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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신기루였지. - 이계삼

오직~ 2012. 5. 15. 08:51

 

실체 없는 돈으로 돈 긁어모은
허깨비 같은 삶의 방식들
그 거품 뻥 터질 때가 올 거다

 

프로젝트파이낸싱(project financing). 파이시티로부터 솔로몬, 미래저축은행의 퇴출과 김찬경 사태에 이르기까지 곳곳에서 등장한다. 담보 없이 수익성만 보고 돈을 빌려주는 것이란다. 1000만원을 대출받으려고 온갖 서류 떼다 바치며 굽실거린 기억이 있는 이들은 누구한테는 담보도 없이 수천억원을 빌려준다는 소리를 들으면 화부터 날 것이다. 순 야바위판 아냐? 맞을 것이다. 나중에 잘못되면 누가 책임을 진다는 거지? 우리가 책임을 져야 한다.

 

이해가 안 된다. 경제가 아니라 투전판이다. 단군 이래 최대라는 31조원짜리 용산 역세권 개발에서 코레일이 소유한 용산역 부근 공작창 부지는 애초 3조원이었는데, 5억8000억원으로 치솟더니 삼성물산 등은 8조원으로 땅값을 쳐주겠노라 해서 공사를 낙찰받았다고 한다. 오세훈의 ‘한강 르네상스’와 함께 엮여 들어간 서울 서부이촌동의 부동산은 평당 200만~300만원에서 한때 평당 1억8500만원까지 치솟기도 했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111층짜리 건물에다 23개 초고층 빌딩으로 31조원 사업이란다.

 

돈은 이자를 추구한다. 그리고 이자로부터 다시 돈이 태어난다. 돈은 더 높은 이자를 향해 서로 뭉치게 되고, 이렇게 뭉친 돈은 인간의 땀과 노동의 세계로 되돌아오지 않고 투전판을 떠돌게 된다. 나는 새도 떨어뜨릴 것 같던 ‘방통대군’과 ‘왕차관’을 날려버린 이 파이시티 사업비의 이자율은 무려 17%, 총사업비 1조450억원에서 이자를 포함한 금융비용만 4000억원이란다. 지금 이런 식으로 조성된 공모형 프로젝트파이낸싱이 27건이고, 거기에 74조원이 들이부어져 있다고 한다. 그러나 용산 역세권 개발과 판교 알파돔시티만 남았고, 모두 멈추어버렸고, 송도에 짓겠다던 151층짜리 인천타워는 아직 첫삽도 못 떴다고 한다.

 

늦은 밤 한잔 걸치고 집으로 돌아오다가 대문 앞의 시커먼 그림자에 움찔 놀랄 때가 있다. 구부정한 노인이 수레에 폐지를 싣고 있는 중이다. 그렇게 밤새 수레를 끌어 폐지를 모아도 1만원 벌이가 쉽지 않다고 한다. 비닐하우스 후끈한 공기 속에서 육십대 할머니가 진종일 허리 몇 번 펴지 않고 깻잎을, 고추를 따서 받는 일당은 5만원이다. 이 눈물겨운 돈과 저 프로젝트파이낸싱으로 굴러다니는 돈이 같은 종류의 돈이라는 사실, 이 정직한 노동이 저 야바위 투전판 앞에서 언제나 무릎 꿇어야 한다는 사실, 그리고 저 투전판이 깨지고 난 뒤의 뒷감당을 이 눈물겨운 푼돈들이 해야 한다는 사실, 이것이 오늘날 경제를 둘러싼 비극의 핵심이다. 운전기사에게 7억, 밀항을 주선해준 조폭에게 3억, 그냥 잡히는 대로 뭉텅뭉텅 던져준 것 같은 저 김찬경의 도피자금 10억원은 계산해보니 폐지 할아버지의 300년 동안의 노동이더라.

 

프로젝트파이낸싱으로 돈을 긁어모아 눈이 핑핑 돌아가는 신기루들을 만드는 행태의 시작은 아마도 두바이일 것이다. 바깥은 섭씨 40도가 넘는데, 실내 스키장에는 영하 5도의 기온에 400m가 넘는 인공 슬로프가 있고, 매일 30t의 눈이 뿌려진다. 호텔에서 바다로 나가는 뜨거운 백사장 밑에 에어컨 배관을 해서 시원한 모래를 밟으며 바다에 풍덩 빠져 해수욕을 즐긴다. 그저 교만과 악덕의 덩어리일 뿐인, 허깨비 같은, 무조건 망하게 되어 있는 삶의 방식들.

 

인간에게 필요한 것보다 엄청나게 부풀려진 돈들이 온 세상을 돌아다니며 독혈을 펌프질하고 있다. 실체 없는 돈이 실체 있는 돈을 집어삼키며 몸집을 부풀려 간다. 언젠가 거품이 뻥 터질 때가 올 것이다. 그때,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111층, 150층 마천루에서 인간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전기가 끊어진다면 대소변도 마음대로 볼 수 없을 저 꼭대기에서.

 

이계삼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

2012년 5월 10일 한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