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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자회담 걷어차면 내 다리만 불구 된다

오직~ 2010. 12. 6. 21:43

“북한핵 관리 못하면 연평도 포격보다 더 무서운 상황”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과 함께 나눈 한반도 평화공학


[한홍구-서해성의 직설]
제28화 바보야, 평화가 밥이야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하다고 자꾸 말하니, 듣는 사람이 미안하다. 그는 틈만 나면 자책했다. “저희가 더 잘해서 정권을 넘겨주지 말았어야 하는데….” “결과적으로 국민을 설득하지 못해….” 요즘 ‘초상집 상주’의 기분이라고 했다. 주변 사람들이 “바쁘겠다”고 한마디씩 던지는 게 오히려 불편하다고 했다.

이종석(52) 전 통일부 장관을 모셨다. 참여정부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3년)과 통일부 장관(1년)을 지낸 인물이다. 총 4년간 노무현 대통령 외교안보라인의 핵심참모였다. 2007년 퇴임 이후엔 한반도평화포럼(공동대표 임동원 백낙청)의 상임이사를 맡고 있다.

전쟁에 대한 공포가 슬슬 사람들의 신경을 건드리고 있다. 연평도 포격사태 이후 ‘평화 관리’는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긴급과제로 떠올랐다. 한국의 대표적인 ‘북한통’에게 고견을 들었다. 그는 두 가지를 말할 때 특히 힘을 줬다. 중국, 그리고 6자회담! .진행·정리 고경태 기자

 

 

서해성(이하 서) 연평도 포격도 지난 정권 탓이라고들 하는데요.

한홍구(이하 한) 잘못을 인정하십니까?

 


이종석(이하 이) 잘되면 내 덕 못되면 조상 탓이란 말, 그건 혈통이라도 같으니 그렇지.(폭소) 3년 전 취임하면서 ‘난 이 혈통 필요 없다’고 햇볕정책 침몰시켜놓고 햇볕 탓을 하면 안 되죠.

 

포용정책이 세긴 세네. 3년 뒤에도 계속 만사의 원인이 되니.

안보 사안에서 문제만 발생하면 그러잖아요.

 

통일부 장관으로 한 일들이 ‘안보’인가요, ‘국방’인가요.

국가를 수호하는 포괄적 개념인 안보 속에 국방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죠.

 

포괄적이라기보다 모호하다고 봐요. ‘안 보이는’ 게 안보죠.(웃음) 안보전문가 100명한테 물어봐도 정의가 다 다를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도 무지 중요해 보이고 절대 우선순위를 두어야 할 거 같은 거.

 

MB정부의 탓, 탓, 탓, 탓 시리즈

 

현대엔 더 그렇죠. 금융시스템이 마비되어도 ‘안보’라는 말을 씁니다.

경계가 없다 보니 자칫 위험하게 적용될 수 있죠. 특히 보안법과는 떼어내기가 퍽 어렵거든요.

 

안보 중시하는 보수정권이 국가안보 중대사태에 왜 이리 허둥대죠?

위기관리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대통령이 모든 안보상황을 직접 관장할 수 있도록 이를 보좌하는 컨트롤타워가 있어야 합니다. 그게 엔에스시(NSC·국가안전보장회의)나 통일외교안보정책실이었죠. 그 밑에 위기관리센터가 있었지만, 이 정권 들어 유야무야됐죠.

 

컨트롤타워만의 문제일까요. 동네 건달도 싸움이 붙었다는 소식 들으면 곧장 깡이 좋은 아무개를 보내라고 하죠. 조직과 상대, 조건을 훤히 꿰고 있어야 하는 건 기본이죠.

대통령이 주재하는 안보관계장관회의만 잘해도 상황 파악하고 바로 필요한 조처를 취할 수 있죠. 위기관리센터가 없다고 못할 거 없죠.

 

군 당국의 말이 너무 자주 바뀌니까 신뢰에 문제가 생겨요. 천안함 때 보면 대통령은 상황을 잘 파악하고 있는지 의심이 들 정도로.

군이란 자기가 기망하는 줄 모르고 대통령을 기망할 수가 있어요. 참여정부 때도 대통령 질문 한마디에 군이 지레 겁먹고 자체 교신기록을 지운 적이 있어요. 엠비를 보면서 저 양반 아무것도 모르고 지나갈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가끔 해요.

 

모시고 있는 지휘관에게 작은 약점이라도 되는 정보는 걸러서 올라가기 십상인데, 크로스체크(교차점검)하는 체제가 온전히 작동해야 하는 거죠.

대통령이 그런 경험과 리더십을 갖든지, 시스템을 운영하든지, 어떤 참모가 그런 일을 맡든지.

 

통일세 보면 대통령이 참모 말을 안 듣는 거 같아요. 북한붕괴론은 거의 종교적 신념 수준이고. 참여정부에서 대통령과 자주 대화했을 텐데 참모 말도 안 듣는 대통령 어떻게 하면 좋죠?

노 대통령은 북한이 신의를 어기는 행동을 할 때마다 언짢아했지만 정책에 반영하진 않았어요. 정책은 이성에 기초해야 하잖아요.

 

이 정권은 모든 걸 노무현 탓으로 돌리면서 탄생했죠. ‘탓 정부’ 엠비 정부의 ‘탓’을 마구 정리해도 쉬 몇 장이 될 거예요.(웃음)

임기 마지막날까지 참여정부 탓 할지 몰라요.

 

누군가 병역면제 정권을 ‘당나라 군대’라고 했던데 당나라 군대는 이 땅에 와서 패악을 저질렀어요. ‘당하는 군대’보고 ‘당나라 군대’라고 하면 상찬이지. ‘탓’ 시리즈 몇 개만 읊어보자면, 삼팔선이 녹슨 건 이승만 탓이고, 경부선 교통사고는 모두 박정희 탓이고, 한국인이 영어 못하는 건 주한미군 탓이고, 연평도 대포 고장 난 건 햇볕 탓일 수 있죠. 햇볕이 레이더 장비에 이상을 일으켰을지 모르니.

이명박 뽑은 건 국민 탓이고.(웃음)

 

마침내 불탄 소주병(송영길 시장의 폭탄주 발언) 탓을 하고 있어요.(웃음) 국민들이 지금처럼 대통령 잘못 뽑은 걸 절감할 때가 없었죠. 박정희, 전두환 때는 위기를 팔아먹었다면 이번엔 진짜 위기가 온 거예요. 평화관리는 아예 접고 분단관리조차 못해서 위기가 일상화되고 있어요. 암튼 북한은 대체 왜 대포를 쏜 거죠.

사람들이 나한테 ‘바쁘시죠’ 하고 물어요. 상주한테 ‘대목 맞으셨어요’(웃음)라는 거 같아요. 이번 야만적 도발이 상당기간 남쪽 사람들뿐 아니라 전체 민족에 큰 상처로 남는다고 봅니다.

 

6·15 공동선언 이후 10년간 남쪽에서 해온 모든 평화구축을 거덜 낸!

세상에서 가장 비싼 폭탄이 날아왔어요. 평화와 화해와 미래까지 먹어치우는.

 

따져보자, 누가 더 국방에 신경 썼냐!

 

단순한 갈등의 상승 결과였다고는 보지 않아요. 김정은 리더십을 이런 식으로 결합시키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다고 봐요. ‘강성결단’을 대내적으로 부각시키는 측면이 있겠죠.

 

역사적·인민적 동의 과정이 생략된 김정은 체제로 이행이 맞물려 있다고 할 수 있겠죠. 경제력으로 2012년 강성대국은 이미 어렵고, 결국 물리력에 기초한 상징 형성이고, ‘포병 천재 장군님’ 이미지와 부합하는 짓을 한 셈이죠.

 

진보 진영 일각에서 칼기(대한항공) 폭파사건(87년)을 안기부 소행으로 몰아갈 때 나는 북이 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천안함은 북이 그렇게 감쪽같이 할 능력이 있나 의문이에요. 이북에서는 남쪽이 덮어씌운다고 주장해왔죠. 오히려 연평도 포격으로 확실하게 뭔가 보여 주어야겠다 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천안함 사건의 역효과랄까.

 

1996년 총선 때도 신한국당이 장학로(청와대 제1부속실장) 수뢰사건으로 코너에 몰렸는데 인민군 1개 중대가 비무장지대를 들락날락하면서 총풍을 일으켰잖아요. 나는 북한이 남한 민주세력을 돕는다고 생각지 않아요. 북의 호전성을 감소시키고 도발 빈도를 완화시켜야 하는지라 대화를 하는 거죠.

 

예전엔 남북이 사고를 치면서도 ‘우리가 안 했다’였잖아요. 대통령을 직접 노린 1·21 사태(68년)나 아웅산 테러(82년)도 그렇고. 이번엔 대놓고 ‘쐈다, 응징했다’고 하잖아요. 민간인 사는 곳에 포탄을 날린 것도 그렇지만 자신들의 공격행위를 노골적으로 자랑삼는 점이 심히 우려스러워요. ‘꽃게전투’와는 명백히 다른 점이죠.

의도적으로 정전협정을 위반했죠.

 

<로동신문> 사설에 ‘우리 군대는 빈말을 하지 않는다’고 했어요. 내가 쓰는 표현으로 ‘미친놈 전략’인데, 나 미쳤으니까 건드리지 말라는 거죠. 빈털터리와 만석꾼이 서로 집에다가 불 싸지르기 하면 누가 손해 보겠어요?

엠비 정부가 하도 민주정권 10년 탓을 해서 묻건대, 굳이 말하면 연평해전에서 남측이 우세했던 거 아닌가요.

이겼다기보다 대응이 허술하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민주적 역량이 도리어 국방의 힘을 강화한다는 뜻입니다. 당시 상황이 거의 생중계된 것도 그렇고, 의심할 게 없었죠.

지휘관들이 정치적 눈치 안 보고 소신대로 일하는 분위기가 튼튼한 국방을 만들죠.

 

대포 6문 중 3문이 안 나갔단 소식을 접하면서 귀신은 잡는지 몰라도 해병대가 대포는 못 쏘는구나 하면서 할 말을 잃고 말았어요. 분단세력들이 전위로 내세우곤 하는 게 해병인데, 귀신 잡는다는 말은 선민적 병영문화 자체를 거의 국가종교화한 거거든요.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죠.

 

격렬비열도는 격렬해지면 안돼요

 

지휘 체계에 분명 문제가 있는 거죠.

 

사병 둘과 인부 둘이 죽었는데, 티브이로 보아하니 포탄이 ‘없는 사람’에게만 날아오는 게 전쟁이구나 싶었어요. ‘배야 꼭 떠라, 휴가 좀 가자’는 병장이 남긴 말이 평화와 안식을 빼앗긴 보통사람 처지를 들여다보는 듯해서 섬뜩하도록 미안해요.

포용정책을 쓴 참여정부 때 매년 국방예산 8~9%씩 증액(80년대 이후 최고)시켜서 한 교수 같은 분들에게 ‘너희들이 평화세력이냐’고 욕 많이 먹었죠. 대통령이 진보 쪽에 서 있다 해도 자기 가치와 다른 걸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어요.

 

덕분에 남북 국방격차를 가장 심화시켰죠.(웃음)

누군가 노 대통령에게 잠실에 제2롯데월드 세우면 2만8천개 일자리가 생긴다고 건의했어요. 내가 공군 고위간부들과 별별 기술적 검토를 다 했는데 대통령은 마지막에 공군 수뇌부 판단을 따랐어요. 빌딩 들어서면 성남비행장에서 계기비행이 위험하다는 거예요. 그걸 이 정권에서는 허가해줬죠. 국방비까지 줄여서 4대강 한다잖아요.

 

연평도가 터지면서 대포폰(사찰), 4대강 등 핵심 의제들이 일시에 밑으로 내려갔어요. 한나라당은 이 틈에 예산안 통과시키겠다, 한-미 에프티에이(FTA) 재협상하겠다니, 불난 집 불로 콩을 구워 먹겠다는 거죠. 문제는 그게 자기 집이라는 거죠.

전쟁의 힘이죠. 전쟁은 이성을 마비시키죠. 남북이 온 힘을 다해 붙으면 북은 없어질지 모르겠지만 우리도 팔다리 하나씩 날아가는 거죠. 정말 이제는 국가기구를 평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맡겨야 해요.

 

어느 신문에, 이 판국에 4대강 반대하면 매국노라는 식의 표현이 있더라고요. 절차마저 뭉개버리는 대중통제 과정으로 밀고 가겠다는 거죠. 야당은 이럴 때 존재이유를 보여주어야 하죠.

위기의 일상화, 이게 아주 더러운 거예요. 이북 체제가 저렇게 내리막길을 걸은 게 위기상황 닥치니 총동원해놓고 그게 안 풀리니까 버틸 수 없었던 거잖아요.

67년부터 팍 꺾였죠.

 

50년대까지만 해도 북이 여유가 많았잖아요. <로동신문> 봐도 재미있고. 그런데 70년대 로동신문 보면 어떻게 저런 표현만 골라 쓰나 싶은데, 요번에 남쪽에서 나오는 성명서가 똑같아요. ‘천백배로 갚아주마’ 등등. 우리 사회에 진짜 전쟁을 부추기는 세력들이 나오기 시작했어요. 전쟁 나면 처리해야 할 명단도 나오고.

 

‘보도연맹’을 통해 공포의 부활을 시도하는 거죠.

분쟁이 상시적으로 발생하면 한반도가 제2의 중동처럼 보일 수 있어요. 우선 경제가 엄청난 타격을 입게 되죠. 상황을 잘 관리해야 합니다. 북한이 공격했을 때 곧장 되받아쳤어야 하고, 그러지 못한 상황에서는 한반도를 분쟁지역으로 보지 않게끔 만들어가야죠.

 

냉전이 끝날 무렵과 비교하면 중국 위상이 비교할 수 없이 높아졌죠. 94년 미국이 영변 폭격하자고 할 때하고도 비교할 수 없죠. 하루가 달라요. 한국 집권층은 그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미국 일변도로만 가고 있어요.

 

냉전해체 직후(90년) 중국 수출 2%, 미국 25%였는데, 지금은 중국 25%, 미국은 10%에 훨씬 못 미치죠. 한국은 미·일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수출을 중국에 하지만, 중국의 한국 수출은 5번째예요. 중국에 대한 우리의 의존도가 크게 높아졌죠. 이걸 가져가면서도 당당하려면 한-중 협력과 함께 동북아 다자협력과 한-미 동맹을 하나의 국가안보전략 틀에서 유기적으로 조합을 시켜야 해요.

 

지(G)20 회의에 오기 전부터 오바마가 거듭 위안화를 물고 늘어졌죠.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도 돈을 뺄 수 없죠.

작년 원자바오가 북한에 가서 90년대 이후 가장 폭넓은 여러 경제협정을 맺었죠. 결과적으로 유엔안보리결의 1874호(2009년 6월의 대북제재결의안)가 무력화되는 거죠. 어느 나라도 제대로 비판을 못했어요.

 

다이빙궈 중국 특사가 와서 6자회담 제안하니 엠비는 고개를 젓고, 곧이어 격렬비열도까지 미 핵항모가 올라왔어요. 격렬비열도는 서쪽 끝이잖아요. 거의 중국에 닿는 국경인데, 서해가 끓어넘치는 수가 있어요. 격렬비열도는 격렬해지면 안 돼요.(웃음) 비핵화를 중심으로 한 한반도 평화를 이뤄낼 핵심 틀로서 6자회담 전망은.

 

미국의 목표가 정말 북한 비핵화인지, 비확산인지가 불분명해졌어요. 이거 정말 위험한 거예요. 연평도가 터졌다고 북핵 위기가 가시기는커녕 더 고조돼 있단 말입니다. 남북 사이 재래식전투가 벌어지는 동안에도 저농축 우라늄에서 보듯 북은 지속적으로 핵능력을 강화하는 쪽으로 간다는 겁니다. 6자회담을 걷어차면 언제 다시 북핵을 다룰 거냐는 거죠.

 

이명박 정부가 퍼주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핵개발을 했지?(웃음)

 

극단적으로, 북한이 무너졌다 치면…

 

6자회담이란 북핵문제 해결에서 나왔지만 한반도 평화체제, 나아가 동북아에 다자안보협력구도를 만들 수 있는 유일하면서도 현실성 있는 기구죠. 극단적으로 북한이 무너졌다 쳐요. 어디다 대고 ‘저기는 우리 영토’라고 할 거죠? 유엔? 6자회담은 대한민국 국익에 절대적으로 소중한 존재예요.

 

북은 미국과 일대일로 딜해야 하는데 6자회담은 거추장스럽죠. 만약 미국이 북을 핵 몇 개 가진 꼬마깡패로 인정해주고 확산만 막겠다고 하면 우린 어떤 지렛대가 있죠?

미국이 비확산 쪽으로 돌아섰다는 게 확인되는 순간 우린 엄청난 충격을 받을 겁니다. 김태영 국방장관이 미국 핵을 들여온다는 발언 자체도 문제지만 북핵 인정을 전제로 하는 거라서 더 문제죠. 미국을 지속적으로 비핵화에 묶어두도록 우리가 중심이 돼서 일해야죠.

 

어떤 형태로든 6자회담을 내치지 말자는 얘기죠? 정리 차원에서 ‘퍼주기’에 대해 반박 한 말씀.

개성공단만 해도 6·25 때 남침통로였죠. 북한과 대치선을 공단 위로 밀어낸 거잖아요.

 

이번에 타격을 준 방사포 위력을 우선 사거리 면에서 약화시킨 셈이네요.

비분강개하면서도, 냉철한 이성으로 전략을 생각하고 미래를 봅시다.

 

천안함 뒤 지방선거 때 북풍을 일으켜도 국민들이 성숙하게 막아냈는데, 이젠 이북이 직접 북풍을 일으키니 이렇게 답답할 수가!

우리 이명박 대통령이 장례를 참 많이 치렀어요. 장례 자주 치르는 대통령이 좋은 대통령이기는 어렵죠. 가카(각하), 전쟁옹호세력 말 따르지 말고, 평화세력 좀 만나보세요. 민주 정부 탓 좀 그만하고! 짜증나니까.

 

■ 직설잔설

 

또라이와 꼴통

군대에 보면 또라이 짓을 하는 친구들이 하나씩 있었다. 한번 또라이 짓을 할 때마다 그 대가는 무지무지하게 컸다. 공인받기는 엄청 어렵지만, 일단 또라이로 공인받고 나면 그다음은 편했다. 아무도 그를 건드리지 않았고, 무시하지도 않았다. 또라이 역시 적당한 선이 있어 아무 때나 난리를 치지는 않았다. 공인된 또라이는 그런 의미에서 관리가 가능했다. 부대의 일상의 평화를 위해 일정하게 ‘존중’만 해 준다면.

 

국제정치에서도 약자가 강자를 상대로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으려 할 때 남들이 감히 못하는 또라이 짓을 자행할 때가 있다. 요즘 인터넷에서 자주 사용되는 ‘미친 존재감’과는 차원이 다르게, 계산된 미친 짓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는 것이다. 이승만이 미국 애먹이려고 정전협정 체결 직전 반공포로를 석방한 것은 그 대표적인 예다.


» 한홍구, 이종석, 서해성

아무리 또라이라도 시도 때도 없이 또라이 짓 하지는 않는다. 또라이를 또라이로 만드는 것은 무시와 업신여김이었다. 위키리크스를 통해 다시 한번 확인되었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남북관계를 얼어붙게 해놓고 아주 편안해했으며 임기 내내 이를 개선할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고 한다. 철저한 대북 무시전략에 우려를 표하면 청와대 주변에서는 ‘전쟁밖에 더 나겠어? 전쟁 나면 누가 이기는데’라는 말만 들려왔다. 압도적인 국력 차이를 바탕으로 또라이에게 꼴통 짓을 한 것이다.

 

영화 <투캅스>에 보면 조사받다 자기 얼굴을 막 때리며 “형사가 사람 친다”고 소리치는 또라이를 형사가 더 심한 또라이 짓을 하여 제압하는 장면이 나온다. 또라이를 제거할 수도 없고, 완전 무시하는 꼴통 짓을 하다가는 또라이가 난리를 칠 것이고, 그렇다고 더 심한 또라이 짓을 해서 제압할 수도 없다면 어쩔 수 없이 또라이가 난리치지 않도록 하는 법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잃어버렸다는 지난 10년처럼.

한홍구

 

 

20101203한겨레