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식

도마복음한글역주3

오직~ 2012. 7. 12. 14:34

 

"너는 네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는도다. 그러나 너는 네 자신의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는도다. 네 자신의 눈으로부터 들보를 빼낼 때에야 비로소 너는 밝히 보리니 그제야 너의 형제의 눈으로부터 티를 빼줄 수 있으리라."

 

 

"육신이 영혼으로 인하여 존재케 되었다면 그것은 기적이로다. 그러나 영혼이 몸으로 인하여 존재케 되었다면 그것은 기적 중의 기적이로다. 그러나 진실로 나는 어떻게 이토록 위대한 부유함이 이토록 빈곤함 속에 거(居)하게 되었는지 불가사의하게 생각하노라."

 

 

진리를 추구하는 자들에게는 '사회적 관심'과 '사회적 무관심'은 궁극적으로 통합되어야 하는 가치

 

 

"손에 무엇이라도 가진 자는 더욱 받게 될 것이요, 그리고 가지지 못한 자는 그가 조금 가지고 있는 것마저 빼앗기게 될 것이다."

 

진실하게 깨달으려고 노력하는 자에게는 더욱 더 풍요로운 깨달음이 주어질 것이며, 깨달음의 바탕이 없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상실될 것.

 

 

"방랑하는 자들이 되어라." (Be passersby)

 

이 세상은 하나의 다리일 뿐, 건너가거라. 거기에 네 거처를 짓지는 말아라.

 

 

"너희가 기다리는 것은 이미 와 있노라. 단지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할 뿐이니라."

 

 

"내버려 두어라! 너희가 가서 가라지를 뽑으려 하다가 가라지와 더불어 좋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왜냐하면 추수의 그 날에는 가라지는 현저히 드러나게 마련이므로 뽑히어 불사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선과 악은 반드시 공존할 때만 선과 악일 뿐이다.

 

하늘나라는 성급히 선과 악을 단죄하는 곳이 아니라 선과 악을 포용하면서 그것이 제각기 충분한 모습을 가지고 성장하기를 기다리는 여유로운 지배의 세계라는 것.

 

 

"고통을 겪기에 생명을 발견하는자여! 복이 있도다."

 

"고통"은 "수고로움"이다. 이 수고로움은 자기의 내면을 트랜스폼시키는 수고로움이다. 자기 내면을 어둠에서 빛으로, 분열에서 통합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변화시키는 수고로움이다. 콥트어의 "고통"은 "일을 많이 한다"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내면의 변화라는 것은 참으로 수고로운 과정인 것이다.

 

 

"너희가 살아있을 동안에 살아있는 자를 주의깊게 보라. 너희가 죽어서는 아무리 살아있는 자를 보려고 하여도 그를 볼 수 없을 터이니."

 

사후의 세계를 부정하는 발언이며 부활의 가능성을 차단해버리는 언명이다.

 

아직 삶을 모르면서 어찌 죽음을 알겠느냐?

 

 

"너희 스스로 참된 안식의 자리를 구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도 시체가 되어 먹히우리라."

 

시체와 같은 세상에 살면서 시체처럼 되어 먹히는 사람이 되지 말고 진정으로 "살아있는 자"가 되어야 한다... 진정한 안식은 죽은 후에, 즉 시체가 된 후에나 찾아 온다는 착오적 관념을 부정하는 것이다.

 

 

"돈을 많이 지닌 부자가 있었다. 그가 말하기를, 나의 돈을 투자하여 뿌리고 거두고 심고 하여 나의 창고를 곡물로 가득 채우리라. 그리하여 부족함 없이 살리라. 이것들이 바로 그 부자가 그의 가슴속에 간직한 생각들이었다. 그러나 바로 그날 밤 그는 죽었다. 귀 있는 자는 들어라."

 

예수가 서구인이 아니라 아시아대륙의 사람이며, 예수의 역사적 실상이 동방적 가치를 포섭하는 매우 혁명적인 인간론을 주창한 인물이라는 사실이 구미신학자들에게 인식되기에는 그들의 인식 범위가 너무 제한되어 있는 것이다.

 

 

"집짓는 자들이 버린 바로 그 돌을 나에게 보여다오. 그것이야말로 모퉁이의 머릿돌이로다."

 

세속적 환경에서 버림받는 자야말로 선택된 자들.

 

 

"누군가 모든 것을 안다 해도 자기를 모르면 모든 것을 모르는 것이다."

"누군가 모든 것을 안다 해도 자기를 결(缺)하면 모든 것을 결(缺)하는 것이다."

 

배움이란 타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를 위한 것.

 

 

모든 진정한 앎이란 내면의 갈등을 거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단순한 관조나 성찰의 문제는 아니다.

 

 

"만약 너희가 너희 내면에 있는 것을 끊임없이 산출해낸다면, 너희가 가지고 있는 그것이 너희를 구원하리라. 만약 너희가 그것을 너희 내면에 가지고 있지 못하다면, 너희가 너희 내면에 가지고 있지 못한 그 상태가 너희를 죽이리라."

 

 

"나는 존재하는 모든 것 위에 존재하는 빛이다. 나는 전부이다. 나로부터 모든 것이 나왔고 그리고 나에게로 모든 것이 돌아온다."

 

어떠한 주체도, 어떠한 곳도, 어떠한 사건도, 어떠한 시간도 이 "나"라는 빛의 밖으로 나갈 수 없다.

 

 

"너희는 하늘과 땅의 표정을 읽을 줄 알면서 너희 면전에 서 있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는도다. 그러니까 너희는 바로 이 순간을 읽을 줄을 알지 못하는도다."

 

 

"찾음"이란 일시적인, 일회적인 찾음이 아니라 끊임없는, 생의 모든 순간에서 지속되어야 할 추구며 탐색이며 모험이다.

 

 

"찾는 자는 발견할 것이다. 두드리는 자에게는 열릴 것이다."

 

 

"아버지의 나라는 밀가루를 가득 채운 동이를 이고 가는 한 여인과도 같다. 그녀가 먼 길을 걸어가는 동안 이고가는 동이의 손잡이가 깨져서 밀가루가 새어나와 그녀가 가는 길가에 흩날려 뿌려졌다. 그러나 그녀는 그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녀는 문제를 눈치채지 못했던 것이다. 그 여인이 집에 당도했을 때 그녀는 그 동이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것이 비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빔은 모든 생명의 가능성을 함장하는 것이며 그것은 무한한 에너지의 잠재태이다. 빔이 있어야만 천지는 생성한다.

 

세속적 꿈과 갈망과 소망(삶의 짐)이 사라지는 그 "빔". 그 "빔"이 천국이라고 예수는 갈파하고 있는 것이다.

 

 

천국은 결코 보물이 아닌 것이다. 보물은 어차피 나의 일상성 속에 숨겨져 있다.

 

"살아있는 예수"에게 놀라운 것은 살아있는 민중들의 일상적 삶의 진실과 끈기, 그리고 무의식적, 무분별적 허(虛)의 동태(動態)에 관하여 집요한 긍정이 있다는 것이다. 천국을 일시적인 허황된 "획득"으로 보지 않는 것이다. 천국은 보물이 아닌 삶의 프로세스이며, 획득이 아닌 버림이요 상실이다.

 

 

천국은 '존재'의 문제가 아니라 '인식'의 문제.

 

 

 

 

 

☆ 도마복음한글역주3

   -  김용옥 / 통나무 -

 

 

 

 

 

변덕스러워라,, 무섭게 냉정하다가 한없는 연민을 갖고 있는 예수의 말씀이다!

 

해석의 살을 붙이지 않고 순수하게 읽어야 된다는 것을 거의 다 읽고 나서 깨우치다.

알면 아는대로 모르면 모르는대로..

기존의 성경과는 달리 전혀 거부감없이 마치 동화나 우화를 보듯 감동적으로 읽다.

 

그렇더라도 번역의 힘이란 어마어마하다.

어떻게 풀어내는냐 하는 것..

성경에 전혀 문외한인 독자로서

지은이 특유의 박학다식한 안목과 쉬운 듯 유려한 문체의 번역이 큰 도움이 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