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석달 동안 <한겨레>에서 나는 원자력 이야기만을 써왔다. 이번에도 그럴 수밖에 없다. 지금도 후쿠시마에는 방사능이 대량 유출되고 있지만, 놀랍게도 이 엄중한 사태를 장기적 안목에서 포괄적·심층적인 보도와 분석을 하고 있는 매스컴은 거의 없다. 사고 초기에 잠깐 부산한 움직임이 있었을 뿐, 어느새 시들해져 버렸다. 언론이 다루지 않으면 사람들은 무슨 일이 있는지 모르고 관심도 없다.
정말 이래도 될까. 이 묵시록적인 사태에 이토록 무신경·무관심할 수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짐작건대 원자력 홍보기관에 의한 대언론 로비가 매우 치열했을 것이다. 오늘날 매스컴이란 결국은 영리를 추구하는 조직이다. 따라서 막강한 광고주의 영향력을 벗어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원자력에 관한 한 언론 자신이 이 문제를 제대로 다룰 만한 능력과 지식을 갖추고 있는지도 심히 의심스럽다. 지금 젊은 기자들은 어렸을 적부터 원자력이라면 깨끗하고 값싼 에너지라는 구호를 끊임없이 듣고 자란 세대이다. 그게 국내외에 걸친 막강한 이권세력이 꾸며낸 완전한 거짓말이며 속임수라는 것을 깨우쳐주는 비판적 언론을 접할 기회도 거의 없었다. 내용을 모르면 문제의식 자체가 생겨나지 않는다. 서글픈 일이지만, 이게 지금 한국 언론의 다수 현역기자들의 실상인지 모른다.
하기는 나 자신도 마찬가지다. 후쿠시마 사태의 추이를 불안하게 지켜보며, 지금까지 끊임없이 자료를 읽고 인터넷을 뒤적이면서, 내가 그동안 너무 무지했다는 자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30년 전 오스트레일리아(호주) 출신 의사이자 세계적 반핵운동가인 헬렌 칼디콧의 책 <원자력 광기>를 처음 접하고 큰 충격을 받은 이후, 나는 핵관련 자료를 꽤 읽었고, 새로 눈을 떴다고 생각했다. 그때 내린 결론은 이 세계에 핵이 존재하는 한, 설사 핵전쟁이 없다고 해도, 잠재적인 핵위협 그 자체에 의한 공포와 불안 때문에 인간의 삶은 근본적으로 허무주의라는 질병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소련이 붕괴하고 냉전시대가 종결되면서 핵전쟁의 위협이 크게 완화되었다고 생각하자 어느새 관심이 엷어져 버렸다. 나는 원자력발전이 핵무기산업과 일란성 쌍둥이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 인간의 터무니없는 교만과 어리석음이 만들어낸 가장 흉측한 괴물이 ‘평화산업’을 참칭하며 계속 확장되고 있는 현실에 둔감했던 것이다. 후쿠시마 사태는 그런 무지몽매 속에 빠져 있던 내게 엄청난 충격이었다. 부끄럽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부끄러움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다. 지금 후쿠시마 사람들이 직면한 비통한 현실은 형언할 수가 없다. 무고한 백성들이 하루아침에 정든 고향과 삶터를 잃고, 낯선 도시의 친척집과 피난소를 기웃거리며 기약없이 방황하고 있다. 피난을 못 간 이들은 극도의 불안 속에 장차 아이들에게 닥칠 불행과 비극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 후쿠시마만의 풍경이 아니다. 일본 전역에서 사람들은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 게다가 양심적인 방사능 과학자들의 예측대로라면 조만간 일본 땅 대부분이 인간이 건강하게 살 수 없는 오염지역이 될지 모른다. 그러면 대체 뭘 먹고 살며, 아이들을 어떻게 낳아 키울 것인가.
가증스럽게도 아직 ‘엘리트’들은 반성할 줄 모른다. 최초에 원자력 도입을 주도했던 나카소네 전 총리의 반응이 대표적이다. 그는 이번 사태에 대해 ‘유감천만’이라고 남의 말 하듯이 하고는, ‘세계의 공공재’인 원자력 진흥이 계속 필요하다는 망언을 내뱉었다. 온전한 인간정신과 절대로 양립할 수 없는 악마의 기술, 그게 원자력의 본질이다.
20110623한겨레 김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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