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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기술’

by 오직~ 2007. 12. 17.

 

조선의 선비들은 거미를 아주 싫어했다. 거미는 자기 뱃속에 알을 낳는다. 깨어난 새끼들은 어미를 파먹고 자라다가 세상으로 나온다. 효가 으뜸 덕목이었던 선비들에게 어미를 잡아먹는 거미의 습성은 여간 끔찍한 일이 아니었을 터다. 그래서 보는 족족 거미줄을 거두어 냈단다.

 

하지만 자연은 도덕에 무관심하다. 사마귀 암컷은 짝짓기가 끝나자마자 지아비를 씹어 먹는다. 배고픈 돼지는 자기 새끼까지도 잡아먹는단다. 이런 모습을 보고 욕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 거미도, 사마귀도, 돼지도 자기 태어난 본성에 따라 살아갈 뿐이니까. 자연을 도덕의 잣대로 바라본 순간, 인간은 애꿎은 생명들만 위기로 몰아넣는다.

 

남들도 자기처럼 생각하고 움직이리라는 생각은 인간의 오래된 착각이다. 예를 들어보자. 천둥번개를 보고 원시인들은 “하늘이 화났나 보다” 하며 전전긍긍했다. 홍수나 가뭄 등 나쁜 일이 계속 닥치면 임금은 머리를 풀고 하늘에 용서를 구했다. 어린 짐승을 잡아 속죄하는 의식은 세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모습이다.

 

그러나 엎드려 빈다고 홍수와 가뭄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문제를 풀려면 도덕의 잣대에서 벗어나야 한다. 자연에는 원인과 결과만 있을 뿐, 인과응보는 없다. 우리의 잘잘못에 따라 상 주고 벌을 내리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과학의 위대함은 여기에 있다. 자연을 인간처럼 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해석한다는 점 말이다.

 

인간은 의미를 찾는 동물이다. 무슨 일이건 자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따져 묻는다. 이는 때때로 엄청난 재앙을 가져오기도 한다. 자기 믿음에 따라 세상을 속 좁게 바라보는 까닭이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 군대는 정신력을 유난히 강조했다. 기관총과 폭탄을 쏟아붓는 미군에게 대나무로 만든 창과 참호로 맞서기까지 했다. “신이 지키는 대일본제국은 절대 지지 않는다”는 믿음 탓이었다. 막판에 몰린 히틀러는 지도 위에만 있는 부대들을 가리키며 명령을 내렸단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처지에 몰리면, 사람은 눈을 감고 자기 신념에만 매달리기 쉽다. 모든 것에서 의미를 찾고 해석을 내리려는 ‘의미과잉’은 그래서 무섭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객관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을까? 무슨 일에 대해서건, 좋은지 나쁜지, 옳은지 그른지부터 따져서는 안 된다. 사실 자체부터 온전하게 밝히고 드러내야 한다.

 

먼저 감정과 평가를 담은 말들부터 걷어내 보자.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100년을 이어온 우리 회사를 지켜야 합니다”라는 말을 들었다 해보자. 여기서 먼저 생각할 점은 회사를 지켜야 한다는 마음가짐이 아니다. 회사를 과연 지킬 수 있는지부터 따져 보아야 한다. 어려움에 빠진 이유는 무엇인지, 현실적으로 이를 이겨낼 방법은 무엇인지를 밝혀보자. 얽히고설킨 원인과 결과가 분명하게 들어난 순간, 문제를 풀 길도 보이기 시작한다.

 

둘째, 내가 바라는 바가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정리하자. 절절한 바람 앞에서 우리의 판단은 자석처럼 휘어버린다. 사기꾼들은 이 점을 이용한다. 사람들은 자기가 바라는 것만 보고 믿으려 한다. 의심 가는 점이 99%인데도, 나에게 절실한 1% 때문에 판단이 흐려진다.

소망이 클수록 결정이 잘못될 가능성도 커진다. 부자가 되고 싶은가? 짧게 공부하고도 높은 성적을 내고 싶은가? 사랑하는 이의 마음을 얻고 싶은가? 내가 바라는 바가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바라보자. 판단이 잘못되고 흐려지는 근본에는 욕심이 숨어있다. 자신의 욕망을 분명하게 의식하고 있다면, 어지간한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셋째,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결과를 뚜렷하게 정리해 보자. 무서움은 위험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을 때 가장 큰 법이다. 나아가, 막연한 두려움은 조급함을 낳는다. 불안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은 나머지 성급하게 어처구니없는 결정을 내린다는 뜻이다. 반면, 밑바닥까지 내려가 본 사람들은 좀처럼 움츠러들지 않는다. 마음속 공포가 무엇인지를 뚜렷하게 한다면 마찬가지의 담대함을 얻을 수 있다.

 

장기의 고수들은 자기 말보다 상대편 말을 바라본단다. 경지에 오른 이들은 판세가 자기 바람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안다.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백승”이라는 충고는 괜한 말이 아니다. 자신의 바람과 두려움에 휘둘리지 않고 세상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다.

 

20071217한겨레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