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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

약간 취한 상태로 깨어 있는 것이 좋다

by 오직~ 2007. 7. 25.

 

 

 

'기차에 몸을 싣고' , 따위의 표현을 나는 좋아할 수 없다. 여행의 주체가 깨어 있지 못한 것 같아서 싫다. 나는 여행할 때면 되도록 깨어 있고자 한다. 새벽에 동쪽으로 차를 몰아본다. 고개 하나씩 넘을 때마다 성숙해지는 아침을, 아침 햇살을 빗질하는 가까운 산의 벗은 나무도 나는 좋아한다.

 

나는 여행할 때 한잔하는 것을 좋아한다. 기차에서, 특히 비행기에서 한잔하는 것을 좋아한다. '취하다' 가 '깨다' 의 반대말이라는 것을 나는 매우 의심한다. 나는 약간 취한 상태로 깨어 있는 것이 좋다. 서쪽으로 여행하는 경우, 지기 싫어서 미적거리는 듯하던 해가 마침내 지평선을 장렬하게 넘어갈 때, 또는 하늘의 운평선(雲平線) 뒤로 잠길때 나는 그 비장하게 아름다운 색깔에 한잔을 바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4월이 오면 나는 술을 많이 마신다. 술집에서 마시지 않고 산이나 들에서 마신다. 산이나 들에서 막걸리 취하도록 마시고 하늘을 향하여 게트림을 하면 나는 무조건 아득하게 행복해진다. 4월이 오면 나는 친구들을 불러들여, 남의 조상 무덤 가에서 술을 마시고는 한다. 죽을 것들이 무수히 태어나는 4월의, 잔달래와 산벚 흐드러지는 남의 조상 무덤 가는 얼마나 좋은 술자리인가? 이제야 T.S. 엘리엇이 이렇게 노래한 까닭을 알겠다.

...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

4월은 장엄한 파국의 불씨여서, 살아 있는 내가 이렇게 노래하는 계절이니...

 

 

 

 

 

이윤기의 무지개와 프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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