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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들이길

과메기도 울고 갈 50년 찐빵 맛 _ 포항 구룡포

by 오직~ 2010. 1. 28.

 

포항 구룡포와 일본인가옥 거리
포항 구룡포읍사무소에서 조선소·시장·일식가옥거리 거쳐 사라끝 방파제까지 5㎞

 

포항 영일만을 감싼 호랑이 꼬리 아래쪽에 구룡포가 있다. 한겨울 과메기로 이름난 고장이다. 골목마다 집마다 과메기 덕장이 즐비하다. 호미곶에서 해맞이하고, 호랑이 꼬리 해안선 따라 돌며 바닷바람 즐긴 관광객들이 오며 가며 찬 소주에 과메기 쌈을 싼다. 지금 구룡포엔 대게·오징어도 지천이다. 먹을거리 못잖게 볼거리도 지천인데, 열에 아홉은 모르고 지나친다. 열 마리 용이 승천하다 아홉 마리만 올라갔다 해서 구룡포다. 남은 한 마리 용처럼, 구룡포 거리는 포구를 감싸고 길게 굽이친다. 구룡포읍사무소에서 출발해 조선소·구룡포시장과 일식 가옥 거리 거쳐 사라끝 방파제까지 걷는다.

 

나흘이면 대형선 분해도 뚝딱

읍사무소 앞마당에, 작살로 고래를 쏘아 잡던 ‘고래총’① 두 개가 전시돼 있다. 구룡포는 1986년 고래잡이가 금지되기까지 중요 포경기지 중 한 곳이었다. 포경기지의 명성도 고래 개체수 감소와 함께 사라지고 녹슨 작살포 두 개로 남았다. 용두산 쪽으로 길 건너 ‘바르게 살자’ 빗돌을 지나 병포삼거리에서 벚나무길로 내려간다. 봄이면 눈부신 꽃터널을 이룬다는 길이다. 병포리(병리)는 본디 자래(자라)골이다. 마을에 자라를 닮은 바위가 있어 자라골인데, 한자로 표기하면서 잘못 해석해 자루 병(柄)자를 쓰는 병포(柄浦)가 됐다. 용두산 자락 수산물 가공공장 즐비한 언덕길을 오른다. 시원하게 펼쳐진 바다를 배경으로 오징어 덕장②이 펼쳐진다. 매서운 바람 속에 오징어를 내거는 손길이 분주하다.

 

조릿대숲 지나 언덕길을 내려가면, 짙푸른 바다를 안고 돌아가는 구룡포항 자태가 일목요연하다. 내려서면 ‘배 공장’, 조선소③ 자리다. 지난해 마지막 목선을 만든 뒤 지금은 배 수리 장소로 쓰인다고 한다. 영덕에서 깨진 뱃머리를 고치러 왔다는 광명호 배 주인이 무쇠난롯불을 쬐며 말했다. “여 기술자들이 실력이 아주 좋심더. 딴덴 인력도 모지래고.” 배를 수리하는 실무는 외국인 노동자들 차지다.

 

새로운 배가 태어나던 조선소 옆에, 낡은 배가 생애를 마치는 폐선장④이 있다. 거대한 배에서 뜯고 잘라낸 녹슨 살점들을 포클레인으로 끌어모아 옮겨 쌓는 작업이 한창이다. “이 배는 선령 20여년 된 79t짜리 철선이죠. 한 척 해체하는 데 나흘이면 충분합니다.”(고은종·42·고물처리업체) 폐선장 옆 산 밑엔 배의 안전을 기원하며 용왕신에게 제를 올리는 자그마한 사당이 있다. 막걸리통 몇 개 나뒹구는 낡은 사당 분위기가 폐선장을 닮았다. 언덕길로 올라 구룡포여중·고 입구 거쳐 마라톤 동호인 숙소인 ‘마징가 마라톤 쉼터’ 앞에서 오징어 트롤선 부두로 내려선다. 잡어 어판장⑤ 쪽으로 걷는다.


‘땡’ 소리와 함께 대게 경매가 시작됐다. 잡아온 대게를 바닥에 깔고 종을 쳐서 경매가 준비됐음을 알린다. 마이크를 든 경매사와 남모르게 옷으로 가린 채 입찰가를 표시하는 구매자들의 바쁜 손길·눈길도 잠시, 불과 몇 초마다 한 무더기씩 낙찰이 이뤄진다. 어판장 주변에서 박달대게 중급 1마리 4만~5만원, 속이 덜 찬 물게 작은것 1마리 4000~5000원.
 

오전 햇살 가득한 2층 노을다방 쪽으로 큰길을 건넌다. 58년째 복어탕을 끓인다는 함흥식당 지나 구룡포시장⑥ 골목으로 들어간다. 가자미든 게든 새우든 다 튀겨 준다는 원조튀김·오뎅집 지나면 40년째 한자리에서 소면·중면·우동국수를 뽑아내고 있는 제일국수공장이 나타난다. 국수 다발을 한 움큼씩 집어 묶어내는 주인 이순화(72)씨의 손길이 날래다. 40년 전엔 이 골목에 국수공장이 아홉 군데나 있었다고 한다. 제일 늦게 시작한 제일국수만 남았다. 30년째 간판도 없이 물국수만 파는 할매국수집도, 40년 넘게 푸짐한 해물국수(일명 모리국수)를 팔아온 까꾸네 모리국수집도, 50년째 국수·찐빵을 파는 철규분식도 다 제일국수공장 국수를 사다 쓴다. 4인분 한 묶음에 2000원.

 

» 50년 된 찐빵집 철규분식의 찐빵·단팥죽·국수. 구룡포초등학교 앞에 있다.

구룡포초등학교 앞 철규분식⑦으로 간다. 맛있는 찐빵집으로 소문이 자자한데, 특히 갓 쪄 내온 빵을 뜨거운 단팥죽에 찍어 먹는 맛이 그만이다. 안주인 박상연(67)씨가 친정어머니에게서 빵 만드는 솜씨를 물려받았다. 남편 천수생(69)씨가 말했다. “난 껍디기시더. 저 할매가 다 하지. 저 할매가 열두살 때부터 했니더.” 초등학교 앞인데, 어린 학생들은 안 보인다. “옛날 학생들 단골 빵집”이다. 30~40대들이 옛맛을 못 잊어 동창회·계모임을 자주 연다고 한다. 찐빵 3개 1000원, 국수·단팥죽 2000원.

 

중앙로 옛 일본인 가옥 거리를 향해 걷는다. 길옆에 작은 암벽이 있는 신협 맞은편, 농협 골목 모퉁이에 작은 팻말이 하나 보인다. 구룡포 돌문⑧. 돌문은 조선시대 구룡포 뒷산인 매바위산(응암산)에서 동해면 흥환동 주변에 걸쳐 있던 대규모 말사육장(장기목장)으로 드는 관문이었다. 장기목장은 높이 3m, 길이 12㎞에 이르는 돌담을 쌓고 1000여마리의 말을 길렀다고 한다. 1988년까지 높이 7.5m의 돌문(돌기둥)이 있었으나, 안전사고 대비와 교통소통을 이유로 헐렸다. 돌문 윗부분을 잘라 읍사무소 정원에 옮겨 놓았다.

 

옛 시외버스터미널이 있던 장안동 네거리 지나 잠시 걸으면 경찰주재소 건물을 시작으로 일제강점기의 집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골목골목에 50채가량의 일본식 집들이 흩어져 있다. 대부분 녹슬고 깨지고 허물어져 가는 모습이고, 온전한 집은 15채 안팎이다. 목욕탕·의원·요릿집·여관 등 일부 건물엔 옛 건물 사진을 붙여 놓았다. 일부 집엔 다다미방이 그대로 남아 있고, 찢어진 벽지 안쪽에선 옛 일본 신문 기사까지 선명히 보인다.

 

일제 때 신문 바른 벽지까지 생생

이 거리는 일제강점기 일본의 오카야마·가가와현 지역 어민들을 집단이주시키면서 형성됐다고 한다. 일본인 가옥 거리에 대한 자료조사를 해온 구룡포 주민 권선희(45·시인)씨는 “여기 살던 일본인들이 찾아와 옛 모습 그대로인 집을 보곤 감동하는 이가 많다”며 “특히 이곳에서 태어난 일본인들은 구룡포를 고향으로 여긴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일본식 집인 하시모토 가옥은 각종 자료와 물품을 전시한 전시관⑪으로 쓰고 있다. 여행자에 대한 배려는 인색하다. 거리나 집들에 대해 설명한 안내판도 없고, 해설사도 없다.

 

» 포항시 구룡포읍 구룡포중·종합고등학교 앞 길가에 선 사라말(사라끝) 등대.

길옆 계단을 오르면 구룡포항이 한눈에 보이는 구룡포공원⑨이다. 한국전쟁 희생자를 기린 충혼탑과 충혼비가 있고, 한쪽엔 1942년 세워진 ‘도가와 야사부로 송덕비’⑩가 있다. 도가와 야사부로는 구룡포항 건설에 크게 기여했다고 한다. 시멘트로 발라진 송덕비 복원 여부를 놓고 지역민 사이에 찬반양론이 있다. 공원으로 오르는 층계 좌우엔 돌기둥이 즐비하다. 송덕비 건립을 후원한 일본인 이름을 새긴 빗돌들인데, 광복 뒤 이름을 시멘트로 바르고 뒤쪽에 호국영령들의 이름을 새겨 다시 세웠다.

 

일본식 가옥 골목을 나서서 큰길 건너 방파제로 간다. 모래밭 끝부분이어서 사라끝(사라말)으로 불리는 지역이다. 방파제 입구에 또하나의 일제 유물이 있다. 이 역시 도가와 야사부로가 관여한 방파제 확축공사(1935) 준공비⑫다. 여기까지 5㎞.

 

여기서 지방도 따라 10여분 더 걸으면 구룡포중·종합고 앞에 선 사라말등대를 만난다. 갓길이 없으니 차조심.

 

 

 

 

 

 

 

 

 

 

 

 

 

 

 

 

 

워킹 쪽지

⊙ 수도권에서 영동고속도로 여주분기점에서 중부내륙고속도로를 타고 내려가 김천분기점에서 경부고속도로로 바꿔 탄다. 대구 도동분기점에서 대구~포항 고속도로 타고 포항나들목으로 간다. 포스코·포항공항 쪽으로 직진해 31번 국도를 타고 가다 구룡포 팻말 보고 나가 929번 지방도 따라 구룡포 읍내로 간다. 읍 들머리에 읍사무소가 있다. 잡어 어판장 좌우에도 주차장이 있다.

 

⊙ 과메기나 대게는 포구 주변 대부분의 식당에서 만날 수 있다. 장안동 뒷골목의 까꾸네 모리국수(054-276-2298). 물메기·대게·아귀·홍합·미더덕에 콩나물을 곁들인 푸짐한 국수를 낸다. 맑은 국물을 원하면 고춧가루를 빼준다. 1인분 5000원(2명 이상 주문). 구룡포초교 앞 철규분식(054-276-3215). 시금치를 곁들인 따뜻한 물국수(2000원), 작고 차진 팥소 찐빵, 단팥죽만 판다. 오전 9시 문 열어 찐빵은 11시쯤부터 판다. 복어요리 전문 함흥식당 (054)276-2347. 고래고기 전문 삼오식당 (054)276-2991.

 

⊙ 구룡포읍사무소 (054)276-2565. 포항시청 (054)270-2114. 포항문화원 (054)242-4711. 포항역 (054)270-5837. 포항터미널 (054)270-5836.

 

 

포항=글·사진 이병학 기자

20100128한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