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조암 _ 관봉석조여래좌상
은해사 입구에서 거조암행 버스가 있다.
아침 6:30분 나 혼자 타고 달리다.
텅 빈 하늘을 이고
마을 깊숙히 앉아 있는 거조암...의 상큼한 아침 공기
생뚱맞은 듯 달랑 영산전 건물 하나다.
그러나 반듯하고 단정한 모습이 몸가짐을 다소곳하게 한다.
그 안에 526분의 나한상이 모셔져 있는데
한참 절구경을 다녀보았으나
처음 대하는 풍경!
애락존자, 사리존자.. 해학스럽게 생긴 다양한 모습
사진 한번 찍지 못한 게 서운했다.
초대받지 못한 손님같은 기분으로 절 마당에 앉아 영산전을 한참 바라보다
아쉽게 거조암을 나서는데..
영산전에 어울리지 않는 일주문이 벌써 시원한 시야에 걸리적거린다.
마을과 거조암 사이의 허전한 공간을 채운다고
치장하느라 법석떠는 모습이 아니기를 발원!
절 아래 마을엔 역시 인적도 없고 돌아나갈 버스도 없다.
걷기로 한다.
언제 올지 모르는 버스
절로 들어오는 길이 그렇게 좋았으니 걷기로 한다, 시내로 나갈 버스가 있는 신녕까지.
인적없는 갈림길에서 겨우 포도 농사짓는 내외에게 길을 묻는다.
무뚝뚝하기 이를 데 없는, 그러나 꼼꼼한 가르침.
삼복더위에 땀흘리는 분들께 묻는 것도 미안스럽다.
걷는 길 내내 과실나무다.
작열하는 태양아래 온전히 익어간다.
호두나무, 사과나무, 복숭아나무, 대추나무, 포도나무, 모과나무...
들깨, 고추, 도라지, 콩...
그 속에 사람하나 고스란히 익어가기를!
목적지가 아니다, 여행은.
고행같은 걸음걸음과 하찮게 걸리적거리는 더위와
계절과 자연이 주는 모든 것을, 모든 곳에서 매순간 맞는 신선함이면 ok다.
눈길이 떼이지 않는 과수원을 어슬렁대다
동네 산보 나오신 꼬부랑할머니와 인사 나누니
호두나무에서 호두 알갱이 네 개 따주신다.
입성이 초라하시나 어디에서든 뵐 수 있는 가슴 따뜻한 노인들..
거조암에서 신령까지 4km, 내 발걸음으로 1시간 40분
땀범벅이 되어 걷는 이 길이 오늘의 하이라이트다.
신령에서 갓바위.
한번쯤은 궁금했으니까.
버스가 산아래턱까지 산을 뚫고 들어가다니 갓바위부처가 좋아하실 일인지 인상 찌푸릴 일인지 도통 보기에 좋지는 않더라.
빈 속으로 시작한 하루 일과로 허기졌는데
기운없이 올라간 산등성이 절에서 뜻밖에 부처님께 인사도 전에 밥부터 얻어 먹었다.
108배..
신통한 갓바위부처에게 간절한 소망들은 차고 넘친다.
그 더위에도 빈틈없는 사람들 물결이다.
갓바위부처가 굽어보는 시선으로 팔공산의 위용을 느끼다.
운문사로 시작은 했으나
파계사, 은해사, 운문암, 거조암, 갓바위부처까지
팔공산 자락 이곳저곳을 기웃거린 나들이였다.
정작 산을 오르진 못했으나...
20130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