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국회의원, 그리고 한국
연평도 포격으로 뒤숭숭한 틈을 타 한국 국회의원들이 자기들 세비를 올렸다. 그들은 세비와 지원금까지 합하면 1억7천만원의 연봉을 받게 된다. 독일에서는 어떤가? 월평균 600만원을 손에 쥘 뿐 차량유지비·골프장 특별대우 등은 받지 않는다.
한국의 봉급생활자에게 1월은 연말정산의 계절이다. 연초부터 상당한 신경을 써야 한 푼이라도 아낄 수 있다. 이곳에 있는 동안엔 그런 고민이 없지만 독일은 우리와 세금제도가 많이 달라 매달 급여명세서를 받으면 생소한 용어를 이해하기 위해 골치를 썩여야 했다. “인생에서 확실한 건 죽음과 세금고지서뿐”이라는 서양 속담대로 소득이 있는 한 납세의무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게 인간의 조건이다.
얼마 전 인터넷으로 <한겨레>를 읽던 중, 연평도 포격사태가 났을 때 한국 국회의원들이 자기들 세비를 올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새해부터 의원들은 매달 1천만원 가까운 세비를 받는다고 한다. 그 외에도 차량유지비 등 별도의 지원금을 합하면 연봉이 무려 1억7천만원에 달한다. 게다가 10여 명의 보좌진을 둘 수 있고 케이티엑스(KTX) 무료 사용, 공항이나 골프장 이용 때 브이아이피(VIP) 대우를 받는다. 65살이 되면 매달 120만원씩 노후연금도 나오는 모양이다. 다들 왜 그렇게 국회의원을 하려는지 알 것 같다는 빈정거림에 이유가 없지 않아 보인다.
선출직, 비선출직을 막론하고 국민의 대표와 공복을 어떻게 대우하는 게 제일 좋을까? 공직자의 대우에 관한 한 아마 세계에서 최고로 투명한 나라는 스웨덴일 것이다. 국회의원 보좌관 제도는 아예 없고 의원이 여행할 때에는 가장 싼 표를 구입해야 국회에서 환불받을 수 있다. 공무원이 출장을 가도 출장비에 식비가 따로 포함되지 않는다. 어차피 밥은 자기 돈으로 먹어야 한다는 논리다. 1995년에 모나 살린이라는 여성 장관이 법인카드로 아이의 기저귀를 구입했다가 문제가 되어 사임한 적도 있다. 이탈리아처럼 국회의원들의 부패 정도가 높은 나라도 있으나 이는 유럽 기준으로 예외에 가깝다. 독일은 어떨까? 연방하원인 분데스타크 사무처에 의원들의 정확한 급여 수준을 문의해 보았다. 독일답게 한참 뜸을 들이더니 몇 주 만에 이메일로 답변이 왔다.
독일 연방하원들은 연방 고등법원의 판사급에 해당하는 R6 호봉을 받는다. 2010년 현재 매달 세전 7668유로 수준이다. 요즘 환율로 한달에 약 1150만원 정도가 된다. 우리나라와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국내총생산이 우리의 네배, 일인당 국민소득이 우리의 거의 두배가 되는 나라임을 고려해야 한다. 여기서 사회보장 부담금, 소득세, 의료보험, 연대세(동서독 통일세), 종교세(신자일 경우) 등을 내고 나면 개인 차가 있지만 월평균 세후 600만원 정도를 손에 쥔다고 보면 된다. 차량유지비? 그런 건 없고 베를린 시내 출장일 경우 국회사무처의 관용차를 빌려 쓸 수 있다. 독일철도는 무임승차가 가능하고 공식 출장일 경우에는 국내 항공료도 청구할 수 있다. 골프장 특별대우는? 질문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보좌관은 한달 예산 2230만원 안에서 몇 명을 쓰든 자유다. 2년 전 전직 하원의원의 연금에 관한 규정이 새로 만들어졌다. 의원으로 봉사한 햇수에 따라 매년 세비의 2.5%씩 계산하여 67살부터 연금을 수령할 수 있다. 최대한 67.5%(27년분)까지 인정해준다. 예를 들어, 하원의원을 10년 동안 했다면 세비의 25%로 계산해서 노후연금을 받는다.
왜 정치인들에게 국민의 혈세로 급여를 주어야 하나? 이 질문에 답하려면 애당초 의원들에게 세비를 지급하게 된 역사적 배경을 생각해 봐야 한다. 서구 근대에 들어서도 정치는 귀족, 대지주, 재산가들의 전유물이었다. 이런 사람들이 ‘국민’의 대표를 자임했으니 어떤 정책이 나왔을지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여기에 반기를 들고 나온 것이 19세기 중엽 영국의 차티스트운동이었다. 노동계급이 자신의 이해를 의회정치에 반영하기 위해 전국적으로 들고 일어난 것이다. 대대적인 정치개혁 풀뿌리 운동이었다. 이들은 요즘으로 보면 상식적이지만 그때만 해도 혁명적인 요구사항을 내걸었다. 1837년 런던의 크라운 앤드 앵커 주점에서 발표된 <차티스트 청원>의 6개 조항을 보라. 21살 이상 모든 사람에게 선거권 보장, 무기명 비밀투표로 의원 선출, 의원출마 자격 중 재산소유 조건 철폐, 매년 총선을 실시하는 연례의회, 같은 수의 주민들로 구성된 선거구, 그리고 마지막으로 의원에게 세비 지급. 세비를 주어야 할 이유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생업을 중단한 정직한 상인, 노동자 등이 선거구민을 위한 봉사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급진적인 사회개혁 운동의 효시로 널리 알려져 있는 차티스트운동으로부터 의원 세비 지급의 요구가 나왔다는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렇게 본다면 오늘날 국회의원의 세비와 특전이 마치 권력의 상징인 양 오해되고 있거나 오용되는 현실은 잘못되어도 대단히 잘못된 관행이 아닐 수 없다. 비특권층 서민들이 생계를 걱정하지 않고 정치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의 제도가 정반대로 새로운 특권층을 창조한 꼴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비용-효과로만 따질 때 세비를 적게 주고 좋은 정치가 나오면 좋겠지만 그건 현실적으로 어렵다. 적정한 수준에서 충분히 지급하되 의원들의 활동 결과와 ‘생산성’을 유리 어항처럼 공개하고 책임을 묻는 게 좋겠다. 갖가지 창의적인 지표, 예컨대 ‘폭력지수’나 ‘민주 의정활동 순위’ 같은 것도 개발할 수 있을 터이다. 이런 일은 시민운동이 특히 잘할 수 있는 분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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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민주사회의 평등한 에토스에 어긋나는 대우와 관행은 폐지해야 한다. 차량유지비 같은 건 당장 없애도 무방하다고 본다. 영국 보수당의 데이비드 캐머런도 총리가 되기 전에는 지하철로 웨스트민스터에 출퇴근했다. 품위유지니 브이아이피니 하는 권위주의적인 발상도 정치 사전에서 추방하자.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데에는 제도만큼이나 정치적 지위를 대하는 시민의 문화와 정치적 의례의 개혁도 중요하지 않겠는가.
조효제 베를린자유대 초빙교수
20110108한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