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에게 말하다
인생은 끝까지 느끼면서 사는 거야. 절대 달관이란 게 있을 수 없어. 인간이 인간을 충고할 수가 없는 것이 아무리 말해봐야 전달은 200분의 1도 안 돼.
- 임현식
어떤 고민과 경험은 어릴 때 안 하면 일흔이 넘어서도 꼭 하게 되는 것이 인생인 것 같아요.
위로는 남한테 받는 게 아니라 스스로 깨닫는 거예요. 자기가 자기를 용서 안 하면 남이 백날 이야기해도 겉말밖에 안 돼요.
사람이 사는 이유는 뭔가를 배우기 위해서잖아요. 지식도 그렇지만 경험이나 관계에 관해 배우는 것이고 제게는 그 배움의 과정이 만화로 주어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꼭 만화만이 아니라 콩나물을 팔아도 도를 터득하면 도인이 돼요. 시장에서 장사하는 아주머니들도 어떤 분 얼굴은 탐욕스럽고 어떤 분은 해탈한 얼굴을 하잖아요. 화두를 해결한 인간의 얼굴, 그것이 최종 목표입니다.
- 김진
모든 배우가 넘는 최초의 문턱은 "남이 내 모습을 어떻게 봐줄까"라는 자의식에서 탈피하는 거예요. 내가 무슨 짓을 하건 이것이 내겐 정답이고 절실한 행위라고 믿으면 1천만 명이 수긍하는 연기가 나오지만, 남의 눈을 의식하면 그 순간 바로 앞에 앉은 단 한 사람도 설득을 못 해요. 1천만 명을 설득하는 힘과 바로 앞에 앉아 있는 한 명을 설득하는 힘은 본질적으로 똑같아요.
- 송강호
내가 없으면 세계도 없다는 생각이 깔려 있죠.
저는 우리 시대가 해결할 과제 중 하나가 개인의 발견이라고 생각해요. 세상은 추상적 이념이 아니라 구체적 개인들이 수고하며 힘들게 만드는 건데 그 의미를 우리 사회는 충분히 받아들이지 못한 것 같아요.
여성 모델을 보여주며 "주부의 마음까지 고려했다"고 내세우는, 주방을 여자의 공간으로 전제하는 광고가 세계 최고 교육 수준을 가졌다는 우리나라 여성들에게 어떻게 먹히는지 모르겠어요. 친구를 초대해서 김치냉장고로 기를 죽였다, 이런 것도 사실 성희롱이에요. 여자를 대체 어떤 존재로 여기는 겁니까?
우리나라와 문화 선진국의 차이 중 하나가 서로를 엮어주는 풍토의 유무인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백남준 씨가 계속 한국에서 작업했다면 뛰어난 개인임에는 변함이 없었겠지만 그를 인정하고 자기 작업 속에 동참시키려고 한 존 케이지나 요제프 보이스 같은 플럭서스 멤버는 없었겠죠.
개성이 부족하지 않은 한국인들이 덜 매력적인 이유 중 하나는 낯선 사람한테 상냥하지 않은 데서 오는 매력의 반감 때문인 것 같아요. 이것도 가족주의와 관련 있는데 가까운 이들에겐 친절하면서 길을 가다 만나는 사람에겐 뜨악한 거죠. 기본적으로 좋은 도시는 이방인에게 친절하고 공평한 도시라고 보는데 그것이 사람들의 미학적인 측면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봐요.
- 황두진
우선 개인이 자기를 형성하는 미학과 취향, 원리를 가져야죠. 그런데 인간의 몸은 사회에 의해 만들어지잖아요. 따라서 사회적으로 내 몸을 만들어가는 권력의 망과 제도적 틀을 바꿔나가는 노력도 있어야 해요.
-진중권
나이가 들어보니까 사람 사는 게 그렇게 큰 일도 비천한 일도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처음부터 사는 법을 잘 배웠더라면 싶어요. 왜 학교에서는 살아가는 법을 안 가르쳐주고 다른 것만 가르쳐줄까요! 인생사는 법, 생각하는 법, 어려움이 닥칠 때 대응하는 법, 연애하는 법을 가르쳐줘야 하잖아요. 우린 너무 그냥 던져지는 것 같아요. 가족관계나 학교에서 배운 것 갖고 너 알아서 살아, 그런 것이죠. 지금 아는 걸 좀더 일찍 알았다면 인생이 그리 무서울 것도 없고 돈 때문에 전전긍긍할 것도 창피할 것도 없고 그냥 내 자리에서 살면 된다는 걸 알았을 텐데.
자기를 비장하게 던져봐야 죽지 않는 이상 사람은 별로 변하지 않는 것 같아요. 아니 요즘은 죽어도 똑같은 것이 아닐까 싶어요. 이승에서 저승으로 건너갈 뿐.
- 강금실
사람은, 그냥, 다 지나가는 것 같아. 그러니까 만났을 때 최선을 다하려고 해요.
아니, 많이 사랑하진 못해. 어머니도 그냥 지나가는 거야
- 나문희
사람의 고통은 하나의 사건에서만 기인하는 게 아니거든요. 최종적으로는 한 사건으로 말미암아 좌절할지라도, 실은 살아온 시간 동안 쌓인 절망감 위에 어떤 사건이 최종적 무게로 얹히는 거죠. 그 같은 실존적 고통의 총량이 여자 쪽이 크다고 보는 거예요.
아니, 난 해피엔딩을 믿지 않아요. 해피엔딩은 존재하지 않는 말 같아요. 엔딩이 어딨어? 나는 이야기는 끝내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나는 내가 영화를 한다는 것 그 사실 자체만으로 행복해질 수는 없다고 봐요. 행복은 어떤 영화를 하느냐에 달린 거죠.
내게 있어 강렬한 원체험은 내가 나고 자란 대구에서의 생활이 아니라, 방학이면 할머니집에 가서 머물던 안동의 솔바람 소리, 개울 소리예요. 다르게 말하면 어릴 때 가장 높은 수준의 미학을 체험한 거죠. 돌이켜 생각하면 그것이 나의 미학적 기준을 내 능력과 상관없이 굉장히 높게 만들어버렸어요. 그 때문에 내가 더 무력감과 좌절감을 느끼는지도 몰라요.
현실에 관계없는, 눈에 보이지 않는 비물질적인 무엇, 명분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 내게 입력이 된 거죠.
세상엔 그 고통을 아는 자들끼리만 나눌 수 있는 고통이 있어요. 즉 인간의 논리로는 위로받지 못하는 부분이 인간의 삶에 있다는 거죠. 어떤 삶은 인간의 논리로 기억도 되고 기념도 되고 잊어선 안 된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통해 싸우기도 하죠. 그러나 어떤 삶은 인간의 논리로 전혀 기억되지 않고 사라져버려요. 따라서 초월적인 것을 인간이 받아들이게 되는데, 그것도 결국은 다시 인간의 언어로 만들고 받아들이는 거예요. 요컨대 인간의 문제인 거죠. 내 영화는 신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 대해 말하는 거예요.
난 연극이 굉장히 관념적이고 언어의 성격이 강한 매체라고 생각해요. 말하자면 근대적 형식이죠. 하지만 영화는 근대적 형식이 아니에요. 연극의 관객은 생각을 멈추지 않아요. 눈앞의 광경을 보며 관념놀이를 한다고. 그러나 영화관에서는 절대 그러지 않아요. 그냥 느낄 뿐, 어떤 관념도 낯설어하고 이상하게 느끼죠.
행복감은 학습되는 거에요. 나는 행복에 대해 학습이 안 돼 있어요. 한국인이 대개 행복을 학습 못하고 살아가죠.
나는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인물이라고 생각해요. 그 인물이 누구냐, 어떻게 보여지느냐가 영화의 성격과 형식, 태도를 결정한다고 보죠. 새로운 영화를 생각할 때도 이야기보다 인물부터 떠올려요.
- 이창동
☆ 그녀에게 말하다
- 김혜리 / 씨네21-
남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소리로 듣든, 글로 읽든 재미있다.
어린아이가 옛날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조르는 그 심사처럼,,
더구나 인터뷰 상대가 저마다 호기심 이는 사회유명인사들이고 때로는 흠모하는 사람들이니
궁금한 그들의 속내를 탐구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또한 감성 풍부한 작가가 그들의 마음을 잘 표출해내고 섬세한 글쓰기를 하는 사람이니
이전의 책 '진심을 탐닉하다'와 마찬가지로 감동 받으며 재미있게 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