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값이 치솟자 정부가 내놓는 대책이란 게 또 에너지절약운동이다. 물론 원유가격이 지금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가고 있는 것은 아랍권을 휩쓸고 있는 민중봉기의 영향이 크다. 그러니까 석유 공급 문제는 이 지역의 상황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한국 경제가 감당하기 힘들 만큼 석유값이 오른다 해도 그것은 일시적인 시련일지 모르고, 따라서 에너지절약운동으로 이 시기를 무사히 넘기면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딴 것은 몰라도, 석유문제만은 이제 임시미봉책이 통하지 않을 것이다. 국제에너지기구에 의하면 세계의 석유생산은 이미 정점을 지났다. 그렇다면 아랍권의 동향에 관계없이 값싼 석유시대는 끝났음이 분명하다. 사실 이것은 충분히 예견된 사태이다. 화석연료 문명의 종언을 암시하는 증언과 징후가 그동안 허다히 존재해왔기 때문이다.
제1차 ‘오일쇼크’ 이후 수십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옥외조명이나 승강기운행 감축 따위 에너지절약밖에 대책이 없다는 것은 이 나라가 삶의 장기적인 비전을 결여한 하루살이 인생들의 사회라는 것을 말해준다. 현재 한국 경제의 근본 문제는 그것이 거의 전적으로 값싼 석유에 의존하고 있다는 데 있다. 지금은 농사도 석유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그런데도 석유 공급에 이상이 생기면 그날로 망하게 되어 있는 이 극히 취약한 토대를 외면하고 우리는 이 상태가 언제까지나 계속될 수 있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
이 엉터리 사회의 모습은 가령 덴마크와 비교하면 훨씬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1973년에 석유위기가 닥쳤을 때 덴마크의 에너지자급도는 1.5%, 식량자급률도 30%에 불과했다. 그러나 석유위기는 덴마크인들을 각성시키는 계기가 되어, 그들은 재생가능에너지를 실용화하고 화석연료 의존도를 낮춘다는 목표를 내걸고 전력을 기울였다. 그리하여 1977년에는 에너지세를 신설하고, 또한 석유류의 국내가격은 국제석유시세 변동에 관계없이 높은 수준으로 유지하는 정책을 채택함으로써 재생가능에너지 개발을 적극적으로 장려했다. 다른 한편, 풍력, 태양광, 바이오매스 발전에는 면세나 세금환급 혜택을 부여함으로써 재생가능에너지의 개발과 보급을 급속도로 확대시켰다. 그 결과 지금 덴마크의 에너지자립률은 130%, 식량자급률도 300%나 되었다.
주의할 것은 이 성과에는 덴마크의 정치적·사회적 성숙도와 높은 시민적 교양이 반영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높은 석유가격이나 에너지세를 감수하겠다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자세 없이는 지금과 같은 에너지자립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하기까지는 지도층의 현명한 결단도 필요했겠지만 무엇보다 민주주의가 살아있기에 그것이 가능했다고 할 수 있다.
생각해보면 덴마크의 민주주의는 이 나라의 오래된 협동조합운동의 역사와 긴밀히 관련되어 있음에 틀림없다. 18세기에 전면적인 토지개혁을 통해 자작소농 중심 사회로 근대를 맞이했던 덴마크는 몇 차례의 전쟁 끝에 국토 절반을 잃는 절망적 현실을 헤치고 세계에서도 드물게 평화롭고 견실한 민주주의 사회로 성장해왔다. 이 성공적인 역사의 원동력이 된 게 바로 활기찬 협동적 삶이었던 것이다. 거대자본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소농들은 일찍부터 생산과 유통, 소비부문에 걸쳐 서로 연대하고 연합함으로써 수많은 협동조합을 출현시켰다. 그리고 협동조합의 자치적·민주적 방식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자주적으로 통제하는 능력과 습관을 키워왔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 덴마크의 노동조합 조직률은 87%에 달한다. 그뿐만 아니라, 원자력 등 과학기술에 관한 중요한 사회문제가 있으면 전문가들에게만 맡겨놓지 않고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여 토론하고 결정하는 ‘시민합의회의’를 운영하고 있다. 지금 덴마크의 대학진학률은 40%에 불과하지만, 시민적 교양 수준은 대학 졸업자로 넘쳐나는 어떤 사회보다도 높다.
20110228한겨레 김종철<녹색평론>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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