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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Straight to The Heart (가슴을 향하여)- Sina Vodjani

by 오직~ 2013. 2. 8.

 

 

 

동서양의 음악의 大使 Sina Vodjani :

프랑스인 어머니와 페르시아인 아버지 사이에 태어난

시나 보드쟈니는 이란태생의 작곡가이자 연주자입니다

뜻하지 않은 신비적 체험을 하게된 후로 여러 종교의 聖典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靈感의 원천에 대한 호기심으로 여러나라를
방문하기도 했는데 인도, 네팔, 티벳트와 이란을 방문한 경험은
그의 예술전반과 음악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되었답니다
중국의 기공, 인도의 요가는 물론, 무당의 제식에까지
해박한 지식을 쌓게 되었고 이러한 지식들이 그가 만들어내는
음악에 녹아 내리는데 어떤 앨범은 예언자 조로아스터의 가르침에
감흥을 받아 이란으로의 여정을 따라 작곡하게 된 곡들이기도 하답니다

Straight to the heart, 이 곡도 리듬과 멜로디를 듣다보면
고적한 선방에서 쏟아지는 빗줄기를 하염없이 바라보는 듯 하다가

사막을 걸어가는 낙타의 율동이 느껴지기도 하고
석양을 받고 사막의 등성이를 넘으니

갑자기 좌~악 펼쳐지는 도시의 불빛을 보는 것 같기도 했다가
다시 승려의 독경으로 돌아오기도 했다가...
도도하게 흐르는 삶이라는 강물의 흐름을 연상도 했다가...
다양하고 지루할 겨를이 없는 매력있고 흥미로운 음악입니다.

음악평론가들은 그의 음악을 전통 동양음악에 서구의 현대적인 세련된 리듬과
불교승의 독경소리를 결합시킨 독특한 범세계적인 음을 창조했다고
동양과 서양간의 음악의 대사라는 칭호를 붙였습니다.

Sina Vodjani는 음악인일 뿐 아니라
전문 사진작가이자 화가이기도 해서 파리, 함부르그 외
독일 여러도시에서 개인전을 갖기도...

 

 

 

 

90년대 초 입적한 16대 카르마파의 환생자인
카규파의 스승 17대 기얄와 카르마파는 달라이 라마의
뒤를 잇는 티베트 불교의 지도자로서 주목받고 있다.


16대 카르마파 음반 이후 환생자인 17대 카르마파를 위한
음악 작업을 꿈꿔왔던 독일의 음악가 시나 보드자니는
우여곡절 끝에 (카르마파가 2000년 티베트를 떠나 히말라야를 넘어
인도로 수행처를 옮기기 전)티베트 현지의 카규파의 본산
출푸 사원을 방문하여 카르마파와 극적으로 만날 수 있었고
이 작품을 만들 수 있었다.


티베트의 지도자 제17대 카르마파가 대중 앞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달라이라마를 부정하라”는 중국의 압력을 피해 인도로 망명한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카르마파는 3월 29일부터 30일까지
티베트 라마 춤의 발생 성지인 인도북부의 타시종을 순례했다.

중국의 암살 위협으로 외출이 자유롭지 않은 카르마파가
타시종에 온 가장 큰 목적은 타시종의 큰 스승 중 한 분인
암틴 라마를 친견하기 위해서이다.

카르마파는 티베트에 불교를 전하고 완성한 위대한 성자 파드마삼바바를 기리는
축제에 동참해 라마 춤을 관람했다.

그는 암틴 라마를 비롯해 뗀진 빨모 스님의 환생 스승인
제9대 캄툴 린포체와 타시종에서 수행하고 있는 여러
린포체들에게 가피와 축복을 내렸다.

지난 해 법보신문과의 특별 인터뷰에서 한국 불교에 대한 관심과
포교 의지를 밝힌 카르마파는 타시종에서 티베트 수행에
진력하고 있는 한국 비구니 스님들에게 특별히 수행에 대해
질문하는가 하면 올 2월 다람살라를 방문해 달라이라마에 법을
청한 14명의 한국 비구니 스님들에 대한 안부를 챙기기도 했다.

이번에 처음으로 타시종을 방문한 카르마파가 자유롭게
티베트 불교 성지를 순례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카규파의 최고 지도자…5세 때 출가
지난 85년 동부 티베트 지역의 유목민 가정에서
출생한 제17대 카르마파는 5세 때 출가했다.

카르마파가 세인의 이목을 끈 것은 2000년 1월 5일,
세계의 유력 언론들이 '만 14세인 그가 새 천년이
시작되기 사흘 전 소수의 수행원과 함께 중국의
통치를 받고 있는 티베트를 탈출해 히말라야를 넘어
다람살라에 무사히 도착했다.'고 보도 하면서 부터다.

티베트를 벗어나기 전 카르마파는 중국 정부에 의해
티베트 불교 4대 종파 중 하나인 카규파의 최고 지도자로
추대됐으며 달라이라마 역시 그를 17대 카르마파로 인정했다.

카르마파는 최고 지도자임에도 중국 정부의 강력한 압력에 시달려야 했다.

중국 정부는 그에게 인도 다람살라에 티베트 망명정부를 설립한 '달라이라마를
비판할 것'을 계속 주문했다.

중국의 요구를 거부해 온 카르마파는 결국 티베트를 뒤로했고 망명 이후 달라이라마의 배려로

다람살라 남부에 있는 ‘규토 모나스트리’에 머물게 되었다.

인도 정부는 그가 불교 성지 순례와 티베탄 불교 행사에 참여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으며

카르마파가 머물고 있는 사원에 30여 명의 경찰을 상주시켜 중국의 암살이나 납치 등에 철저히

대비하고 있다.

15∼6세기 경 카규파를 크게 중흥시킨 초대 카르마파는

달라이라마와 또 하나의 종파인 겔룩파에 의해 밀려나기 전까지 350여 년 간
티베트 불교를 이끈 최고의 스승이었다.

 

 

 

 

*Y-Club*

 

 

출처 : 양재클럽(Y-Club)
글쓴이 : null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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