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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셀의 경고 - 임석규

by 오직~ 2014. 4. 28.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634671.html

 

 

 

 

 

“사람들이 자신의 편견에 아첨하지 않는 신문은 사서 보지도 않는다. 따라서 그들이 얻는 지식이라고는 자신의 편견과 격정을 확증해주는 지식뿐이다.” 버트런드 러셀이 이렇게 혀를 찼던 건 1932년이었다. 정보의 편식이 사안의 온당한 처리를 가로막는다는 경고였다. 러셀은 이 문제를 민주주의의 난제 중 하나로 꼽았다.

정보의 편식으로 치자면 요즘이 그때보다 훨씬 더할 거다. 원하는 정보만 쏙쏙 골라주는 세상이니 말이다. 페이스북과 구글 등은 개인의 취향과 관심사는 물론 정치 성향까지 꼼꼼히 분석해 ‘맞춤형 정보’를 제공한다. 맞춤 정보 서비스에 개인의 생각이 제한되는 현상을 일라이 패리서는 ‘필터버블’(filter bubble)이라고 이름붙였다. 필터버블에 의해 사람들은 점점 편협한 정보의 울타리에 갇히게 된다.

 

‘필터버블 방지용’ 서비스도 있다. 익명 검색엔진 ‘덕덕고’(DuckDuckGo)다. 덕덕고는 개인의 검색 정보를 저장하지 않는다. 생각을 거르는 필터가 없는 셈이다. 에드워드 스노든이 미국 국가안보국(NSA)의 정보수집과 감시 행태를 폭로한 이후 덕덕고 이용자가 2배로 급증했다고 한다.

 

일간베스트 저장소, 디시인사이드, 트위터 등에 올라온 세월호 관련 악성 게시글 57건에 대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삭제 등 제재를 결정했다. 그래도 디지털 공간에서 세월호 침몰사고를 비틀고 비방하는 글이 넘쳐난다. 이런 글에 대한 수요가 있다는 얘기다.

 

디지털 세상은 더는 자유로운 소통의 공간이 아니다. 오히려 끼리끼리 뭉치는 인간의 습성을 더욱 자극한다. 성향이 비슷한 사람을 추천해주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싫은 소리 하는 사람은 관계망에서 차단해버리면 그만이다. 반대쪽 목소리, 다른 생각들과 조우하는 불편함을 감수하지 않을 때 토론과 소통은 요원해진다. 역지사지해볼 일이다. 정보의 편식이 편견의 확대로 이어져 민주주의가 위협받는다는 러셀의 경고는 아직 유통기한이 지나지 않았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