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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을 회복하자, 다시 싸우자

by 오직~ 2010. 5. 18.

 

제1화 한겨레, 너는 누구냐

 

“거 참, 또 문어네.”

서해성이 말을 끊었다. ‘문어’가 문제였다. 이야기 도중 도합 다섯 번이나 끊었다. 문어, 문어, 문어, 문어, 문어로는 안 된다고 했다. 바다에 사는, 문어발 그 문어가 아니었다. 입에서 나오는 문어! 문어체가 화근이었다.

쉬운 구어체로 말하자! 이 기획의 원칙이었다. 자꾸 어려운 말이 튀어나왔다. 서해성은 자신의 입을 쥐어뜯었다. 대담 첫머리에 “한겨레는 너무 어렵다”고 비판해 놓고 말이다.

그렇다. ‘한홍구-서해성의 직설’ 첫 회의 주제는 <한겨레>다. 남에게 침을 뱉기 전에 자기 얼굴에 먼저 침을 뱉어야 온당하다는 논리였다. 그래 놓고 두 사람은 ‘침’에 관해서 약 30분간이나 침을 튀겼다. 침의 사회적 해석이었다. 서해성에 따르면 침은 두 가지다. 김수영의 시처럼 “시여 침을 뱉어라”라고 말할 때의 침은 현실비판 지식인의 것이다.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라고 할 때의 침은 박정희 같은 독재자나 조폭깡패의 것이다. 한홍구는 다른 측면을 보탠다. 두 손과 두 발 다 묶였을 때 침은 최후의 저항수단이다. 최후까지 가지 않기 위해서 미리 침을 뱉어야 한다. 자, 오늘부터 한홍구와 서해성은 침을 뱉는다. 한겨레를 포함한 지난 10년간의 한국 사회를 향해 “껌 좀 씹고, 다리 좀 떨고, 문고리 잡는 자세로.”



서해성(이하 서) 통조림된 지식은 방부처리되어 있지만 생동감이 없고, 또 먹기 위해서는 반드시 연장이 하나 필요하죠. 그냥 먹을 순 없으니 말이죠. 땅에 던져 깨뜨려 부술 수도 없고 말이죠. 따는 도구가 꼭 있어야 한다는 얘기죠. 그때 문제가 일어나요. 지식정보 독점과 대중성에서 말이죠.

한홍구(이하 한) 콘텐츠는 충분하죠. 인천 앞바다에 사이다 천지야. 그걸 어떻게 먹느냐.

 

‘고뿌’(컵의 일본어)가 있어야지.

서영춘 말이 맞아, 내용이 암만 좋아도 뭘 해? ‘고뿌’ 있어야 떠먹지. 한겨레의 어떤 기사는 너무 어려워서 읽어도 잘 모르겠어. 기자가 자기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걸 기사로 써서 그래.

 

서울 올림픽, 상계동 올림픽, 양평 올림픽

한국의 진보적 지식인들이야말로 조선시대 문숭상주의 전통 같은 걸 잇고 있는 게 아닌가 해요. 한겨레도 예외가 아니잖아요.

동네 시장판 사람들도 신문을 읽고 자기네들끼리 모여 술 먹을 때 “내가 신문에서 봤다”고 말하면서 거기에 말을 보태 자기 언어로 풀 수 있어야 해. 그래야만 민중적 지혜가 더해지는 거지.

 

그게 바로 소문이 힘이에요. 얘길 보태는 건데, 거기엔 약간 뻥이 불가피하게 들어가거든요. 아, 뻥 안 치는데 무슨 재미로 그 얘기를 해요.(웃음) 지금 정권이 그걸 하지 말라는 거 아니에요.

뻥도 뻥이지만 지금 인터넷이 가진 발랄함과 참신함을 종이신문에서는 찾아볼 수 없어. 젊은 독자들이 얼마만큼 한겨레를 읽지? 한겨레의 젊은 감각은 88년 창간 때의 가로쓰기와 한글전용인데, 요새 그건 조선일보도 하잖아.

 

88년 당시를 돌아보죠. 그때 한국 사회엔 3가지 올림픽이 있었어요. 하나가 서울올림픽이었고, 상계동 올림픽①이 또 하나, 나머지가 한겨레신문을 만든 민중적 올림픽이에요.

양평 올림픽②. 그때 난 주주는 아니었어. 그때 ‘청년학교’ 하느라 주식 몇 주조차 사질 못했거든. 하지만 아주 열성독자였지. 89년에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는 거액을 주고 구독했고. 한달에 50~60달러 했죠. 미국에서 7~8년을 받아 봤지. 미주판 대신 비싼 돈 주고 본국판 본 건 잉크 냄새도 그립고 한겨레 광고가 주는 색다른 맛이 있었고.

 

한겨레 10년치 신문을 다 모았는데, 90년대 중반쯤 아이가 집에서 놀다 쌓아놓은 신문더미에 깔려 죽을 뻔했어.(웃음) 그때 창간호만 빼놓고 종이장수한테 넘겼죠.

조중동이 보도지침에 따라 끽소리도 못하던 시대였지만 대중들은 신문을 신뢰하는 편이었지.

 

87년 대통령 선거 끝나고 88년 초쯤 디제이(김대중)가 이런저런 사람들한테 돌아가며 밥을 사는데, 거기 ‘꼽사리’로 꼈거든요. 그 자리에서 디제이가 지나가는 소리로 이렇게 말하는 거야. “우리에게 서울신문 같은 거 하나라도 있으면 얼마나 좋겠냐.” 당시에 서울신문은 관제신문이라고 해서 안 봤잖아. 그 말이 신문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가장 생동감 있는 이야기로 기억나. 진실을 보도하는 신문에 대한 대중적 갈망이 얼마나 컸으면.

 

안중근의 핵심은 머리가 아니라 근육이다

그때 뭐 했지?

백수였어요. 데모하러 다니는 백수.(웃음) 한겨레가 나왔을 땐 솔직히 말해 “아, 우리 찌라시가 레귤러하게(정기적으로) 나온다”는 기분이었어요. 다른 한편 한겨레도 진보에 대한 순혈주의가 있죠. 그걸 뛰어넘어야 하는데.

 

그 경향성이 고급화한 단계로 도달해야 하는데, 뻔한 당위적 반복에 그쳐서 문제지.

얼마 전 안중근 의사 순국 100돌 기념 특집기사가 그러지 않았나요? 답답하게도, 한겨레 기사는 조선일보나 케이비에스하고 똑같았어요.

 

안중근한테 우리가 배울 점은 평화사상이 아니라, 가장 정직한 테러리스트였다는 거야. 수틀린 자식 쏴 죽인 게 안중근의 본질이거든. 그 정직한 힘의 의미를 통해 자라나는 젊은이들에게 불의에 어떻게 싸울 것인가를 이야기해야지.

친일파와 독재세력은 안중근의 행위를 순국 개념으로 받아들여왔죠. 거세된 안중근이에요. 안중근이 지닌 최고의 가치는 행동파라는 건데. ‘체육계’(웃음)란 말이죠. 촛불이 뭐겠어요? 천만 안중근화 아니겠어요?

 

안중근한테 본받아야 할 것은 머리가 아니라 근육이야. 이런 부분에 대해서 한겨레가 진보적으로 재조명해주었더라면 하는 안타까움이 크지.

 

이야기는 한겨레 창간 시절로 다시 돌아왔다. 세계사적으로 유례없는 국민주 모금운동의 감동을 무엇과 비교하랴. 한홍구는 해방 직후 남한의 첫 민립대학인 광주 조선대에 빗댔다. 서해성은 일제강점기 군민들의 힘으로 세운 고창고보를 떠올렸다. 한홍구는 한때 개인의 사유물로 전락했던 조선대에 비해 한겨레가 정체성을 유지한 것은 다행이지만, 그러면서도 민주정권 10년 동안의 성과에 관해서는 아쉬움이 많다고 했다.

이 대목에서 키워드는 ‘점빵의식’이었다. 경영적으로 자기 가게를 키우려는 노력이 부족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었다. 한겨레를 거쳐간 언론인 중에서 한겨레보다 몸집 큰 언론사의 사장은 10명 가까이나 나왔음에도, 정작 한겨레에 투철한 경영 근성은 부족했다는 비판이었다. ‘진보 티브이’를 준비하는 등 미디어영역을 확장하려는 제대로 된 활동이 없었다는 질타도 나왔다. 일제강점기 조선과 동아가 대중들의 문맹 퇴치를 위해 펼쳤던 ‘브나로드 운동’처럼 시대적 상황에 맞는 신문판촉 사업 아이디어가 필요하다고도 했다.

 

빗나간 친일비판…운동권식 배타성의 그늘

배타성 이야기도 하죠. 보수인사들도 한겨레에 글을 써야 해. 한겨레가 자신감이 없나?

민주정부 10년 동안 여당지가 아니냐는 공격이 있었지. 심지어는 ‘기관지’란 말도 나왔어요. 주요 간부의 글 중엔 기관지로 의심받을 만한 것들이 없지 않았고, 실제로 그분들이 공직에 진출했고.

 

제가 볼 땐, 조선일보가 장사 잘한 것 중 하나는 진보적인 필자를 많이 ‘유치’한 거야.

갑자기 박정희 때 재일동포 모국방문단이 생각난다.(웃음) 자신감의 표현이거든.

 

동아는 배타적이었어. 그게 독자 줄어든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조선은 자신감이 있었어. 아무리 진보주의자라도 보수적인 부분이 있고, 아무리 보수주의자라도 진보적인 부분이 있거든. 그런 측면을 끌어내는 게 중요하지.

한겨레는 여전히 순혈주의 운동권 신문이야. 운동권 주장만 실리고, 운동권에서도 지식층만 보고. 독자가 늘지 않잖아.

 

그 이유 중 하나는 노무현이야. 2005년 한겨레 제2창간 발전기금 내겠다는 것에서 비롯된 일이나, 또 안티조선의 첨병 노릇을 했잖아. 이 운동을 통해 대중들이 각성된 측면이 있었지만, 최종적인 결과로는 조선일보를 더 강해지게 했어요. ‘안티’란 비유하자면 참나무의 매미 같은 거예요. 숲을 베면 매미는 떠나죠. 너무 쉽게 그들을 적으로 만든 거지.

물론 김대중이 후보 때부터 조선일보와 악연을 맺었지만, 노무현 때부터 더 확실하게 싸웠지.

 

오늘날 조중동과 기타 신문의 범주로 나뉘게 된 결정적 계기죠. 결국 조선일보가 구색 맞추기조차 안 하게 된 거 아닌가? 한겨레도 안티조선 운동에 동참한 셈인데, 결국 조중동의 영향력을 나쁜 쪽으로 강화해준 셈이에요. 그래서 그들이 더 염치없어진 거죠. 손쉽게 편가르기가 된 거야.

조선과 동아를 따로 떼어놓았어야 하는데, 묶어놨다는 게 큰 잘못이야. 조선과 동아는 굉장히 떼어놓을 수 있는 조건이 있었어요. 그들을 결정적으로 묶어놓은 게 친일 문제지. 한겨레도 친일 문제를 세게 제기했잖아. 2001년 초 일제 때의 조선일보 1면 천황부부 사진 실은 걸 비판한 게 대표적이지. 친일을 비판해선 안 된다는 게 아냐. 문제는 친일 비판의 준거가 무엇이었는가야. 일제 때는 조선과 동아가 친일은 했지만 염치가 있었거든. 미안해했어. 김일성이나 다른 독립운동가들도 조선과 동아가 친일은 하더라도 신문 나오는 게 더 중요하다고 봤어요. 때려죽여야 하는 잘못이라고 생각은 안 했어.

 

보천보 전투를 얘기하죠.

안티조선 사람들이나 친일 문제 다루는 쪽에서는 조선과 동아가 항일 빨치산들을 ‘공비’라고 비하했다고 거품 무는데, 동아의 보천보 전투 기사를 누가 썼지? 김일성파 조직원이 쓴 거야.(웃음)

 

아주 중요한 대목이죠.

양일천이라고 혜산진 주재 기자가 정보를 입수하고 미리 기사를 써놓은 거야. 동아일보가 손기정 일장기 말소사건으로 무기정간을 받았다가 신문을 발행한 게 1937년 6월1일인데 보천보 사건이 6월4일이에요. 공비가 쳐들어와서 빨갱이들이 난장판을 만들었다고 신나게 떠들었지. 민중들은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단 말이야. 바보가 아니잖아. 엄혹한 상황 속에서 일제가 정해놓은 방화, 공비, 양민학살 같은 용어를 쓸 수밖에 없는 구조였지. 더 나아가 천황 얼굴까지 싣게 된 거고. 그래도 그런 신문이 있는 게 훨씬 좋았고, 그것조차 용납 못하니 폐간을 시킨 거지.

 

저는 친일인명사전에 우리가 돈 낸 거 아쉽게 생각해요. 친일파가 내야지.

조선·동아가 돈을 내게 하고 “그런 과거가 있었다. 부득이했다고 생각하지만 잘못했다”는 말이 나오게 했어야 해.

 

한겨레·노무현·조선일보의 이념적 좌표

한겨레도 여기에 부화뇌동한 측면이 있어요. 그로 인해 형국이 좁아진 결과가 나오고, 자꾸 대중은 이탈하고, 매체로서 영향력도 준 게 아닐까.

누가 좀더 진보적인 의제를 세게 이야기하느냐보다, 상대방을 약화시키고 해체 분열시킬 포지션을 어떻게 잡느냐가 중요하지. 그냥 “그 입 다물라”고 해서 되는 게 아니거든. 그런 역사적인 안목이 필요했죠.

 

2008년 3월 진보신당이 ‘종북주의’ 어쩌구 하면서 쪼개 나간 것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봐요.

국가보안법으로 잡혀 들어갔다고 그들이 한 모든 행위를 다 옹호할 수는 없지. 다만 그렇게 민주노동당 내부에서 비판받을 만한 사람이 있었지만, 그런 식으로 치고나가 딴살림을 차린 것은 좀….

 

민주노동당 안에 생각이 기운 듯한 사람들이 분명히 있죠. 하지만 ‘종북’이란 표현이 적절하다고는 보지 않아.

조중동을 친일이라고 단선적으로 규정해버리는 것과 같지.

 

그 말이 굉장히 폭력적이에요. 한국의 진보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건 괜찮은데 말이죠. 종북주의라 규정당한 사람들이 배타적으로 저항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 거죠.

저게 무슨 조선일보 식이냐 했지. 따로 살림 차릴 게 아니라 필요하다면 민주노동당을 장악해서 바꿔야지.

 

한겨레에서 시작된 이야기들은 자꾸만 가지를 치며 한겨레 바깥으로 뻗어나갔다. 오늘의 주제는 한겨레다. 한겨레, 너는 누구인지가 아직 부족하다. 말해보라, 한겨레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한국 사회의 이념 지형을 이야기해보자고. 극우에서 극좌까지 1에서 10까지 놓고 보면, 한겨레는 8, 9쯤에 있지 않을까.

저는 한 7쯤에 있다고 생각해요. 경향성만으론 판단하기 곤란하고, 세련미를 같이 이야기해야 해. 세련미는 좀 떨어지는 거 아닌가? 양아치는 옷이 중요해.(웃음) 그럼에도 한겨레는 분명히 진보야. 진보라는 건 당대 사회 안에서의 상대적 개념이거든. 때로는 유교도 진보적일 수 있어.

 

김대중은 6.5 정도가 아닐까.

노무현은?

 

8이거나 4지. 8이면서 4이기도 해. 그런 자기분열 때문에 망한 거라고. 삼성 키워주고 비정규직 방치하고 한-미 에프티에이, 이라크 파병 밀어붙이고 평택 농민들 쫓아내고….

노무현이 후보 때의 결기로는 미국에 독자성을 확보할 것처럼 말했지만 실제로는 철저히 복속했죠.

한겨레는 8과 4는 아니었어. 그냥 8이었지. 조선일보는 -1 정도?

 

1이나 2쯤 있을 텐데, 조선이 가진 그 포지션이 염치가 없기 때문에 단지 좌표만 얘기하긴 어렵죠. 친일, 독재에 대해 이제 부끄럼마저 소멸해버렸어. 놀라운 파렴치야. 엠비정부 출범 뒤 완전히 노골적이야. 한겨레는 한국 사회에서 보자면 분명히 좌파인데, 글로벌 스탠더드로 보자면 중도야.

한국 사회를 글로벌 스탠더드에서 벗어나게 하는 게 조선일보의 힘인 거지. 한국 사회가 꼭 이념 때문에 대립하는 건가? 본질은 좌우가 아니라 염치야.

 

한겨레를 경향신문과 비교해보면 어떨까요.

경향이 2006년 ‘진보개혁의 위기’ 시리즈처럼 자성을 하려는 몸짓은 한겨레보다 빨랐어.

 

경향이 좌파 시장의 주류가 아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신문사의 경영도 훨씬 위기였고. 그런 점 때문인지 성찰적 측면이 한겨레보다 강했어.

 

오늘 ‘한겨레, 너는 누구냐’고 묻는 중요한 이유가 그거예요. 한겨레가 그동안 지면에서 자기성찰을 했습니까? 아, 오늘 우리가 하는 건가?

우리는 지면에 자주 얼굴 내밀었지만 외부인 아닌가.(웃음)

 

세 시간 동안 오고간 한겨레를 향한 쓴소리의 기조는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 시장에서 좀더 지혜로워야 한다. 둘째, 새로운 대중을 만들어야 한다. 지금까지 부족했다면 앞으로 잘해라! 마무리를 할 시간이 다가왔다.

 

칠, 칠, 칠, 새로운 칠이 중요하다

한겨레 사옥을 지은 게 92년이에요. 칙칙한 회색이지만 만리재의 가난한 풍경과 잘 맞아떨어졌어요. 논조와도 어울리고. 2000년대 이후 삼성 아파트가 주변에 들어오면서는 포위됐어요. 낡은 회색 건물(진보)이 수구처럼 느껴지는 거야. 근데 요즘 새로워졌어요. 철제구조물을 연두색으로 칠했더라고.

브리지를 했다고 해야 할까?

 

신문도 리모델링을 해야죠. 지난 10년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하자는 거죠. 촛불시위에서 밀린 뒤로 다시 앙시앵레짐(구제도)으로 넘어간 거 아니에요? 거기에 대응할 창조적 논리를 개발해야죠.

옛 칼로 싸우지 말아야지. 벼린 칼로 싸워야 해.

 

칼에도 결이 있고, 근육도 마찬가지라는 얘기죠.

왕년에 독재정권과 싸우고 한겨레 만들 때는 이러지 않았잖아. 민주세력이 정권 잡고 10년 동안 싸우는 법을 잃어버렸어요. 그걸 회복해야 해.

 

우리만의 민주화, 우리만의 리그전이었죠.

싸움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해. 민주세력이 망한 이유 중 하나가 우아하게 삼성이니 재벌이니 검찰이니 친하게 지내다가, 결국 되지도 않은 문제로 싸움이나 걸고…. 싸우는 근육을 잃어버리니 엉거주춤 자세가 안 나오잖아.

 

아무튼 한겨레는 리모델링을 해야 해요. 칠이 굉장히 중요하다!(웃음)

 

각주

① 상계동 빈민들의 철거투쟁을 말하는 것으로 김동원 감독의 다큐멘터리 제목에서 따왔음.

② 한겨레 창간 때 사옥이 있던 서울 양평동을 말함.

 

■ 서해성의 출사표

 

필살기를 위하여

필살기가 없는 직설은 객담일 뿐이다. 저잣거리 언어이되 본질을 꿰뚫어야 쓸 만한 직설이랄 수 있다. 간지럽던 귀는 시원한데 근육이 움찔거리지 않는 구설 또한 ‘썰’을 넘어서지 못한다. 그저 앞이마 쪽 머리만 명료해지면 한설, 한담이다. 도사연하는 자들의 필수 무기이지만 세상을 어찌하지는 못한다. 말이 매끄럽고 귀로 넘기기만 좋으면 연담이다. 이건 살롱용이다. 그러니까 직설을 일단 구어체화된 곧은 혀쯤으로 해두자. 제법 그럴싸한 말로 구라가 있긴 한데, 본뜻이 음모적인데다 식민지 냄새가 물씬하다.

 

직설은 라지오와 카세트 방식이 아니다. 라지오는 탁월하지만 일방주의이고, 카세트는 구간별로 동어반복인 까닭이다. 교육방송도 곤란하다. 지식과 교양이 풍부하더라도 숨쉬는 삶이 거세되어 있는 터다. 입에서 단내가 나게 대거리를 하고 나면 이윽고 팔뚝에 힘줄깨나 돋아야 제대로 된 직설이라고 하겠다.

 

썰꾼이나 도사, 살롱지기들도 그렇지만 직설에는 투견 같은 말꾼 또한 적절치 않다. 거의 싸움 자체가 목적이거니와 정작 배후에서 진짜 주인이 필살기를 휘두르는 터다. 프로모터 말이다.

 

흔히들 한홍구를 현대사 학자라고 하는데, 엄밀하게는 현재사 학자다. 지금 이 순간의 역사가 바로 그의 관심사다. 그 한홍구의 필살기는 ‘별걸 다 기억하는’ 구체적 근거를 들어가면서 풀어가는 현재담에 있다.

 

서해성은 지식광대를 자임한다. 광대는 저잣거리에 살면서 지배관념에 맞서는 눅한 입술을 가져야 한다. 입말로 토해내는 생동하는 현실 언어가 필살기라고 해야겠다.

 

둘이 한입인 양 말을 주워섬기면 다투어야 할 대상이 분명한 셈이고, 서로 맞서는 일이 있다면 화두를 바닥까지 타파하거나 드러내고자 할 때일 게다. 이런 과정을 통해 필살기를 더 벼리어 갈 참이다.

 

말이 칼이 되어 내뿜는 진검의 결기와 유쾌한 장풍이 엠비시대의 만리재를 넘으려면 독자들이 구경꾼이 아니라 참여자가 되어야 제맛이 나는 법이다. 시호시호, 때가 좋구나. 먼저 말이 칼을 닮아가야 몸도 세월도 이내 칼을 닮아갈 수 있을 터인즉. 간을 보는 일은 이쯤 해두자. 자, 이제 본풀이가 나올 하회를 기대하시라.

 

 

 20100517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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