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63230.html
1950년 7월, 저 구덩이에서 200여명의 모슬포 양민들이 대한민국 군인과 경찰의 총에 맞아 묻혔다.
박정희는 1961년 5·16 군사쿠데타로 나라를 국민들로부터 빼앗은 뒤 이 백조일손지묘 묘비를 깨부수었다.
1950년 10월부터 12월 사이에 신천군 인구의 4분의 1에 달하는 3만5000명이 학살당했다. 북의 안내원은 미군이 그랬다고 설명했지만 소설가황석영은 북 인민정권에 박해받던 지주와 기독교 개신교인들이 그런 거라 했다. 미군이 북상하기 직전 황해도 일대에서 인민군이 후퇴한 권력의 공백상태를 틈타, 우파 사람들이 소작인이나 북 정권에 가까운 주민들에게 대대적인 보복을 한 거라 했다.
'we' 카테고리의 다른 글
18대 대통령 선거 (0) | 2012.12.08 |
---|---|
김지하의 변신 혹은 변절 - 김동춘 (0) | 2012.12.06 |
유신공주는 양공주 문제엔 관심이 없었다 - 한홍구 (0) | 2012.12.06 |
지금 접촉하고 있는 사람 - 정희진 (0) | 2012.11.03 |
3번 시다와 5번 미싱의 이름은 무엇이었나 - 한홍구 (0) | 2012.11.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