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하지만 행복하게
"매듭은 풀어야제, 끊어내는 것이 아니여. 끊었다 다시 이은 실로는 바느질을 할 수 없는 법인께."
생명의 세계에서 죽음의 끝이 삶의 시작임을 알려주는 징표는 어디서나 발견할 수 있다.
풀이나 나무에 열려 익어가는 열매가 그 열매를 매단 풀과 나무의 죽음이 멀지 않음을 가리키는 상징물이자 새로운 생명의 시작을 알리는 징표라는 것을 안다. 들판에 출렁이는 벼이삭의 황금빛 물결이 그렇게나 눈부시게 아름다운 까닭은 그것이 죽음과 재생, 섬김과 나눔을 예비하는 자기희생의 장엄한 전조이기 때문이 아닐까.
나는 지금 해 저무는 들녘에 서서 깊숙이 고개 숙인 벼이삭들이 속삭이는 죽음과 부활의 합창을 듣는다.
아직은 늦지 않았다. 그러나 내일이면 너무 늦다.
국어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듣기'이고 그 다음에 중요한 것은 '말하기'다.
'무소유'는 '공동소유'의 다른 이름이다.
머리만 잘 쓰면 잘 먹고 잘 사는 세상은 저주 받은 세상이다.
이미 이 세상에 사람이 없다.
사람은 이미 짐승이기도 그만두었다.
도시에서 나이 먹은 사람이 나이순으로 도태당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늘 현재속에 살자고, 순간순간을 사랑으로 가득 채워가자고, 현재를 그저 '이미 없는' 과거와 '아직 없는' 미래가 연결되는 덧없는 점의 자리에 놓지 말자고 다짐을 하는데도, 일손을 놓고 산자락에 걸린 구름을 보거나 새벽에 일어나 달빛을 밟으며 댓돌 아래 설 때면 마음은 먼 길을 떠나 과거와 미래 속을 방황한다.
아프더라도 한데 어울려서...
만남은 상처입니다. 우리는 거의 모두 자신을 지키려는 뜻에서 마음에 가시를 키워왔습니다.
쓸 만한 물건, 먹어도 좋은 음식, 해지지 않은 옷을 자꾸자꾸 버려 버릇하면 종내 사람도 버리게 된다고.
이 어두운 내 삶의 그늘을 없애는 책임은 나에게 있다. 내가 바뀌어야 한다. 내 싦이 달라져야 한다. 그래서 결국 내 삶의 그림자인 이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도 바꿀 수 있어야 한다.
내 삶은 내 밖의 온갖 삶과 거미줄처럼 얽혀 있어서 내 삶을 바꾸는 일은 어쩔 수 없이 내 밖의 삶을 바꾸는 일을 요구한다. 같이 바꾸어나가는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는 해도 먼저 해야 할 일은 자기자신을 바꾸는 일이다.
☆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2008)
- 윤구병 / 휴머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