은 쑥 뜯는 노인들 손에 먼저 옵니다. 봄이 삼백 리 바깥에서 살짝 윙크 할 때부터 주민들은 쑥을 뜯기 시작해서, 지금이 이른바 성수기입니다. 쑥은 배 없는 사람들에게는 이 계절 유일한 벌이 수단이기도 합니다. 예전에 온갖 작물 심었던 밭은 모두 쑥밭으로 바뀌어 있습니다. 다른 것은 일체 심지 않고 그물 덮어 관리하기까지 합니다. 해풍 맞은 쑥은 약효가 좋다지요. 드십시오. 남도의 기운이 몸 풀고 우러날 겁니다.
여든아홉의 할머니는 오늘도 떡 두 조각으로 점심 때우며 쑥 다섯 관을 뜯어 손질했습니다. 저번 주까지는 한 관에 팔천 원씩 했는데 이번에는 더 떨어진다고 합니다. 육천 원으로 치면 육오 삼십. 경비 제하고 이만오천 원 정도를 버신 것입니다.
광포하게 머리카락 휘날리던 바다도 잠잠해지고
봄은 통학선 타고 등교하는 중학생들의 느린 걸음에도 단단히 달라붙습니다. 섬이야 모든 길이 급한 각도로 만들어져 있기는 하지만 책가방 늘어진 채 터벅터벅 올라가는 폼이, 땅은 잡아당기고 봄 햇살은 무겁다는 투입니다.
햇살 덕분에 사람들 얼굴이 펴지기 시작합니다. 마을에는 유난히 햇살 잘 드는 곳이 있고 밑밥에 생선 꼬이듯, 사람들은 그곳으로 모입니다.
빗질도 안한 사내들이 운동화 구부려 신고 삼삼오오 쪼그려 앉거나 벽에 기대어 있는 그 들은, 여유나 심지어는 권태의 한 얼굴처럼 보이지만 사실, 정보 교환과 탐색 중인 것입니다. 그곳에서 사내들은 어제 누가 어디에서 무엇을 몇 마리 잡았나, 하는 정보를 주고받습니다. 오늘 드디어 삼치가 물기 시작했다는 말이 돌았습니다. 그러자 다들 서둘러 채비 한 다음 우당탕탕 배 몰고 나갔죠. 봄 햇살은 골수에 박힌 무력감마저도 알뜰히 거둬 갑니다.
저도 모처럼, 햇살 따스한 곳에서 해바라기를 합니다. 사내 떠난 곳에 아낙들이 모입니다. 그곳에서 어제 밤 열두시에 들어온 남편이 누구누구와 어느 술집에서 마셨는지를 듣습니다. 기분 내느라 남편이 술값을 ‘쐈다’는, 눈 캄캄해지고 가슴 찢어지는 고급 정보도 듣게 됩니다. 다툴까요? 빈손으로 돌아오면 한바탕 풍랑이 일겠지만 삼치 열 마리만 낚아오면 우리가 왜? 이럴 겁니다. 서방 각시 숟가락 위에 서로 삼치회 올려주는 게 그 집 저녁 밥상 풍경이 되지요. 다음날은 기름기가 올라 얼굴이 뽀얀해지고요.
봄은 사람들 신발 옆으로도 찾아옵니다. 산에 오르다보니 야생 달래가 파릇파릇 살이 올라 있습니다. 이것 캐다가 무쳐 씹으면, 아 글쎄, 봄은 이빨 사이에서 웃습니다. 그러고 보니 변화는 일제히 일어납니다. 매화 진 자리에 수선화가 피고, 유채가 피고, 보리가 패기 시작하고, 개부랄 꽃이 피고, 염소도 기름기가 돌고 동박새가 쪼롱쪼롱 울어댑니다. 동박새 우는 것을 듣고 있자면 저 녀석은 나르시스트 아닐까, 생각됩니다. 워낙 구역 개념이 확실한 녀석이라 경고로 우는 것이지만 아름다운 제 목소리를 들으려고 계속 울지 않을까 싶어지니까요.
땅에 봄이 왔는데, 갯바위라고 다르겠습니까.
겨우내 자란 톳이 치렁치렁한 몸을 드러내고 미역도 훌쩍 자랐습니다. 톳은 채취권을 산 사람이 따로 있어 그림의 떡입니다. 대신 썰물 때 갯바위에 가서 생미역을 좀 따 왔습니다. 생미역은 끓는 물에 데친 다음 문질러 씻어 초고추장이나 장국에 찍어 먹습니다. 바다의 봄 냄새가 입 안 가득 넘칩니다. (아, 우리 마을 부녀회에서 이 편지 읽으면 안 됩니다. 부녀회에서는 일정 기간을 정해 미역 채취를 동시에 시작하는데 아직 그 시기가 안 되었거든요). 아무튼, 그러고 보니 봄이 결국 머무는 곳은 입이군요.
겨우내 깊은 바다로 나갔던 군소도 돌아왔습니다. 무쳐 놓으면 술안주로 딱입니다. 기다리면 올 것은 오는군요. 견디느냐 못 견디느냐의 차이뿐이겠죠. 봄내음 가득하고 어선 엔진소리 활기찬 여기는 전라남도 여수시 삼산면 거문도입니다.
한창훈 20070316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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