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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탈원전’ 감정과 국가주의 - 서경식

by 오직~ 2011. 6. 5.

 

디아스포라의 눈

 


원전 추진파만 출연시켰던 일본 대형 매체들이 여론의 흐름 따라 방향을 틀었다. “세상이 이렇게 흘러가니까”라는 딱지가 붙자 탈원전 주장이 쉬워졌다. 대형 매체들이 ‘공기를 읽고’ 있는 것이다.

 

 

열흘 전쯤 토요일에 학생들을 인솔해서 사이타마현 히가시마쓰야마시의 마루키 미술관에 갔다. 녹색 천지의 전원지대에 있는 그 소박한 미술관에는 마루키 이리, 도시 부부의 <원폭도> 연작이 상설전시돼 있다.

 

1945년 8월6일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됐을 때 일본 정부는 정보를 통제하며 ‘신형폭탄 투하’라고만 했다. 도쿄에 있던 히로시마 출신 일본 화가 마루키 이리는 고향이 어떻게 됐는지 살펴보려고 그 사흘 뒤 현지에 들어갔다. 거기서 그가 본 것은 상상을 절한다고밖에 할 수 없는 참상이었다. 아내 도시도 1주일 뒤 히로시마에 들어가 부부가 함께 구조활동에 나섰다.

 

이 결정적인 체험을 5년에 걸쳐 공동제작으로 그린 대작이 <원폭도 제1부 유령>이다. 이것이 <원폭도> 연작의 시작이었다. 일본 근대미술은 기본적으로 장식적인 주제만을 다뤘다. 국가의 비호 아래 전쟁의식을 고양시키는 선전화는 많지만 전쟁의 잔혹성이나 비참을 그린 작품은 거의 없다. 그중에서 마루키 부부의 <원폭도>는 매우 예외적인 존재다. <무지개>에서는 아군의 원폭으로 죽어간 미군 포로를, <까마귀>에서는 조선인 피폭자들을 그렸다. 하지만 <원폭도>는 정권 쪽에서는 물론 미술계 주류 쪽에서도 늘 소외당했다.

 

그날 마루키 미술관에서는 후쿠시마 원전사고 현장을 취재하고 있는 프리랜스 저널리스트 도요다 나오미 씨의 강연회도 열렸다. 도요다씨는 애초 원전 추진파 내지 용인파만 출연시켰던 대형 매체들이 요즘 탈원전으로 방향전환을 하고 있는 듯 보이는 이유는 여론의 큰 흐름이 4월 중순 무렵부터 탈원전 쪽으로 기울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세상이 이렇게 흘러가니까”라는 딱지가 붙기만 하면 탈원전을 주장하기도 쉽고 스폰서도 붙는다. 즉 대형 매체들은 “공기를 읽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다시 ‘공기’가 다른 방향으로 흐르면 보도도 그 방향으로 눈사태처럼 우르르 휩쓸려간다는 것이다. 그 눈사태에 맞서는 이는 언제나 도요다씨 같은 소수 프리랜서들밖에 없다.

 

평소엔 접할 수 없는 현장 얘기를 들은 뒤 <원폭도>를 마주한 학생들은 별로 말이 없었다. 그저 피곤해졌기 때문일까, 아니면 당장은 소화할 수 없는 무거운 질문을 마음 깊이 새기고 있기 때문일까, 아직은 모르겠다.

 

미술관을 떠날 때 주차장 구석 풀밭에 있는 비석 하나가 눈에 띄었다. 미술관 사람에게 물어보니 1923년 간토(관동) 대지진 때 이곳에서도 조선인 학살 사건이 일어났고, 그것을 기억하며 두 번 다시 되풀이하지 말자는 뜻에서 세운 것이라고 한다. 나는 또 물어봤다. “현이나 시에서 세운 겁니까?” 직원은 고개를 흔들며 “아니요. 마루키 부부가 사비를 들여 세운 겁니다. 지역 마을사람들은 어두운 과거를 들쑤시지 말라며 반발했다고 들었습니다.” 그 비석도 마루키 부부가 ‘공기’에 맞서며 세운 것이었다.

 

정치사상학자 마루야마 마사오는 패전 뒤 발표한 논문에서 일본 군국주의자가 전쟁책임을 추궁당할 때 동원한 수사의 특징으로 다음 두 가지를 들었다. 하나는, ‘기정사실에 대한 굴복’ 즉, “그때는 이미 그런 흐름이 형성돼 있었다. 개인이 뭘 해봤자 흐름을 바꿀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는 것. ‘공기’나 ‘대세’에 따르도록 길들여진 심성이다. 또 하나는, ‘권한으로의 도피’, 즉 “내게는 그럴 권한이 없었다. 그런 권한은 나보다 윗(또는 아랫) 사람에게 있었다”는 변명이다. 이런 심성이 ‘무책임의 체계’를 만들어내 진흙탕에 빠진 전쟁을 그만둘 수가 없었다. 이 마루야마의 논리는 전후의 일본 지식층에게 크게 어필했다. 그로부터 66년. 지금도 일본 정부, 관료, 기업, 대중매체 모두에게 마루야마의 분석은 딱 들어맞는다. ‘공기’만 읽고 있다가 원전사고와 방사능 오염 재앙을 자국민과 이웃에게 안겨주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또다시 저 전쟁과 같은 재앙까지 불러들이지나 않을지.

 

‘공기를 읽고’, 시류에 편승하는 데 능한 자들이 포퓰리스트다. 오사카부(府)의 하시모토 도루 지사는 4월의 지방선거를 앞두고 재빨리 탈원전 의향을 표명했으나, 그의 개인정당인 ‘오사카 유신회’가 선거에 승리해 부의회 다수를 점하자마자 학교 행사에서 ‘기미가요’를 제창할 때 기립하지 않는 교사들을 처벌하는 조례를 제안했다. 교사도 공무원인 이상 기립을 거부하는 건 복무규정 위반이다, 그럼에도 처벌하지 않는 것은 공무원들 버릇을 잘못 들이는 일이다라는 게 지사의 주장이다. 일반 시민의 막연한 반관료 감정이라는 ‘공기’를 읽어낸 것이다.

 


헌법에 보장돼 있는 사상·신념의 자유도, 침략의 역사에 대한 성찰도, 아시아 피해민족들의 감정에 대한 배려도, 그리고 무엇보다 오사카부에 일본에서 가장 많은 재일조선인들이 시민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도 하시모토 지사는 개의치 않았다. 하시모토 지사에게 갈채를 보내는 시민 중에는 비교적 젊은 층이 많다고 들었다. 지진 뒤의 사회적 혼란이 계속되고 정치가와 관료가 무능과 무책임을 속속들이 드러내는 가운데 일반 국민은 점점 짜증을 내고 있다. 핀란드 등 유럽에서는 포퓰리즘 우익이 중간층의 반이민 감정이라는 흐름에 편승해 대두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탈원전 감정과 국가주의가 일정한 조건 아래 결합할 수도 있다. 불길한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일본의 지식인, 미디어, 일반 시민 등이 이번에는 이 ‘흐름’에 저항할 수 있을까? 아니면 이번에도 또다시?

서경식/도쿄경제대 교수 번역 한승동 논설위원

 

20110604한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